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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형란 Jul 18. 2016

4. 공부한다면 그들처럼 (2)

중간에 그만두는 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중국어 뉴스 인강 : www.screenchinese.com

중국 드라마 대사로 배우는 HSK단어와 중국어회화 : 
https://www.youtube.com/channel/UC_1ftGlAb2X9uvvzQxW-dpA




회사에 다니는 수강생들에게는 늘, 선택이 가능하기만 하다면 사내 출강보다는 학원 수업을 들으라고 한다.  학원은 자기 돈이 나가고, 자기 시간이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학생들의 집중도가 출강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정말 좋은 직장에 다녀서 사내 출강과 학원 수강료 지원, 두 가지 제도가 다 있다면 반드시 학원 수강료 지원을 받으라고 권한다.  최소한 시간이라도 내 것을 써야 아까워서 더 열심히 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학원에서는 꽤 환영받는 강사였으나, 출강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출강에서도 학원에서처럼 교재 텍스트를 다 외워오라고 하고, 매 수업시간마다 전시간에 배운 것을 외워보라고 했더니, 처음에는 20명 들어왔던 반도 늘 한 달만 지나면 한두 명 남고, 심지어는 직원들이 회사 측에 출강 강사를 바꿔달라는 요청을 해서 한두 달만에 잘린 경우도 두 번이나 있어서, 내 출강 경력은 대여섯 번에서 멈춘다.  그런 나도 출강에서 환영받은 적이 한 번 있었는데, 대기업 G사의 한 부서와는 1년이나 즐겁게 공부를 했었다.


그 팀은 총 6명이었는데, 대부분 삼사십대의 대리, 과장, 부장이었고, 의외로 55세쯤으로 보이는 상무님이 한 분 계셨다.  나는 인간관계의 범위가 넓지 않고, 상당 부분 드라마를 통해서 인간을 이해했기 때문에, 그 상무님의 첫인상은 참 의외였다.  내가 상상한 대기업 상무는 시진핑 주석처럼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있을지언정, 눈빛은 매섭고, 그 앞에 서면 왠지 속을 읽히는 것 같은 그런 사람이었는데, 그 상무님은 그저 맘 착한 평범한 어른으로만 보였다.  
대리며 과장, 부장은 분명히 앞으로 업무에서 중국어를 쓸 일이 있을 터였지만, 국내 업무 담당부서의 상무님은 앞으로 중국어 쓰실 일이 별로 없어 보였고, 본인도 취미로 배우시는 거라고 이야기를 했다.  나는 속으로 '상무님이면 접대도 많고, 회의도 많을 텐데, 삼사 개월은 나오시려나?'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상무님은 특별한 일이 아니면 거의 안 빠지셨고, 심지어는 혼자 나오시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혼자 나오시는 날이면, 강사가 기운 빠질까 걱정하셨는지, 묻지도 않은 팀원들의 사정을 하나하나 이야기해주셨는데, 늘 이런 식이었다.  "우리 제일 똑똑한 A는 어제 바이어 접대가 있었고, 일을 제일 잘하는 우리 B는 지방 출장 중이고, 제일 성격 좋은 우리 C는 대학원 시험이 이번 주에 있고..."  그 말 속에서 느껴지는 진심은, 왜 이렇게 평범한 인상을 가진 분이 해외 주재원 출신 아닌 직원으로는 처음으로  상무가 되고, 오로지 그 상무님이 계시다는 이유만으로 부서를 옮겨오고 싶어하는 직원이 있는 건지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이제는 그 대기업의 부사장님으로까지 승진하셨다니, 소식을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참 기뻤다.


상무님은 내게 중국어를 배우고, 나는 상무님에게 인품을 배우며 1년을 즐겁게 공부하고, 이제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가기 위해서 중국인 강사로 바뀌는 시점이 되었을 때, 그날도 혼자 나오신 상무님에게 이렇게 말을 걸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전 상무님이 중국어와 관련된 업무도 없고 해서, 제일 먼저 그만 두실 줄 알았는데요"   이에 대한 상무님의 설명은 이랬다.  "부끄러운 말씀이지만, 제가 뭘 중간에 그만두는 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반대로 나는, 39세에 중국어 어휘 사전을 내기 전까지는 뭐하나 끝까지 해본 적이 없다.  난 늘 흥분해서 시작하고, 괴로워하면서 중간에 포기했었다. 시험도 범위 끝까지 공부하고 본 적이 없고, 공책도 끝장까지 써본 적 없고, 헬스클럽 1년 끊고 두 달 넘게 다녀본 적이 없다.  39세에 처음으로 뭔가를 끝까지 해낸 이후로, 차츰 끝을 보는 쾌감을 알아가는 중이지만, 나는 아직도 끝낸 일보다는 시작만 한 일이 훨씬 많다.

난 지금도 가끔 그 상무님의 대답을 외워보곤 한다.  아직 한 번도 내 말로 써먹어보진 못했지만, 나도 언젠가는 누군가의 칭찬에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부끄러운 말씀이지만, 제가 중간에 뭘 그만두는 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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