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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커피 금지하면 생산성이 좋아질까

대기업 '열심히 일하자' 끝없는 반복, 지나간 성공방정식을 오래 붙잡다

by 이완 기자

"나는 일주일 동안 연수에 참석했었다. 연수는 매년 400클럽 안에서 주요 원칙을 되새기고 경영자의 확신을 강화하면서 상황을 재정비하는 일종의 예방접종 같은 것이었다. 이전의 연수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나는 밤 11시쯤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 힘들었던 하루를 머릿속에서 비워내려고 운동장을 달렸다. 그리고 다시 기숙사로 돌아왔다. 숨 막힐 듯한 더위에 숙소 창문이 대부분 열려 있어서 방안이 다 들여다 보였다. 그때 나는 충격을 받았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지만 동료들 모두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일을 하고 있었다. 신임 부회장은 근무시간을 늘리고 휴가를 없앴다. 회의와 소집을 늘렸고, 수십 명의 임원을 해고시키기도 했다."

<한국인은 미쳤다> 중 , 에리크 쉬르데주


LG전자의 해외 법인장을 했던 프랑스인이 쓴 책을 읽었다. 외국인 직원은 버티기 힘들다는 국내 대기업에서 무려 10년간 일하며 겪었던 일을 책으로 써냈다. 그는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거 같다. 그동안 한국 기업은 엄청난 집중력과 노력, 에너지를 들여 일류 기업을 만들어냈다. 일본인과 다르게 지치지도 않았다. 그러나 성공의 확실한 법칙 처럼 보이던 장점도 시간이 지나면 단점으로 바뀌지 않을까.


얼마 전 또다른 국내 대기업의 일화를 가지고 기사를 썼다. 지치지도 않은 뚝심으로 세계 5위권의 자동차회사로 성장한 현대자동차다. 유가가 떨어지면서 미국 시장에서 현대차가 가지고 있던 효율 좋은 차의 매력이 떨어지고, 러시아 인도 등 신흥경제국의 소비가 감소하면서 강점이었던 신흥시장의 성장이 감퇴하면서 현대차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현대차만 어려운 시기는 아니다. 삼성전자도 애플이 아이폰의 화면 크기를 키우고, 중국 업체가 자국시장에서 급격히 성장하면서 이익률이 크게 떨어졌다. 한국 경제를 이끌던 전차(전자, 자동차)군단이 이러니, 다른 대기업 들이 더 어려운 것은 불보듯 뻔하다.


이런시점에 나온 대기업의 해결책은 이거다. 야근 금지하던 분위기에서 후퇴. 출근시간 앞당기기. 주말에도 출근하기, 더 나아가 아침 커피 한잔 못하게 하기, 점심시간 일찍 가기 금지 등등이다.

이런 방법이 효과가 있을까 하고 의견을 듣고 기사로 써봤다. 물론, 에리크 쉬르데주의 지적과 달리 여전히 한국 기업의 장점으로 작동이 된다면 이들 기업의 사정은 괜찮아질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일터로 향하는 노동자는 카페인이 필요하다. 현대자동차 로고가 새겨진 파란색 사원증 목걸이를 건 남자는 시내버스 좌석에 깊숙이 몸을 파묻었다. 목받이가 없는 의자에 목까지 기댄 그는 ‘하나로마트’를 알리는 안내방송에 잠이 깼다. 못내 아쉬운 듯 문이 열린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나 407번 버스에서 내렸다.


파란 버스에서 내린 흰 와이셔츠 차림의 직장인들은 모두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그룹 본사 건물로 향했다. 누군가는 어제 야근을 했고, 누군가는 어제 회식을 했을 것이다. 그는 1층 로비에 있는 카페를 힐끗 쳐다보더니 그대로 게이트를 통과했다. 처진 어깨는 ‘각성 효과가 있는’ 카페인이 든 커피를 원했지만, 카페 앞에 선 줄은 20명이 넘었다. 그는 커피 한 잔 들지 못하고 엘리베이터 안으로 사라졌다. 카페 앞 안내판은 기초질서 확립을 알렸다. “양재 사옥 기초질서 확립 및 시업시간 준수 목적 7시50분부터 9시까지 잠시 휴장하오니 고객님의 넓은 양해와 협조 부탁드립니다.”


