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쓰기를 위한 왕도 아닌 '큐레이션'
"커피가 필요한 몸이다"라고 기사 첫 문장을 쓰고, '글이 왜 이따구냐' 라고 한탄했다. 내 손가락은 키보드 위에서 '좋은 문장이란 게 뭐에요' 따위는 고민하지 않는 살점인가. (지금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시작이다.소설가 김연수라면 이렇게 표현했을지 모른다. "내가 쓴 초고를 보면 내 머리통은 무슨 음식물 쓰레기통처럼 느껴진다.") '땅을 삼켰던 난폭한 물이 앙상하게 야위었다'라고 시작하고, '문학 없이도 사람은 산다'고 이어가는 선배들의 기사를 보며 헤는 밤에는 더 그렇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물의 뼈.
땅을 삼켰던 난폭한 물이 앙상하게 야위었다. 가뭄이 물의 살을 발라내자 물속에 파묻힌 땅들이 마른 뼈처럼 드러났다. 수몰의 역사를 축적한 물의 기억들은 갈라진 강바닥과 건물터 위에만 존재했다.
수몰민 주재영(63)씨가 배 대신 차를 끌고 수몰의 땅으로 나아갔다. 물이 매장했던 집과 방앗간의 위치를 그의 손가락이 가리켰다. 길이 나 있었고, 풀들이 무성했다. 야생화가 흐드러졌고, 발끝에 흙먼지가 차였다. 수몰민이 수몰의 기억을 불러내지 않았다면 수중에 속한 땅이었음을 알아채기 힘들었을 것이다. 지난해까지 물이 뒤덮었던 땅은 이제 물이 기어오를 수 없는 야트막한 야산처럼 보였다.
(이문영 기자, <한겨레21> 1068호 '물의 뼈 가난의 뼈가 앙상한 가뭄') 1068호는 월요일 서점에 가면 만날 수 있다.
문학 없이도 사람은 산다. 문학이 생활필수품은 아니다. 칫솔질을 안 하면 치아가 썩지만, 문학을 읽지 않았다고 정신이 썩는 것은 아니다. 문학은 인간 정신의 우듬지이지만, 우듬지가 잘렸다고 나무가 죽는 것은 아니다. 우듬지는 나무의 꿈이고, 문학은 인간의 꿈이다. 둘의 꿈은 종이 다르다. 꿈이 없어도 사람은 산다. 문학이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것은 더 나은 삶에 대한 믿음과 의지 때문이다.
(전진식 기자, <한겨레21> 1068호 '신경숙, 잘못 만져 덧나는 상처') 이 역시 월요일 서점에 가면 만날 수 있다.
이전부터 읽으려 했던 <씨네21> 특집호(1003호)를 꺼냈다. 영화잡지인데 20주년 기념호로 글쓰기를 다뤘다.다. 다른 이는 어떤 해법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기성용처럼 답답한 사람이 찾는 수 밖에...
해법를 찾는 이유에 대해서 영화평론가 이현경씨는 책 <글쓰기는 스타일이다>를 소개하며 이렇게 썼다. "짙은 어둠이 드리운 숲, 좌표를 가늠할 수 없는 망망대해 혹은 사막, 글쓰기는 이러한 공간을 헤쳐나가는 두려움과 외로움을 겪어내는 행위다. 글쓰기에는 정답도 정도도 없다. 알려줄 수도 배울 수도 없는 것이 글쓰기의 본질이지만, 그래서 역설적으로 글쓰기야말로 좋은 스승과 지침서가 필요하다."
특집호에는 좋은 글이 많았다. 페이스북에는 기록해두기 너무나 긴 글들이라 브런치에 남겨놓자는 생각이 들었다. 일종의 큐레이션이다. 아마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분에게도 이 큐레이션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세상의 얕은 지식을 전한다는 한 모바일 매체(?)의 쉬운 방법이지만, 이렇게 모아놓으면 나도 가끔 답답해지면 다시 찾기 편할 듯 하다.
"일단 글쓰기를 시작하고 나면 빈틈은 반드시 생기기 마련이다. 이 빈틈을 무엇으로 채우느냐에서 어쩌면 글쓰기의 본질이 드러난다. 어떤 사람은 이걸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 지식과 허영으로 채운다. 그 순간 글은 독이 된다. 그 빈자리를 상대에 대한 공감, 대상에 대한 이해로 채워야 한다. 글쓰기라는 건 삶의 태도가 묻어나는 일이다. 좋은 문장을 남기려 집착하기 보다는 정확히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슨 말을 하고 싶은 지부터 찾아나갈 필요가 있다. 물론 글쓰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다. 하지만 글쓰기 재능이 있다면 그건 문장력이 아니라 공감하는 능력이 아닐까. 공감을 해야 관찰이 시작되고 관찰을 하려면 주의 깊게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걸 잘 할 수 있는게 기본이다." (김중혁, <씨네21> '유시민과 김중혁, 글쓰기를 말하다')
"지금은 글쓰기의 경계가 되게 허물어지고 있다. 프로 작가와 생활 글쓰기의 경계도 무너졌고 문학의 진입장벽도 낮아졌다. 인문, 사회, 과학 등 각 분야의 경계도 허물어졌다. 대표적인 것이 책에서도 수차례 예를 든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같은 책이다. 문사철 하는 사람도, 아니 인문학자 일수록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권한다. 이후에 쓴 <창백한 푸른 점>이란 책도 좋다. 이 책을 읽고 물질로서의 인간에 대해 무지했구나 반성했다. 보이저 1호가 해왕성을 지나갈때 지구를 찍은 사진을 보면 아주 멀기 때문에 그냥 푸른 점으로 보인다. 그 푸른 점을 묘사한 문장이 너무 좋다. 멀리서 보면 구분할 수도 없는 경계선을 두고 인간들이 서로 학살하고 싸워온 역사를 보면 우스워 보인다. 거시적인 시점에서 사고의 전환이 일어나는 책이다." (유시민, <씨네21> '유시민과 김중혁, 글쓰기를 말하다')
"정확한 문장을 찾을 것. 장인은 원하는 자재를 찾아 전국을 누비기도 할 것이다. 특정한 인식을 가장 정확하게 실어 나르는 문장은 하나 뿐이어서 노력하면 그것을 찾아낼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런 문장은 한번 쓰이면 다른 어떤 문장으로도 대체될 수 없다." (신형철 문학평론가, <씨네21> '필자들의 글쓰기 습관')
"일찍 착수하고 천천히 쓸 수록, 여러 번 수정할수록 덜 창피한 결과를 낳는다..... 마시다 남은 음료수 병과 잔이 집 안 곳곳에 늘어서는 바람에 마감날 집 풍경은 <싸인>의 멜 깁슨 네와 유사하다. 제목과 끝내는 문장부터 정해놓고 쓰기 시작하는 예는 드물지만 마지막에 정하는 경우도 없다." (김혜리, <씨네21> '필자들의 글쓰기 습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