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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형란 Dec 08. 2016

화이트칼라가 좋은 점


얼마 전 수강생에게 우리 학원이 참 좋다고, 일흔까지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더니, 다른 한 강사에게는 불만을 많이 들었다고, 내 의견이 참 의외라고 대답한 적이 있었다.  그 의견에 대한 내 반응은 "결혼 안 한 분이죠?"였다.  아직 세상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잘 몰라서, 여기서 일하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모르는 거 아닐까.


물론 나도 강사직에 여러 가지 불만이 있다.  제일 큰 불만은, 명목상의 자영업자이고 실제로는 비정규직인 우리의 신분이다. 분명히 직장 하나에 속해서 월급 받고 사는 월급쟁이인데, 서류상으로는 자영업자여서 사대보험 적용이 되지 않고, 의사, 변호사 등에게 적용되는 비율의, 우리 생각에는 너무 억울한 액수의 의료보험을 내고, 퇴직금도 없고, 추석, 설날에는 상여금 봉투 하나 없이 누가 볼까 쑥스러워하며 참치캔 박스를 들고 집에 가야 한다.


하지만, 불만 없는 일자리가 있을까. 여기도 돌아보면 너무나 좋은 점이 많다.

블루 칼라이던 시절과 비교해보면, 여러 가지 좋은 점들이 있다 (블루 칼라가 좋았던 점은 나중에 따로 쓰기로 한다).


1. 여가생활을 즐길 수 있다.


건설 노동자로 일하던 시절에는 여가생활을 즐길 수 없었다. 돈이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 돈이 너무 아까워서이다. 똑같이 백만 원을 벌어도, 화이트 칼라는 그 돈으로 영화도 보고 연극도 볼 수 있다. 그만큼 아깝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일 몇 장을 붙여야, 80cm 높이의 받침대에 몇 번 올라서야 몇 천 원을 버는지 너무 계산이 빤한 건설 노동자의 경우에는 그 돈으로 차마 영화를 보고, 연극을 볼 수가 없다. 커피는 더욱이나 언감생심이다.  정말 큰 맘먹어야 마실 수 있다.  나는 시험반 강사가 아니므로 돈을 많이 버는 강사는 아니다. 그래도 요즘은 아침마다 한 잔씩 커다란 잔에 라떼도 사 마시고, 영화도 보고, 나중에 박보검이 뮤지컬 스타가 될 때를 대비해서 적금이라도 들어둘까 생각도 한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화이트칼라의 좋은 점 중 하나이다.



2. 좋은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


블루 칼라 노동자이던 시절, 제일 불편한 것은 화장실이었다.  건설 중인 아파트 건물 안에는 화장실이 없으므로, 정식으로 화장실을 가려면 지상에 있는 간이 화장실에 가야 했다. 하지만, 호이스트는 늘 미장팀이나 새시팀 등이 자재를 나르는 데 쓰고 있었으므로, 출근 때나 점심때가 아니라면 호이스트 한 번 만나려면 십 분 이상 기다려야 할 때가 대부분이었다. 올라올 때도 그만큼 기다려야 하므로, 화장실 한 번 가려면 삼십 분 이상 써야 했는데, 삼십 분이면 화장실 한 면에 타일을 붙일 수 있는 시간이다. 그만큼이면 돈이 만원에 가까웠다. 그래서 큰 볼일이 아니면 누구나 그 자리에서 해결하곤 했는데, 남자들은 모래와 시멘트를 섞을 때 물과 함께 소변을 섞기도 하고, 아무 데서나 처리하기가 쉬웠지만, 여자들은 늘 소변보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아파트에서 일할 때는 불편하기만 한데, 어쩌다 도심 내의 빌딩 건설 현장에 나오게 되면, 점심시간에는 근처 빌딩의 화장실을 이용하게 되는데, 이럴 때면 편할 것 같아도 더 괴롭다. 옷 이곳저곳에 시멘트며 페인트가 묻은, 누가 봐도 노동자인 줄 아는 모양새로 말끔한 차림새의 직장인들이 이용하는 화장실에 들어가려면, 정말 블루 칼라인 게 새삼 싫게 느껴졌다.


그 후로는 내게 있어서 좋은 직장의 기준은, 좋은 화장실과 직접 연관 지어졌다. 지난번 학원의 화장실은 별로였다. 개수가 학생수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어서 늘 줄을 서야 했고, 쾌적하다는 느낌과는 거리가 있었는데, 이 학원에 와서는 제일 먼저 화장실에 반했다.

얼마 전 화장실의 날이라는 날이 있었다. 아직도 세계에는 25억의 인구가 화장실 없이 산다고 한다. 우리 건물의 화장실, 한 번쯤 감사하고 넘어가면 좋겠다.



3. 명함을 내밀 수 있다


건설 노동자로 일하던 6년간, 내겐 명함이 없었다. 엄마에겐 시시한 직장에 다니니까 어디 다니냐고 물어보지 말라고 입도 못 떼게 해서 가슴에 못을 박았다.  나중에 중국 회사에서 통역 직원으로 일하게 되었을 때, 제일 먼저 하고 싶었던 일은 엄마에게 명함을 드리는 것이었다. 습관이 되어서 나는 아직도 명함을 안 들고 다니지만, 그래도 명함이 있기는 하다. 이것도 화이트 칼라의 좋은 점 중 하나이다.


어제 산 책 내용 중에, 감사할 내용을 A서부터 한 가지씩 읊어보자는 내용이 있었다. 우리로 치면 ㄱㄴㄷ 순서로 하나씩 읊어보자는 얘기였는데, 난 감사할 내용이 늘 <ㅎ>으로 시작한다.  하여간, 감사한 일들을 헤아려보는 것은 언제나 좋은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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