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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형란 Dec 18. 2020

딸에게

밟고 가

그냥 지나가


마지막까지 고왔다고

그렇게만 기억해주렴



                   이형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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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많이 왔던 늦은 가을날이었습니다.

흐린 오후였는데요,

지기엔 아직 이른 고운 단풍잎들이 땅바닥에 그득 깔려있었지요.


사실 디카시라는 게 어떤 장면을 보고 딱 떠오르는 걸 쓰는 장르이긴 하지만, 언제나 구절이 먼저 떠오르는 건 아니어서, 아까운 장면이 있으면 우선 찍어두고 거기에 걸맞는 싯구를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밟고 지나가기 미안하도록 예쁜 구역이 있어서 무릎을 낮추고 사진을 는데, 가는 길까지 예쁜 단풍이 마지막까지 고우셨던 엄마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그걸로 써야지 하며 몸을 일으키는데

겹겹이 쌓여있던 구름이 갑자기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쫙 갈라지면서 인공적이라고 느낄 만큼 강한 빛이 나를 내려비췄겠지요.

마치, 바로 그 구절을 내게 알려주고 싶었다는 듯이 말입니다.

오래도록 잊지 못할 늦가을 산책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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