자료: 잡코리아(6월23~26일 직장인 1365명 대상 온라인 설문조사)


아침 7시48분이 되자 카페 점원이 카트를 밀고 나와 기다리는 사람들의 맨 뒤를 막았다. 더 이상 줄을 서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가방을 메고 다급하게 온 직원들은 스마트폰을 꺼내 점원에게 보여줬다. 7시50분이 되기 전이니 커피를 사게 해달라고 사정했다. 마스크로 입을 가린 점원 역시 시간이 다 됐다고 사정했다. 몇 명은 돌아섰고, 몇 명은 줄을 섰다. 카페는 실내 전등마저 꺼버렸다.


기다리는 이들은 거의 다 젊은 직원들이었다. 부장이나 임원급 이상 직원들은 보이지 않았다. 부하 직원이 들고 오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이는 아침 커피 한 잔의 소중함을 모를 것이다. 7시50분이 되자 점원은 의자에 앉은 이들에게도 카페가 휴장한다고 알렸다. 이른 출근에 아침을 못 먹고 온 여직원 두 명이 샌드위치를 치우고 일어섰다. 마지막 주문에 성공한 이가 잰걸음으로 동료에게 다가가 커피를 건넸다.


현대자동차 홍보실 관계자는 “(회사에) 기초질서 확립이 필요하다. 일반 직원은 언론에 회사 사정이 어렵다고 기사가 나와도 체감하기가 어렵다. 이렇게 하면 직원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효과가 분명히 있다”고 설명했다. ‘기초질서’는 카페뿐만 아니라 구내식당에서도 강조된다. 현대차그룹은 본사 사옥 지하 1층 구내식당 앞에도 카메라를 설치했다. 수백 명이 몰려 붐비는 탓에 일부 직원들은 낮 12시 이전에 식당을 찾는데, 그런 직원들을 적발하기 위해서다. 현대자동차 직원들은 통제가 심해졌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원래 자율보다 ‘군대문화’로 유명한 기업이다. 이런 기업의 대리·과장들이 출근 뒤 카페에서 노닥거리거나 상사보다 먼저 식당에 갈 수 있었을까.


현대자동차는 2015년 상반기 241만5777대의 자동차를 팔았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2% 줄었다. 상반기 영업이익은 3조3389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1%나 감소했다. 경쟁력 약화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직원들이 더 열심히 일해야 할 때”라고 홍보실 관계자는 힘주어 말했다.


‘더 열심히 일한 지’ 오래된 이들은 서울 서초동 삼성 사옥에도 있다. 삼성그룹 임원들은 3년 전인 2012년 7월께 출근 시간을 6시30분으로 앞당기라는 그룹 미래전략실의 메시지를 받았다. 새벽 출근뿐만 아니라 토요일·일요일에도 회사에 나왔다. 최지성 그룹 미래전략실장이 앞장섰다. 유럽 재정위기가 지속되며 매출 감소가 우려되자 임직원들에게 위기의식을 불어넣기 위한 조처였다.


자료: 잡코리아(6월23~26일 직장인 1365명 대상 온라인 설문조사)


위기의식은 3년째 만성화됐다. 2014년 5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쓰러지면서 임원들의 새벽 출근과 주말 출근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삼성그룹 커뮤니케이션팀 관계자는 “임원들이 일주일 내내 일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주말 출근은 다른 기업으로도 확산됐다. 최근 ‘비상경영’을 선포한 포스코그룹의 팀장급 이상 직원들은 토요일에도 회사에 나온다. 포스코는 철강업계 불황으로 인한 매출 감소뿐만 아니라 정준양 전 회장 주변에 대한 검찰 수사 등으로 시련을 겪는 중이다. 포스코 커뮤니케이션실 관계자는 “경영 쇄신을 위한 아이디어를 논하는 등 리더급 사람들이 솔선해서 일해보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일부 포스코 협력업체도 덩달아 간부급 직원들에게 ‘1시간 더 일하기 운동’을 실천하도록 하고 있다.


