미국 비영리 미디어 탐사보도센터 방문
“탐사보도센터의 임무는 민주주의를 지키고 삶을 증진시키기 위한 행동을 만들기 위해 탐사취재와 혁신적인 스토리텔링으로 대중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미국 탐사보도센터( The Center for Investigative Reporting) 홈페이지)
지난 5월19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에머리빌에 위치한 탐사보도센터를 찾았다. 샌프란시스코 시내에서 택시 서비스인 우버를 타고 4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탐사보도센터는 건물에 간판을 내걸지 않아 주소를 알고 오지 않으면 머뭇거릴 정도로 한적한 동네에 있었다.
미국으로 출발하기 전엔 더 머뭇거려야 했다. 떠나기 한 달 전 탐사보도센터를 인터뷰하고 싶다는 전자우편을 보냈지만 묵묵부답인 채로 시간이 흘렀다. 출발 이틀 전 미국행 비행기표 일정을 바꿔야 하나 고민하던 때 비로소 방문을 환영한다는 전자우편을 받았다. 탐사보도센터에서 취재진을 반긴 콜 고인스 공동체협력 담당 시니어 매니저는 “어제도 중남미에서 사람들이 와서 보고 갔다. 많은 방문 요청 전자우편을 받는 바람에 답장이 늦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은 것은 미국 탐사보도센터의 혁신과 성장이 궁금해서였다. 시사주간지 등 탐사취재를 목표로 하는 전통 미디어는 점점 입지를 잃어가고 있다. 독자는 더 이상 종이에 인쇄된 기사를 찾지 않고, 스마트폰 등 모바일을 통해 짧은 기사 또는 그래픽·동영상을 보는 걸 선호한다. 종이 신문과 잡지의 구독률 감소는 이런 변화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러나 탐사보도센터는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미국 신문·방송과 달리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2008년 7명이던 직원은 2016년 65명으로 불어났다. 예산 역시 100만달러에서 950만달러로 9배 이상 늘어났다. 가벼운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에 탐사취재를 목표로 하는 이 미디어는어떻게 성장할 수 있었을까.
1. 기사를 연극으로 만들라
비영리 미디어인 탐사보도센터는 라디오쇼와 팟캐스트를 위주로 하는 곳이다. 탐사보도센터가 취재한 기사로 만든 라디오쇼는 미국 전역 260곳의 라디오방송국 전파를 탄다. 이 라디오방송은 다시 팟캐스트로 만들어져 평균 15만 회 다운로드된다. 기사는 탐사보도센터의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발행될 뿐만 아니라 미국의 다른 신문에 실리기도 한다.
여기까지 들으면 일반적인 미디어의 변화 모습과 다를 바 없지만 탐사보도센터는 지역과 밀착하는 차별된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 탐사보도 기사를 연극과 시로 만드는 것이다.
“최근 뉴저지 지역에서 유출된 기름이 일반 가정의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유독성 화학제가 얼마나 환경과 삶에 영향을 끼치는지 추적한 것으로 이미 기사로 발행됐다. 우리는 여기서 끝내지 않고 이 문제를 지역 사람들과 함께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궁리하다 연극으로 만들어 시민들에게 보여주기로 했다.”
콜 고인스 매니저는 이 프로젝트를 ‘스토리웍스’(Storyworks)라고 부른다. 탐사보도센터는 탐사취재 기사 가운데 지역민들과 함께할 수 있는 것을 골라 3년 전부터 지역 극단과 협력해 연극으로 만들고 있다. 고인스 매니저는 유출된 기름이 평온했던 집과 환경을 어떻게 망가뜨렸는지 기사 내용을 설명했고, 이 기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연극 <미지의 땅>(Terra Incognita·위 사진)은 인터뷰 뒤인 6월3일 실제로 상연됐다.
이전에는 지역 미술관과 함께 오클랜드 경찰들이 쓰는 도청 장치에 대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프로젝트를 했다. 지역 경찰들이 쓰는 도청 장치에 대해 예술가들이 시민들에게 설명하고 반응을 녹화한 뒤, 감시 공간 같은 것을 만들어 6개의 모니터를 통해 그 영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시민들은 지나가다 이 공간을 경험한 뒤 자신의 생각을 종이에 써서 붙였다.
고인스 매니저는 이런 노력이 기부나 회원을 늘리기 위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우리의 철학은 사람들이 뉴스를 보러 오도록 만드는 게 아니라, 우리가 이 뉴스의 영향을 받을 만한 사람을 직접 찾아가 보여주고 지역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있다. 극단이나 예술가들과 협력해 새로운 독자를 찾는 방식이다. 100만 명에게 기사를 읽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사에 코멘트를 다는 사람은 한정돼 있거나 활동이 적다.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 보여주면 직접 영향받는 사람들이 토론하고 해결책을 찾아 움직이게 된다.”
고인스 매니저의 설명을 한참 듣는데, 건물 옆에서 기차가 지나가며 큰 기적 소리를 냈다. 한적한 동네인 줄 알았지만 실제로는 기찻길 옆에 위치한 곳이었다. 취재진 머릿속에도 ‘빠아아아앙’ 소리가 울렸다. 우리의 탐사보도 기사는 실제 영향을 미칠 지역을 찾아가 토론 자리를 만들 생각을 한 적이 있을까.
탐사보도센터는 1년에 15번 정도 이런 행사를 기획한다. 스토리웍스 같은 연극뿐만 아니라 시 낭송, 토크콘서트 등 형식은 다양하다. 행사는 무료다. 고인스 매니저가 설명했다. “시의 경우,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유스스피크’(청년연설)라는 단체와 협력했다. 청년들에게 기사를 읽은 뒤 든 생각이나 감정을 시로 표현해달라고 했다. 이것을 모아 발표회를 열고 비디오로 녹화한 뒤 다시 기사를 썼다.”
