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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형란 Dec 29. 2016

중국어 강사로 일한다는 것은...

< 중국어 강사로 일해볼까 하는 이들에게 >


1. 부양할 가족이 있다면 권할 만한 직업은 아니다.

2. 복지는 적고 자유는 많다.

3. 실력과 정성이 있다면 학생은 어디에서든 찾아온다.

4. 감동과 즐거움이 있는 직업이다.


1. 一人吃饱, 全家不饿


강사로 즐겁게 일하는 나를 보고는 가끔 "중국어 강사로 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하고 묻는 수강생들이 있다. 중국어 강사가 되는 게 고시의 관문을 넘어야 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은 절대 아니므로, 어떻게 하면 강사가 되느냐에 대해서보다는 어떤 사람이 강사에 적합한가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게 더 적당할 듯싶다.


그렇게 묻는 수강생이 남학생이라면 일반적으로 만류를 하고, 여학생이라면 적성에 맞으면 해봐도 될 거라고 대답해준다. 중국어 강사의 전반적인 수입이 많은 게 아닌 데다가 매달 고정 수입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므로, 아무래도 부양가족이 있는 경우는 권해주기가 어렵다. 그야말로 一人吃饱,全家不饿 (다른 식구가 없으므로, 나 혼자 배 부르면 온 가족이 배불리 먹은 셈이 된다는 관용어)인 사람이라면 적성에 맞으면 선택해볼 만한 직업이다.  물론 수입이 많은 스타 강사들도 있지만, 평균 수준을 보면 중국어 강사는 다른 일반 직장인이나 영어 강사에 비해 수입이 낮은 편이다. 적게 벌면 아껴 쓰고, 많이 벌면 여행 다닐 사람이라면 중국어 강사를 직업으로 택해볼 만하겠다. 


또한 승진에 대한 욕구가 없는 사람에게 알맞다. 일반 직장에 다니는 사람과 비교해보면 처음 들어갔을 때는 대우가 비슷해도 3년쯤 지나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이 대리가 되었을 때도 강사는 여전히 초봉에 물가인상이 반영된 정도의 급여를 받고, 남들은 5년이 지나 과장이 되고, 10년이 지나 부장이 되어도 강사는 여전히 10년치의 물가가 반영된 초봉을 받고 있기 쉽다. 급여 뿐 아니라 강사는 직장 내에서 직위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므로, 끝까지 관리 대상일 뿐, 관리자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남자들에게는 별로 맞지 않는 직업이다.


2. 当差不自在[1]


현재의 노동시장에서 복지와 자유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할 수 있겠다. 중국어 강사의 복지 수준은 별로 높지 않다. 다시 말하면 상대적으로 자유가 많다. 내가 삶의 중점을 어디에 두느냐를 먼저 생각해봐야 내가 중국어 강사라는 직업에 적합한 사람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어 강사는 일반적으로 사대보험이 적용되지 않고, 퇴직금과 상여금이 없다. 앞으로는 개선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되지만, 아직까지는 그렇다. 


물론 강사들도 퇴직금을 받을 수 있다는 판례가 있었다. 판례가 있다는 말은 소송을 해야 퇴직금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늘 얼굴 마주치던 직원들과 얼굴 붉히며 소송을 낸다는 게 어지간한 강심장 아니면 하기 쉬운 일이 아니어서, 누가 봐도 퇴직금 소송을 해도 될 만큼 오래 일한 강사들 중에서 강사라는 일을 완전히 그만 둘 때나 자기 학원을 차려서 나갈 때, 중국 선생님들의 경우는 한국 생활 청산하고 중국으로 귀국할 때 소송을 걸어서 퇴직금을 받는다. 솔직히 상당히 열악한 노동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복지가 좋은 회사일수록 개인의 자유는 적게 마련이다. 강사는 근무 시간을 조정할 수 있고, 몇 달 쉬었다가 다시 일할 수 있고, 근무지역을 선택할 수 있고, 근무 파트너까지 선택할 수 있으므로, 그런 점들이 자신에게 매력적이라면 충분히 선택해볼 만한 직업이다.


내 경우에는 직장을 구하는 기준이 < 첫째, 중국어를 주로 쓰는 직장이어야 한다, 둘째, 회식이 없어야 한다, 셋째, 승진하지 않는 직업이어야 한다>이므로 내게는 이 강사라는 직업이 상당히 적합하다. 내게는 그런 조건들이 사대보험이나 퇴직금보다 훨씬 절대적이다.

나와는 반대로 굉장히 활발하고 진취적이어서 조직에 얽매이기보다는 자신의 직업 생애를 자신이 창의적이고 주체적으로 꾸려나가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강사는 권할 만한 직업이다.