이른바 ‘직원 군기잡기’는 한국 대표기업만의 모습이 아니다. 취업 포털 ‘잡코리아’가 <한겨레21> 의뢰로 6월23~26일 온라인 설문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직장인 1365명 가운데 48.8%(666명)는 ‘최근 회사가 근무기강을 더 강조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방법은 주로 사무실 의자에 잡아두는 것이었다. 근무기강을 강조하는 방법(복수 응답)으로 가장 많이 꼽힌 것은 ‘점심시간 엄수·사무실 이탈 방지’(282명)였다. ‘기강 확립을 강조하는 사장·상사의 이야기가 늘었다’ (250명)와 ‘근태가 좋지 않은 직원에 대한 불이익이 늘었다’(230명)가 뒤를 이었다.

효과는 있을까?

회사에서 일하는 설문조사 응답자들은 부정적이었다. ‘근무기강 강조 뒤 일에 대한 긴장도 등 태도에 변화가 있었습니까’라고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다르지 않다’(53.8%), ‘모르겠다’(13.2%)고 답했다. ‘예전보다 강화됐다’고 말한 비율은 27.6%였다. 경영진이 의도한 대로 ‘회사의 경쟁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는가’ 묻는 질문에 응답자들은 고개를 저었다. 40.9%는 ‘별 차이가 없다’고 했고 23.7%는 ‘효과가 전혀 없다’고 했다. 30.9%만이 ‘조금 효과가 있다’고 했다. ‘매우 효과가 있다’(4.5%)고 한 이는 극소수였다.


직위가 임원, 대표라고 응답한 이들의 반응은 다르다. 이들은 근무기강 강조 뒤 '예전보다 분위기가 강화됐다'는 응답이 43.8%에 이르렀다. 평균 27.6%보다 훨씬 높다. 왜 회사에서 전통적인 방식의 근무기강 강화가 여전히 이뤄지는지 짐작할 수 있는 비교다. 임원, 대표급은 '회사의 경쟁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는가' 질문에도 25%는 '매우 효과가 있다', 43.8%는 '조금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삼성그룹 계열사에서 일하는 과장급 직원은 “오히려 직원들 사기를 저하시키는 지시”라고 휴대전화에 대고 말했다. “경영진이 어려울 때마다 꺼내는 카드인데, 임원이 나오면 팀장도 나오거나 대기한다. 이들이 실무자 없이 할 일이 많지 않다. 그저 윗사람 눈치만 보는 식이다.” 삼성 주변에선 주말에 삼성 직원들이 쓰는 ‘싱글’ 메신저창에서 최지성 미래전략실장이 ‘오프라인’으로 표시되면 임원들이 퇴근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자료: 잡코리아(6월23~26일 직장인 1365명 대상 온라인 설문조사)


직원들의 군기를 잡는 효과는 데이터로도 확인된다. 직장인들의 기업평가 사이트인 ‘잡플래닛’은 SK이노베이션의 2014년과 2015년 직원 만족도를 조사했다. 정유업체인 SK이노베이션은 경영 사정이 악화되자 경영진을 교체하고 올해 초부터 직원들의 야근을 허용하는 등 기존 방침을 바꾼 바 있다.


결과는 놀라웠다. 직원들이 회사에 준 총평점(5점 만점)은 지난해 하반기 4.08에서 올해 상반기 3.41로 떨어졌다. 경영진에 대한 평가는 3.49에서 2.47로 추락했고, 사내문화에 대한 만족도도 4.11에서 3.44로 미끄러졌다. 잡플래닛 누리집에선 그 기업의 현직 또는 전직 직원만이 ‘경영진’ ‘업무와 삶의 균형’ ‘복지 및 급여’ 항목 등에 점수를 줄 수 있다. SK이노베이션이 2013년 시작했던 ‘만성적인 야근 금지’ 방침을 철회하자 일어난 변화다.


