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굉장히 지루한 성격의 사람이다. 영화나 드라마도 좋아하는 건 반복해서 보는 것을 좋아하고, 음식이며 장소며 다 반복되는 것을 좋아한다.
고 3때는 영화 <고래사냥>을 8번 봤고, 가장 최근에는 대만 드라마 恶作剧之吻을 스무 번쯤 봤다. 하지만 반복횟수로 따지자면 솔제니친의 <이반 제니소비치의 하루>를 따라올 것은 없으리라. 나는 고3때 매일 점심시간에 밥을 먹으면서 <이반 제니소비치의 하루>를 한번씩 읽어서 총 이백여번을 읽었다. 백여 페이지의 중편소설인데다가, 이미 수없이 본 책이라 한 시간에 한번 보기에 딱 알맞았다.
고3시절은 내게 있어서는 가장 가난한 때였다. 종로에서 큰 등심구이집을 하시던 어머니가 사기를 당해 정말 한푼도 없이 떠돌던 시절이었다. 엄마는 결혼사무소 직원으로 일하시고, 나는 그 결혼사무소 한쪽에 커튼을 치고 숙식을 했다. 언제 그런 생활이 끝날지, 끝나기는 할지 알 수 없는 날들이 이어졌다.
솔제니친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졌다는 <이반 제니소비치의 하루>는 수용소 생활을 쓰고 있긴 하지만, 그중 거의 가장 행복했던 하루를 쓰고 있다. 나는 그 보잘것 없는 행복의 편린들에게서 위로를 받았다.
멀건 국통을 휙 저어 어쩌다 떠오른 감자 덩어리가 운좋게 주인공의 식판에 담기는 순간, 나는 행복했다. 하루를 끝내고도 남은 먹을거리가 있어 베개 밑에 숨겨두는 그 순간, 나는 또 행복했다. 오늘은 꽤 행복한 하루였다, 하며 주인공이 자리에 누울 때, 나는 오후를 버틸 힘을 얻었다. 주인공이 그런 수용소 생활을 10년 그리고 3일을 했다는 마지막 구절에서 나는 "아, 끝나는 날이 오는구나"하고 위로 받았다. 작가는 수용소의 현실을 고발하려고 쓴 작품일 수 있겠지만, 나는 그 작품에서 오로지 위로를 얻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 빕스에서 굴라쉬 소스를 발견했을 때, 난 <이반 제니소비치>를 떠올렸다. 괜히 국자를 들고 밑의 건더기까지 건져지게 휙 저어보기도 하고, 어떤 때는 멀건 국물만 담기게 윗부분만 슬쩍 떠오기도 한다. <이반 제니소비치>를 기억하는 나만의 의식인 셈이다.
혹시 언제 끝날지 모르는 터널 같은 세월을 지내는 독자가 있으시다면, 그 위로의 한 페이지를 함께 나누고 싶다.
슈호프는 아주 흡족한 마음으로 잠이 든다. 오늘 하루는 그에게 아주 운이 좋은 날이었다. 영창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사회주의 생활단지>로 작업을 나가지도 않았으며, 점심 때는 죽 한 그릇을 속여 더 먹었다. 그리고 반장이 작업량 조정을 잘해서 오후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벽돌쌓기도 했다. 줄칼 조각도 검사에 걸리지 않고 무사히 가지고 들어왔다. 저녁에는 체자리 대신 순번을 맡아주고 많은 벌이를 했으며, 잎담배도 사지 않았는가. 그리고 찌뿌드드하던 몸도 이젠 씻은 듯이 다 나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