그러므로 남들의 기준으로 좋은 직업이다, 혹은 나쁜 직업이다를 판단하기보다는 내게 맞는 직업인가 아닌가를 판단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3. 받아갈 게 있으면 학생은 찾아온다


나도 십 년이나 일했던 학원에서, 일요일 등산 단합대회에 참가하지 않는 강사는 수업을 줄이겠다는 조치에 항의 편지를 썼다는 이유로 잘리고는 분이 나서 소송 걸어서 퇴직금 받고 강사를 그만둘까 하고 진지하게 생각해보던 기간이 있었다. 하지만, 즐겁게 일하던 십 년 세월을 소송으로 마무리한다는 건 정말 재미없는 일이어서 소송건은 그냥 그렇게 없던 일로 하기로 했다.


뭐든지 2년만 열심히 배우면 먹고살 수 있다는 게 체험을 통해 얻은 내 지론이므로, 완전히 다른 직업을 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결국 중국어 강사로 계속 일하기로 결정한 것은, 학생은 받아갈 게 있으면 아무리 먼 데서라도 찾아온다고 하셨던 왕필명 선생님의 말씀이 마음에 남아서였다. "그렇다면 내게는 과연 줄 것이 남아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라는 대답이 나왔기 때문이다.


중국어 강사라는 일은 첫째, 중국어와 학생에 대한 애정, 둘째, 실력, 셋째, 정성이 있으면 누구라도 할 수 있다. 이 중에서도 정성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되는데, 강사가 정성을 보이면 학생들은 감동으로 되돌려준다.


4. 감동과 즐거움이 있는 직업이다.


앞의 <공부한다면 이들처럼>에서 언급한 학생들은 내게 감동을 준 수많은 학생들 중의 극히 일부이다. 지면 관계상 제일 기억나는 수강생 몇 분만 언급했을 뿐이다. 


의사들 중에 알코올 중독인 사람이 많다는 기사를 본 적 있다.  찾아오는 사람마다 고민을 이야기하고, 울상을 짓고 하소연을 해서, 참고 들어주다 보면 스트레스가 쌓여서 그렇다는 이론이었다. 설득력 있는 추론이었다. 
물론 중국어 강사는 사회적인 지위로 보면 의사에 댈 바는 아니지만, 중국어 강사로 일한 십 수년간 주위에서 강사 수입으로만 집을 샀다는 동료 강사는 별로 보지 못했어도, 강사라는 직업이 괴로워서 알코올 중독이나 다른 병에 걸렸다는 동료강사는 한 명도 못 봤다. 오히려 수업시간이 힐링이 된다는 이야기는 참 많이 들어봤다. 공부라는 것 자체가 워낙 즐거운 일인 데다가, 수업을 하다 보면 내내 웃게 되는 걸 발견하게 된다. 드라마가 재미있어서 웃고, 학생들이 기발한 문장을 만들어내서 웃고, 멀쩡히 중국어로 잘 이야기하다가 뜬금없이 he 혹은 you라는 단어에 성조를 넣어 말해서 웃고, 중국어와 한국어 표현이 너무 똑같아서 웃고, 너무 달라서 웃는다. 애써서 함께 공부하고, 중간중간 웃다 보면 하루가 지나간다. 직업 때문에 가슴에 앙금이 쌓일 일이 별로 없다. 오히려 개인적인 스트레스들이 수업하면서 다 날아가는 걸 느낄 때가 많다.


순간순간 즐거운 일도 많지만, 크고 작게 감동적인 순간도 많다. 어제까지도 틀려서 내내 지적받던 발음을 오늘 갑자기 제대로 해내서 감동을 주기도 하고, 지난주까지도 듣기가 안되던 학생이 갑자기 귀가 뚫려서 감동을 주기도 하고, 지난달까지만 해도 맨날 지각하면서 "죄송해요"를 입에 달고 다니던 학생이 새 달 들어서는 갑자기 꼬박꼬박 미리 와서 앉아 있으면서 감동을 주기도 한다. 양평이나 수원에서 오면서도 매일 새벽반에 일찌감치 와있어서 감동을 주기도 하고, 예전에 발음반에서 만났던 학생이 부쩍 는 실력으로 뉴스 청취반에 들어와서 감동을 주기도 하고, 함께 마음 졸이며 준비했던 고시생이 고시에 패스해서 찾아와 양꼬치를 사면서 감동을 주기도 한다. 제대하고 다시 찾아와서 감동을 주기도 하고, 십 년 전의 대학생이 예쁜 아기를 낳고 다시 찾아와서 감동을 주기도 한다. 한 장 외워오라는 성어 숙제를 열 장씩 외워와서 감동을 주기도 하고, 내 수업이 일상에 힐링이 된다는 문자로 감동을 주기도 하고, 자신의 일곱 살짜리 아들이 커서 내 수업을 듣도록 꼭 계속 강사로 있어달라는 메일로 감동을 주기도 한다. 


이런 말들이 "어떻게 하면 중국어 강사가 되나요"라고 물어봤던 수강생들의 물음에 대한 답으로는 좀 동떨어진 감이 없지 않지만, 나로서는 최선의 대답이었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1] 공직에 매인 몸은 자유롭지 않다는 관용어였으나, 요즘은 남의 밑에서 돈 받고 일하는 사람은 자유롭지 못하다는 뜻으로 두루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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