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나는 '나'였을까 '그것'이었을까
퇴사 과정에서 힘든 마음을 다독여준 책이 있다.
류시화 시인의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여러가지 글귀들이 마음을 도닥여줬지만
어쩔 땐 '아! 그거구나' 싶게 나를 깨우쳐 준 글귀들이 유독 많았다.
'나-너'의 관계는 온 마음을 기울이는 관계이며, '너'를 나의 의도에 따라 판단하지 않는다.
판단은 '나-그것'의 관계에서 주로 일어난다.
'나-너'의 관계는 사랑의 관계이고, '나-그것'의 관계는 쓸모의 관계이다.
'나-너의 관계는 상대방을 현존하도록 만들지만, '나-그것'의 관계는 눈앞에 있는데도 상대방을 유령처럼 만든다. 필요한 것은 그 사람이 가진 기능일 뿐이지 '그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때는 '너'라는 의미가 '내가 이용할 수 있는 용도'라는 의미일 뿐이다.
나에게 불필요한 '너'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렇게 됨으로써 '나' 역시 '너'에게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된다.
-숫자에 포함시킬 수 없는 사람_나와 너 중에서-
처음 이 문장들을 마주했을 때, 오랫동안 페이지를 넘기지 못했다.
회사에서 나를 돌아보게 해주는 글이었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남의 탓'을 하게 만들었는지, 왜 그렇게 '화'가 나있는지 스스로 깨달을 수 있었던 문장.
나는 회사에서 내 존재 자체로 인정 받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토록 많은 역할들이 더해지면서 나는 '너'가 아닌 '그것'이 되어갔던 것 같다.
책임을 다 하는 것, 성과를 내는 것, 나만큼 타인을 생각하는 것.
그것은 어느 순간 당연하고도 나의 '기능'이 되어 있었던 거다.
일을 잘한다는 건 존재를 인정받는 일이 아니라,
더 많은 일을 기대받는 일이 됐다.
돌아보면 나에게도 책임은 있다.
'너'가 아닌 '그것'이 됐음에도 알아차리지 못했고
나 스스로에게 관대하지 못했고, '내가 감당해야하는 몫'이라고 생각한거다.
한번은 의심하고 나 자신만을 생각해봤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이제 "쓸모의 관계"를 벗어난다.
나를 단지 무언가 해낼 수 있는 사람으로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존중하고 내 안을 더 들여다 보고 살아가기로 한다.
이제 '나를 회복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역할이 아니라,
내가 믿는 가치로 존재하는 나로 돌아가기 위한 시간이다.
나-너의 관계는 온 마음을 기울이는 관계다.
이제 나는 '나와 나' 사이에도 그런 관계를 만들어 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