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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형란 Mar 21. 2022

탈출

영화는 쇼생크 탈출을, 성경은 출애굽기를 제일 좋아한다, 요컨대 탈출에 성공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사기를 당해 갑자기 큰 빚을 지고 쫓기는 엄마의 빚을 탕감해주는 조건으로 내 법적인 아버지 자리를 차지한 그 사람은 인색했고 의처증이 있었다.

나보다 공부를 잘했던 언니는 기숙사가 제공되는 지방대로 내려갔고, 엄마는 내 학교 준비물 마련을 위해 온갖 수를 써서 반찬값을 아껴야 했다.  제일 참을 수 없었던 것은 그가 외출할 때면 엄마를 안에 두고 밖에서 문을 잠그고 나가는 것이었다.  자수성가해서 종로에서 큰 음식점을 운영하며 큰소리치고 살던 엄마는 마리앙또와넷처럼 일 년 만에 머리가 백발이 되었고, 고2였던 나는 학교 다니는 것 말고는  달리 방도가 없어 꾸역꾸역 학교에 갔지만 점점 말을 잃어갔다.


학교에서 일찍 돌아왔던 어느 날, 엄마와 일톤 트럭을 타고 그 집에서 도망치던 순간이 생생하다.  나올 수 있었구나, 이렇게.


그 후로 나는 온갖 탈출 이야기에 열광한다, 내 몸의 모든 세포가 탈출에 환호한다.  쇼생크 탈출을 보고 잠 못 이루던 밤을 기억한다, 흥분돼서 쉽게 잠들 수 없었다.


오늘, <좋아하면 울리는 207화>에서 혜영 엄마가 평생 가정부로 일하던 집에서 나오는 장면이 내 탈출 세포를 살아나게 했다.  세계여행을 떠나며 아들에게 전화 거는 장면을 오래 못 잊을 것 같다. <예전에 했던 말을 고쳐주고 싶어서 전화했어, 엄마처럼 살지 말라고 했던 말 취소야, 엄마처럼 살아, 난 지금 어디로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어>


탈출하고 싶은 모든 이들을 응원한다.

부디 모두 탈출에 성공하길.

그 기다림이 길어도 포기하지 말고 꼭 제대로 준비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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