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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형란 Dec 28. 2018

이를 테면...

꽤 내켜하는 일인데도 머뭇거리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이를 테면,

밀크티에 펄을 넣어 드릴까요? 하는 물음에 대답하는 일 같은 것.

마음 같아선 손잡이 긴 티스푼으로 떠먹고 싶지만, 내게 허락되는 건, 다루기 녹록잖은 빨대 하나.

어쩌다 너무 힘껏 빨면 펄이 목에 탁 걸리기도 하고, 빨대로 어쭙잖게 펄을 떠먹다간 빨대 뒤쪽으로 밀크티가 주르륵 흘러 낭패스러운 상황을 빚기도 한다.

아예 펄에 신경을 끄고 그냥 차만 마시다 보면, 나중엔 남아있는 펄을 몰아 먹다가 잡곡밥 먹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이번엔 펄을 균등하게 먹어야지 신경 쓰다 보면, 흡사 노동할 때 참 시간에 빠듯하게 주어지는 우유를 빵에 모자라지 않게 말 한마디 안 하고 비율을 조절하며 먹던 때 같아서, 밀크티를 마시며 누리려던 따뜻한 한 줌의 여유를 놓쳐 버리게 된다.


또 이를 테면,

연애할 때 키스 같은 것들.

원래 몸과 몸이 만나는 일 자체가 따뜻하고 좋은 일인 데다가, 입술과 입술은 더 짜릿하고 설레는 일이긴 한데, 이게 실제로 닥칠 때는 드라마에서처럼 자연스러운 게 아니라서, 이즈음일까? 조금 있다가인가? 각도는? 코는? 이만큼에서 끝내나? 조금 더? 이런 것들을 신경 쓰다 보면, 상대는 어떤지 몰라도 나만큼은 영 즐긴다는 느낌보다는 일하는 것 같은 긴장감이 들곤 했다.


또 이를 테면,

상 받는 것 같은 일들.

잘했다고 치켜 주는 거야 늘 좋은 일이지만, 남들 앞에 나가서 뭔가를 두 팔 내밀어 받는다는 것이 영 쑥스럽고, 거기에 인사말이라도 한 마디 해야 하면, 차라리 안 받고 싶기까지 했던 게 여러 번이었다.


이렇게 소심한데 난 왜 살이 찔까, 의아해하다가는

아, 소심해서 살이 찌는구나, 갑자기 모든 게 이해되기도 한다.


새해에는 우물쭈물하며 맞이할 좋은 일들보단

그냥 마냥 좋아할 수 있는 행복한 일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이를 테면,

데이트 길에 맞이하는 함박눈 같은 것들.

그저 한껏 웃으며 폴짝폴짝 뛰어도 어색하지 않은 새하얀 즐거움.


또 이를 테면,

매주 손꼽아 기다려 보던 웹툰의 해피엔딩 같은 것들.

눈물 한 방울도 기꺼이 바치고

다 아는 내용인데도

몰아보기에 다시 이만 원쯤 쾌척하고도 오래도록 뿌듯한...


또 이를 테면,

어쩌다 건진 제법 괜찮은 시 하나 같은 것들.

이게 내 속에서 나왔단 말이지, 내심 흥분되는 그런 순간들.


새해에는 내 일상에

그리고 당신의 일상에도

그런 순간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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