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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형란 Dec 19. 2020

강요

#디카시

강요



훈풍기를 쓴 곳만
길가 풀이 죽었다

억지로 한 화해는
누군가를 마르게 한다


2020. 12. 18         이형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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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잘못 했다고 그래!
한 마디에 우왕~ 울음을 터트렸던 기억이 있으신지요.
뾰루퉁해서 입을 쭉  내밀고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억지로 화해를 했던 기억이 있으신지요.


실제로 자신이 잘못한 일이었다고 해도 오래 기억되는 건 내가 얼마나 잘못 했던가가 아니라, 억지로 사과하고 고개를 숙였던 그 내키지 않음이기 쉽지요.

억지로 하는 게 힘든 건 사람 뿐만이 아닌 듯합니다.

어제처럼 눈이 내린 날에도 남산에는 저처럼 성미 급하게 걸으러 나온 이들이 끊이지 않아 곳곳에서 훈풍기로 눈을 녹이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앗, 여기는 눈 녹았다, 반가워하다가 눈길이 문득 길가의 풀에 얹혔겠지요. 훈풍기가 지나간 자리만 누렇게 죽어 있는...
언 풀들은 봄이 되면 다시 푸르러지겠지만, 더운 바람에 말라죽은 풀은 봄에 다시 살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할 일은 성급히 화해를 시키거나 눈을 녹이는 게 아니라, 시간이 흘러 자신을 돌이켜볼 수 있을 만큼 마음이 풀린  그가, 혹은 따뜻한 햇살에 마음이 녹은 산길이, 같이 놀자~하고 다시 부를 때까지 발 동동거리며 기다리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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