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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a Lee Dec 26. 2023

하객의 의무

미혼녀의 삶

내 나이는 결혼 적령기. 흔히들 20대 후반부터 30대 중반까지를 사회적 암묵적 합의에 따른 결혼 적령기로 정하고 있다. 

적령기라는 말이 무섭게 주변인들이 마구 결혼을 하고 있다. 이 결혼 러시는 아마 내가 30이 된 무렵부터 꾸준히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다. 

하객의 의무도 누가 알려주지 않았지만 4년째 열심히 주변인들 결혼을 다니고 있는 짬바에서 나오는 애티튜드로 의무를 다하고 있다. 

먼저, 신부가 내 지인인 경우, 

신부는 신부대기실에서 결혼식 30분 전부터 마지막 신랑 신부 촬영을 마친 뒤 열심히 하객들과 사진을 찍는다. 그러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결혼식 30분 전에 신부대기실로 곧장 가야 한다. 축의금을 내는 건 신부와 사진을 찍고 난 뒤부터다. 결혼식의 주인공은 신부이기 때문에 모든 이들이 신부 대기실로 가장 먼저 가서 신부와 사진을 찍기 때문에 먼저 가서 그 사진 찍기 미션을 달성해야 한다. 

그리고 가방순이가 있다면 축의금은 그에게 전달하는 것이 센스다. 대부분 축의금을 받는 곳에서 축의금을 낸다면 부모님께 우선적으로 가기 때문에 신부의 결혼 종잣돈 마련의 기반을 미리 만들어주기 위해 가방순이에게 주는 것이 센스다. 물론 부모님이 잘 배분해 주는 집도 많지만 그래도 신부가 주인공이니 신부가 주체적인 자금관리를 할 수 있도록 하객이 도울 의무가 있다. 

신부와 사진을 찍을 때는 절대 신부의 얼굴이 나보다 커서는 안된다. 무조건 신부보다 앞으로 나가서 사진을 찍는 것이 가장 중요한 센스이다. 신부는 어떤 상황에서도 예뻐야 한다. 그리고 얼굴이 작아야 한다. 내 얼굴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신부의 얼굴이 중요하고 나는 신부의 결혼식에 왔다는 증거를 남기러 가는 도장 자국인 것이니 미모는 신부에게 몰아주는 것이 센스다. 근데, 간혹 하객들이 더 이쁘려고 신부를 맨 앞에 두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내가 친구를 잘 사귀었는지 알아볼 수 있는 신부에게는 하나의 테스트인 거다. 별거 아닌듯하지만 신부를 돋보이게 해주는 것이 진정한 친구다. 그런 친구는 오래오래 평생 잘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신부도 알아차리고 가져야 한다. 얼마나 여우같이 자기들이 가장 예쁘려고 애쓰는 하객들이 많은지 모른다. 

꼭 그리고 신랑과 같은 라인에 서있는 신부 부모님께 큰소리로 인사하고 가서 손 한번 잡으면서 웃고 축하드린다고 해야 한다. 그래야 신랑 쪽 가족들이 알게 모르게 보고 있을 때 신부가 얼마나 잘 살아왔는지 알 수 있는 척도다. 처음엔 이런 생각이 없었는데, 한 결혼식을 갔는데, 너무 신부 부모님께 인사하는 사람이 없으니 꽤나 민망해 보이기도 했었다. 내가 결혼할 때 내 친구들한테 꼭 나랑 사진 찍고 우리 엄마 아빠랑도 인사해 달라고 요청할 예정이다. 꼭 이런 모습에서 뒷말이 나온다. 결혼식 시작 전에 신랑 쪽 하객들이 얼마나 쑥덕거리던지 놀라울 따름이다. 

친한 친구라면 아마 축가나 축사는 신부의 친구 = 내 친구 가 하는 경우가 많다. 그때 축가나 축사를 하는 친구들에게 잘하라고 힘을 실어주고 꼭 긴장을 풀어주는 애티튜드도 필요하다. 


내 지인이 신랑이라면 정말 할 게 없다. 

결혼식 전에 가서 자리에 앉는 것보단 뒤에 서있는 걸 추천한다. 나는 여자이기 때문에 신랑과 괜히 너무 친한 모습을 보이면 또 흉 잡히기 좋다. 뭐 이런 거로 흉이 잡히나 했는데, 실제로 내 친구의 신부 쪽 가족들이 너무 여자인 친구들이 많다고 밥 먹을 때 이야기 하는 모습을 보고 정말 말 조심 하고 행동 조심해야겠다 싶었다. 이성인 친구가 결혼할 때는 꼭 데면데면 직장 동료인 것처럼 멀뚱멀뚱 있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나는 미혼이고 남편과 함께 결혼식을 간 게 아니기 때문에 말나 오기 딱 좋은 상황이다.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야 하나 하는데 정말 신경을 쓰지 않으면 여러 가지 말이 나와서 피곤해지는 상황이 여럿 연출 된다. ㅠㅠㅠㅠㅠ 

절대 신랑 쪽 하객으로 갔을 때는 울면 안 된다. 우는 순간 과거 여자친구로 오해받기 딱 좋다. 안 그럴 거 같지만 백퍼 밥 먹을 때 이야기 하는 사람들 최소 1명은 있다. 특히 내가 남편이 없이 여자들과 간 결혼식이면 더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물론 너무 심한 거 아닌가 글을 읽으면서 에잇 할 수도 있지만 100프로 겪었던 일들이다. 미혼녀는 여러 가지로 섬세하게 신경 써야 할 일이 많고 행동을 조심해야 하는 일이 많다. 주변 어른들이 꼭 말이 나온다. 특히 상대의 친척들! 보는 눈이 정말 많다. 직장동료들도 있겠지만 친척들 무시 못한다. 무조건 조신하게 얌전하게 있는 것이 무난한 하객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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