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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들의 고향, 에버렛

가 보고 싶어서, 포틀랜드_여행의 마무리, 시애틀 (1)

by JH

포틀랜드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는 곳은 시애틀이었다. 동아시아와 가장 가까운 미국 도시 중 하나인 시애틀은 분명 매력적인 도시이다. 많은 영화의 무대였던 시애틀이지만, 현빈과 탕웨이가 주연한 '만추'의 도시라는 점이 내 마음을 들뜨게 했다. (물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무언가 로맨틱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 도시라고 생각했으며, 무엇보다도 내가 가장 가 보고 싶었던 곳인 보잉사의 항공기 공장이 시애틀 인근의 에버렛(Everett)이라는 도시에 있었기 때문이다.


보잉 "퓨처 오브 더 플라이트" 뮤지엄 입구. 높은 천장고가 깊은 인상을 준다.


와인 명산지인 왈라왈라에서 시애틀 인근의 애버렛까지 쉬지 않고 자동차 페달을 밟았다. 왈라왈라에서 에버렛까지는 470km 정도 떨어져 있어, 대략 차로 네 시간 반 정도의 거리이다. 보잉사의 플라이트 오브 뮤지엄 방문과 공장 투어를 예약했기에 그 시간에 맞추자면 쉬지 않고 차를 몰아야 했다. 워싱턴주의 내륙에서 해안 도시인 시애틀까지 가는 길인 인터스테이트 (고속도로) 82번과 90번 도로는 정말 장관이어서, 동행자가 있다면 꼭 사진을 찍어달라 말하고 싶을 정도였다. 캐스캐이드 산맥은 생각보다 가파르고 거칠며, 대단한 장관을 이루고 있어서 산맥 사이를 어렵사리 관통하는 고속도로를 타고 차를 몰고 있으면 순간순간 경치를 봐야 할지, 운전에 집중해야 할지 혼동되기도 했다.


그렇게 도착한 에버렛의 항공기 공장에서의 투어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으로 남게 되었다. 나는 흔히 말하는 덕후 수준은 아니지만, 항공기를 많이 좋아하는 편이다. 아마 어렸을 때 공항에서 겪은 경험들과 기계에 대한 환상 같은 것이 적당히 버무려진 결과가 아닐까 싶다.


드림리프터가 배를 드러내는 모습. 투어 가이드도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은 아니라며 사진을 많이 찍어두길 권유했다.


보통 어린이 혼자서 비행기를 탈 때는, 항공사는 ‘비동반 소아 서비스’ (Unaccompanied Minor; UM)를 제공하는 경우가 있다. 내 어렸을 적에는, 아버지는 나를 이 서비스를 이용해서 친척집에 종종 보내곤 했다. (아마도 아이를 잃어버리는 상황을 걱정한 것 같다.) 공항에 일찍 도착하면, 아이를 공항 격납고나 비행기 조종석에 종종 출입시키고 구경시켜주곤 했었다. 물론 항공기 보안이 엄격히 강화된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일지 모른다. 어린 나의 눈에는 ‘만화에서 보던 로보트가 실제로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수많은 계기판과 기계 장치, 제트 엔진이 뒤섞인 이 커다란 쇳덩이가 하늘에 띄워진다는 것이 굉장히 신기했었다.


광활한 대지만큼 너른 공장. 사진에 다 담기지 않아 아쉽다.


이번에 포틀랜드에 가기 위해 시애틀을 거쳐야 함을 알았을 때, 바로 떠올린 곳은 바로 보잉사의 “Future of Flight” 투어 프로그램과 에버렛 공장 방문이었다. 어른이 되고 나서 그때의 기억을 다시 떠올릴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미국의 5곳에 있는 보잉사의 비행기 공장 중, 시애틀 북부의 에버렛에 있는 이 공장은 세계 최대 규모의 단일 건물이며 버스가 없다면 공장 내 이동조차 어려울 정도로 큰 곳이다. 이 곳에서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떠올리는 보잉사 여객기인 747, 777 등의 광동체 여객기를 조립하고 생산한다.


사진 촬영을 비롯한 공장 내부의 모든 곳에 대한 동선과 행동은 철저히 통제되었다. 그 덕분인지 온전히 내 눈과 촉감만으로 비행기의 부품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3층 높이의 관람 데크 위에서 거대한 건물 안에 있는 비행기들이 조립되는 광경은 정말 대단했다. 인류가 가진 모든 지식과 기술이 한 곳에 모여 무언가의 형태로 실현되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투어 가이드의 설명과 함께 비행기의 몸통인 알루미늄 동체와 카본 동체를 만지며 항공기의 조립을 관람하니, 어렸을 때 격납고에서 본 비행기의 모습도 기억에 떠오르기도 했다.


서울에서 종이 글라이더를 한 번 다시 사볼까 고민케했던 어린이 대상 과학 행사


공장 투어를 마치고 나오자, 방문객센터의 역할을 하는 플라이트 오브 퓨쳐 뮤지엄에서는 마침 지역의 어린이들을 위한 항공/우주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초등학교에서도 볼 수 있는 고무동력기와 글라이더, 물로켓과 같은 것부터 시작해서, 미국만이 가능할 것 같은 우주 관련 전시 및 강연 (... 이소연 우주비행사가 왜 여기 있는지는 나중에 생각해보려 한다) 행사들이 박물관 안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여기에 온 아이들도 나중에 나같이 비행기를 좋아하는 어른으로 커 나갈까? 이런 생각을 하니 괜스레 아이들이 내 어릴 적 모습을 떠올리게 해서 더욱 예뻐 보였다.



항공/우주와 관련된 부류에 흥미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사진 촬영도 불가능하고, 제한적인 투어만이 가능하기에 그저 큰 공장을 방문하는 일정이 무료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비행기를 보면 설레고 가슴이 뛰는 사람이라면 꼭 가보는 걸 추천한다. 물론 굿즈 쇼핑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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