연극이나 시 창작 활동은 기사에 나온 사실을 위주로 한다. 기사를 작성한 기자가 직접 창작 과정에 참여해 제작자에게 사실을 확인해주고, 자신이 쓴 기사가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도록 시민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이렇게 언론사와 기자가 지역민들과 밀접한 활동을 펼치면서 기사의 신뢰성을 얻고 부가적으로 새로운 독자와 후원자를 찾는다.
2. ‘SNS’라는 도로에 타라
콜 고인스 공동체협력 담당 매니저(왼쪽 사진)와 페르난도 디아즈 시니어 에디터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탐사보도센터의 지역 밀착형 활동은 콘텐츠를 바라보는 시각이 변화했기 때문에 일어났다. “뉴스는 정보를 수집하고 해당되는 정보를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옛날 방식이라면 신문기사를 길게 쓰는 것으로 족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콘텐츠는 연극도 될 수 있고 짧은 비디오도 될 수 있고, 내용만 전달할 수 있으면 어떻게든 변화해도 좋다고 생각한다.”(콜 고인스 매니저)
이런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탐사보도센터는 다른 조직을 갖췄다. 65명 정도의 전체 직원 가운데 전형적인 기자는 20명 정도고 10명은 라디오 프로듀서다. 경영직을 제외한 나머지 제작 부서는 애니메이션 제작자, 그래픽 디자이너, 소프트웨어 개발자 그리고 고인스 같은 공동체협업 매니저 등 다양한 영역 25명 정도로 구성했다.
고인스 매니저가 소개해준 페르난도 디아즈 시니어 에디터는 탐사보도센터에서 이들을 협업시키는 업무를 맡고 있었다. 디아즈 에디터는 “글이 우선”이라면서 “기자는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쓴다. 기자가 스토리를 가져오면 그것을 비디오든 오디오든 다른 직원들과 조율하는 게 에디터다”라고 자신의 역할을 설명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인터넷 검색 포털, 페이스북·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기사가 소비되는 환경은 비슷하다. 그러나 디아즈 에디터의 말은 조금 다르다. 기자에게 심층취재와 함께 동영상 제작, SNS 기사 유통까지 맡기려는 한국과 달리, 취재기자와 에디터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짓고 있었다. 회사가 다른 형식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제작자를 구성한 뒤 취재기자의 기사를 어떻게 재가공할지 에디터가 직접 나선다. 다른 콘텐츠로의 확장을 에디터가 책임지면서 기자는 탐사취재의 질과 협업 효과를 높일 수 있다.
고인스 매니저는 탐사보도센터 페이스북 페이지에 실린, 미국 야생동물 스라소니를 위협하는 덫의 잔혹성을 실험으로 소개한 짧은 동영상(아래 사진)과 또 다른 애니메이션 영상을 보여주며 협업의 사례로 들었다.
물론 탐사보도센터의 활발한 활동은 뜻있는 재단과 개인 후원으로 운영되는 비영리 미디어라서 가능한 방식일 수 있다. 로버트 로젠설 상임이사도 미국의 큰 미디어 기업에서 일찍부터 제작 방식을 바꾸려 했지만 실패했다고 했다.
3. ‘페라리’ 같은 뉴스를 만들어라
디아즈 에디터는 후원이 있다고 이런 방식이 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오히려 “위험하다”고 했다. “어제 탐사보도센터로 350만달러 후원이 성사됐는데, 이는 다르게 생각하면 우리는 앞으로 350만달러 이상 더 벌 생각을 안 하게 되는 거다. 많은 독자에게 기사를 보내야 하는 사업인데 공짜 돈을 받아서 일을 제대로 안 하면 그것은 범죄다. 변화된 환경에 맞춰 어떻게든 더 많은 독자를 찾아야 하는 숙제는 그대로다.”
디아즈 에디터는 이 부분에서 매우 힘주어 이야기했다. 미국에서 새롭게 떠오른 버즈피드·허핑턴포스트·복스 등 뉴미디어 이름을 일일이 말하면서 “뉴스 기업이 아닌 정보기술(IT) 기업이 미디어를 하고 있다. 그들은 영리하다”며 경계했다.
더 발전된 기술을 활용하는 것은 이들과 경쟁하며 탐사보도를 추구하는 언론인들에게 떨어진 과제다.
“탐사보도는, 첫째 인간관계다. 신뢰를 얻은 취재원이 말해주는 이야기를 대체할 것은 없다. 둘째, 신발이 닳도록 뛰는 것이다. 법원을 직접 찾아가 기록을 찾는 것 역시 바뀌지 않는다. 셋째, 발달한 기술을 우리가 배워야 한다. ‘파나마 페이퍼스’(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조세회피처인 파나마의 최대 로펌 모색폰세카가 보유한 약 1150만 건의 비밀 문서를 폭로한 사건)의 경우 자료가 방대해 예전에는 세금을 탈루한 사람 하나 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제는 이름 검색 눌러놓고 담배 한 대 피우고 오면 컴퓨터가 찾아놓는다.”
이런 노력으로 ‘페라리’ 같은 좋은 뉴스 콘텐츠를 만들어야 “사람이 와서 타볼 것”이라고 디아즈 에디터는 말을 맺었다. “페이스북·트위터가 좋은 길을 닦아놨는데, 이 길에 맞춰 달릴 수 있는 페라리를 만들지 못하면 불행한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