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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고싶은JH Oct 20. 2023

내가 이미 충분한 나의 그대

 - 글쓰기를 시작하며.


" 누군가를 정말로 이해하려고 한다면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는 거야.

  말하자면 그 사람 살갗 안으로 들어가 그 사람이 되어서 걸어 다니는 거지."

                                                                          - <앵무새 죽이기> 중

                                                                 

➖️


살갗 안을 파고들 듯  존재의 핵심에 정확히 가닿는 일.

한 존재를 이루는 역사를 그대로 살아본 뒤에야 비로소 한 시점의 그를 말하는 일.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애정의 깊이, 신뢰와 별개로 그것이 불가능한 일임을 깨달은 뒤로 인간의 근원적 외로움은 '평생의 벗' 같은 것이구나 하였고, 내 마음의 중심을 변하지 않는 그 어떤 것에 두어야 하는 걸까 고민했다.

변해가는 걸 바라볼 때 관자놀이를 스미는 서늘한 바람 같은 것에 무심해지는 법. 내가 버리지 않으면 나를 버리지 않을 그 무엇.

그게 나에겐 음악, 여행, 추억, 영원한 내 마음의 비빌 언덕인 엄마. 무엇보다 나 자신이다. 내가 나의 ‘이미 충분한 나의 그대’이고 싶었다.


최근에 은유 작가님의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를 읽었다. 글쓰기 책이었지만 나에겐 오히려 심리 상담 서적이었다. 내 마음이 오롯이 담긴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서문에 나는 속수무책으로 빨려 들어갔다. ‘형태 없는 감정, 압력만 있는 슬픔’을 내 마음에 꼭 맞는 언어로 표현하는 ‘글쓰기’가 '이미 충분한 나의 그대가 되어주는 일'이라니. 왜 여태 제대로 써볼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은유 작가님의 표현에 의하면 글쓰기는 자기 구김을 섬세하고 따뜻한 눈길로 펴는 작업, 그렇게 함으로써 더 이상 그 일이 내 일상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나와 아픔을 분리하는 일이라고 한다. 또한 삶에서 버릴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기에 어떤 사물, 현상, 존재에서 다른 의미를 발굴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2015년 2월부터 1년 반 동안 재활병원에서 엄마의 보호자로 살았다. 그리고 엄마의 일상생활 적응을 지원하며 돌봄을 이어가고 있다. 자그마치 8년이 넘는 시간. 1년에 평균 두 번씩, 45여 개국을 배낭여행하고 많은 모임과 취미활동으로 집에 발붙이고 있질 않던 내게 모든 것을 멈추고 내려놓은 그 시간은 어머니가 마주친 인생의 바닥을 함께 해드릴 수 있는 감사한 시간이면서 내 존재가 온통 흔들리는 경험이었다. 엄마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면서 내가 바닥으로 끝없이 가라앉았다. 화만 나면 나를 무시하고 폭력적인 언사를 하던 남자친구가 내 유일한 붙들 곳이었던 세월 동안 나는 초라한 나를 끝없이 의심했다. 이토록 하찮고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인간이라니.  모든 걸 걸고 엄마를 돌봐도 자매들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삶이라니. 


오랫동안 뒷전에 밀려나있던 나를 돌보기로 하고 무작정 달리기를 시작했던 2023년 1월 2일.

그날 떠오르던 태양에 붉게 물든 아침 하늘을 아직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리고 글쓰기를 시작하는 첫날 새벽 4시 40분. 열어젖힌 창, 까만 하늘에 오리온자리가 선명하게 보였다. 


어릴 때부터 나는 스스로를 관조했었다. 저 높은 곳에서 책상 앞에 앉은 나를 내려다보며 표현할 길 없는 온갖 마음을 바라봤었다. 그리고 결국엔 좋은 쪽으로 생각의 방향을 틀었다. 그것은 내가 이미 내 안에 글쓰기 씨앗을 품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싶다. 


엄마를 재활 간병하면서 경험한 일, 그렇게 자세히 바라본 엄마의 사랑스러움. 엄마 아빠를 돌봄으로 인해 자주 괴로워하면서 부모님의 삶을 이해하게 된 일, 불 꺼진 병실에 누워 쉬이 잠 못 들고 돌아본 내 인생. 그 일이 내게 주는 의미를 하나하나 돌아보고 싶다.


과거를 회고하고 의미화하는 작업은 제법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만 한 걸음씩 나아가 보려고 한다.


나는 주관이 매우 뚜렷하고 누군가에게 소위 말해 '입대는 것'을 싫어한다. 자신의 주관이 뚜렷한 것과 이것만이 정답이라고 주장하며 다양한 삶의 조건에 놓인 사람들을 오답의 범주로 밀어 넣는 것에도 거부감을 느낀다. 또한 누군가에게 나눠줄 방대하고 굉장한 지식이랄 것은 없는 평범한 사람이다.


하지만 나의 글쓰기를 오래오래 삶으로 이어간다면, 은유 작가님과 홍은전 작가님처럼 아무도 해치지 않는 글을 쓰고 싶다.  성장, 경쟁, 효율에 가치를 두는 사회에서 삶의 가치, 돌봄, 불평등, 그리고 배제되어 한 켠으로 밀려난 존재들을 일깨우는 두 분 작가님의  ‘아름다운 예민함’을 보며, 격랑 속에 배를 붙드는 작지만 강한 닻을 떠올린다.  부단히 배우고 사유하고 쓰는 삶을 통해 주변을 조금이나마 온기 있는 생각으로 보듬을 수 있다면, 그리고 따뜻한 말을 조심스레 건넬 수 있다면, 그것으로 내 삶이 굉장히 사는 것 같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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