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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형란 Jun 30. 2020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시간표

Andrik Langfield 님의 사진을 감사한 마음으로 옮겨왔습니다 - https://unsplash.com/)


지난주 목요일에 잣죽을 주문했다.

교통사고로 병원에 누워있는 친구에게 보내고 싶어서였다.


어렸을 때 먹던 종로 복떡방 잣죽, 어른이 되어 먹어보니 내가 집에서 만들어먹는 것만큼 진한 것은 아니었지만, 사먹을 수 있는 것 중에서는 꽤 괜찮은 것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어렸을 때의 기억이 남아있어 내게는 힐링 푸드의 느낌도 조금 있는 품목이다.


내게 오는 물건은 아니었지만, 물건을 사고나면 늘 더 빨리 배달이 되기를 바라는 건 언제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목요일에 주문을 했고, 냉장 식품이니까 어쩌면 더 빨리 배송이 될 수도 있을 테니, 금요일쯤엔 친구가 받아볼 수도 있겠다고 은근히 기대를 했다.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언제나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어서, 금요일 오전 수업을 마치고 휴대폰을 보니, 재고가 소진되어 월요일에나 물건이 발송되겠다는 내용이 담긴 문자가 와 있었다. 하루라도 빨리 보내고 싶었던 마음이었으니 실망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런데 오늘 오후,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무슨 계시라도 받았냐며, 오늘부터 간병인이 오지 않아 조금 막막하던 중이었는데, 잣죽이 배달와서 큰 위로를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보이지 않는 시계가 있는 듯하다. 오늘처럼 이렇게 사후에라도 내가 그일이 틀어졌어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되는 경우는 사실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최선을 다했는데도 내게 일어났던, 혹은 우리에게 일어났던 그 수많은 불운들, 아쉬움들, 어쩌면 우리가 볼 수 없는 시계에 맞춰 늦춰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물론 내가 게으름을 피워 놓치는 것은 예외다.


尽人事待天命,다시 한 번 새겨본다. 내가 최선을 다하면, 틀어지는 일도 결국엔 좋은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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