직원들은 잡플래닛 게시판에 이렇게 썼다. “적자 한 번에 무너진 좋은 문화.” “조직 활성화를 하는 데 과거 5년을 썼으나 불과 한두 달 사이에 언제 그랬냐는 듯 과거로 회귀하는 모습은 결코 환영받는 게 아니다.” “최고 경영층의 한마디로 주말에 근무하거나 불합리하게 의미 없는 일을 반복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직원들은 연봉이 아니라 회사가 하는 일에서 메시지를 읽는다. 대외적으로 하는 사회공헌활동 등이 아니라, 누구를 어느 자리에 앉히는지 등 인사가 메시지다. 조직원의 건강을 걱정하는지, 가정 등 ‘일과 생활의 균형’을 배려하는지 등 때로는 사소한 것에서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얻거나 일에 대한 몰입도를 높인다.

서울 광화문역 근처 퇴근길 모습.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2008년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선 구내식당 밥값을 1천원에서 2천원으로 올린 사건이 있었다. 금융위기가 닥치자 직원들에게 경영 환경의 변화를 체감하게 하려는 조처였다. 많은 연봉을 받는 삼성전자 직원들이지만 밥값 1천원에도 사기는 눈에 띄게 떨어졌다. 익명 게시판에선 경영진을 성토했다. 결국 부사장급 인사팀장이 사원 대표들을 강당에 모아놓고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사과하고 밥값을 원래대로 내렸다.


당시 수원사업장에서 일했던 전 삼성전자 직원은 “밥값을 2천원으로 올린 것은 비용을 절감하려는 게 아니라 직원들 정신을 무장시키려는 것이었다. 직원을 긴장시켜야 한다는 시대착오적 발상이었는데 경영진이 그래도 역효과가 있다는 것을 빨리 눈치챘다”고 기억했다. “점심시간을 지키라고 하거나 출근을 빨리 하라는 경영 방침을 두고 나쁘다 좋다고 할 게 아니라 이게 실제 경쟁력에 도움이 되는지 삼성은 그때 계산을 잘한 거죠.”


직장인 교육전문 업체 ‘휴넷’의 조영탁 대표는 기업의 근무기강 잡기를 고리타분한 방법이라고 비판한다. “주말에도 출근하고 야근 독려하는 게 옛날처럼 먹힐까. 애플이나 구글, 중국의 알리바바나 샤오미를 보면 직원들의 창의성이 경쟁력이 되는 시대다. 그런데 우리는 임원들이 총수에게 ‘열심히 한다’는 것만을 보여주려 한다. 기업들의 경영관리가 낙후돼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심각한 상황이다.”


자료: 잡코리아(6월23~26일 직장인 1365명 대상 온라인 설문조사)


한 철강업체에서 일하는 직원은 올해 다시 한번 회사에 실망했다. 두 달 전 회사는 팀장급 이상은 토요일마다 출근하고, 평직원들은 평일에 30분 일찍 출근하고 30분 늦게 퇴근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이런 식으로 위기의식을 공유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지 참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회사 내 전략적이고 굵직한 선택은 모두 윗사람이 한다. 실무자들은 그 결정을 따를 뿐이다. 회사가 어려워지면 상부 경영진이 책임을 지는 게 맞다. 진정성 어린 반성의 모습을 보이고 사과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런 모습은 없고 ‘출근 빨리 하고 퇴근 늦게 하라’는 조처가 나온다.”


리더가 보이지 않고 비전도 보이지 않는 회사에 열정을 갖고 달려들 직원은 없다. 임원들이 강조하는 일에 대한 몰입이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열정에서 나온다. 세계적인 기업 구글의 전 최고경영자 에릭 슈미트는 자신의 책 <구글은 어떻게 일하는가>에서 “전문성과 창의력을 가진 직원에게는 스스로 통제할 권한을 줘라. 그러면 그들은 대개 어떻게 하면 생활의 균형을 찾을 것인지 알아서 최선의 결정을 내릴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국 기업은 ‘스스로’와 ‘최선의 결정’을 직원에게서 빼앗고 있다.



* 6월30일 발간된 <한겨레21> 기사를 7월27일 업데이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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