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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형란 Feb 19. 2017

시시한 것들의 가치


내가 다니던 중국회사 사장님은 老三届였다.  老三届는 1966~1968년에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세대를 일컫는 말인데, 문화혁명이 한창일 때 학교를 다녀서 정식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한 세대이다. 중국은 문화 대혁명 시기에 10년간 대학을 폐쇄한 때가 있었는데, 10년의 기간이 지나 대학을 개방하던 첫 해에는 시험 없이 나이만 맞으면 아무나 들어오라고 했었다. 그래서 老三届는 불행한 시대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그중에서 대학에 들어갔던 일부의 사람들은 인재가 부족했던 사회에서 너무도 귀한 대접을 받으며 사회 각 영역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며 활약하고 있는데, 우리 사장님이 바로 그 대학 개방 첫 해에 영문과에 들어간 사람 중 하나였다.  사회가 개방되고 발전할수록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많이 필요했는데, 10년 동안 대학이 없었으니 첫 영문과 졸업생인 그의 몸값은 미루어 짐작이 가능하다.  

사회에서 승승장구했던 그에게도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기초지식이 전무하다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삼사 학년 때부터 혁명으로 사회가 시끄러웠고, 중고등학교 때는 주로 집회에만 참석했지 공부라곤 해보지 않은 그는, 장부에 10 + (-3) 이런 수식이 나오면 불같이 화를 냈다. 10+(-3) 이 10-3 이라는 것을 배우지 못해서 그런 수식이 나오면 자기가 계산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 대신에 중고등 학교 때 집회를 따라다니면서 대자보를 열심히 썼던 그는 보고서 하나는 기가 막히게 썼는데, 중국 국영회사의 서울사무소였던 우리 회사는 일 년에 네 번 사장님이 본사로,  IMF 이후 한국에서 사업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 상세한 근거를 대며 장문의 보고서를 써보내면 정기적으로 꽤 거액의 운영자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일 년에 한두 번 본사에서 대표단이 나올 때만 통역과 수행을 해주면 되었고, 그 나머지 기간은 정말 아무 일하지 않고 9시에 출근해서 5시에 퇴근하는 게 정식 일과의 전부였다. 타일 일을 하는 동안 내가 뭐하고 다니는지도 모르셨던 어머니께서, 강남대로의 그렇게 크고 번듯한 사무실에서 심지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월급을 받아오는 것을 너무 좋아하셔서, 나는 오로지 효도하는 의미로 그 회사에서 6년 가까이 일했다.

일 년에 겨우 백 장 정도의 무역 서류를 번역하고, 한두 번 대표단 수행통역을 하는 것 이외에 나의 업무는 주로 사장님이 궁금해하는 것을 설명해드리는 것이었다. 왜 잠깐 나갈 때는 전등을 켜두고 나가는 게 더 경제적인지, 가로수는 왜 옮겨 심을 때 그렇게 가지를 다 쳐버려야 하는지 등을 설명해드리는 게 내 업무였다.  생각해보면 무역회사에 다니면서 그렇게 다양한 영역의 중국어를 말해볼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듯하니, 내게는 참으로 좋은 회사였다.

하루는 사장님이 북경 집에 다녀오시더니 집수리하러 왔던 건축노동자들을 마구 욕하는 것이었다. 화장실의 타일에 금이 쩍쩍 가는데, 한 장도 금이 안 간 게 없고, 이를 닦다가도 쩍~ 소리에 깜짝깜짝 놀란다면서, 화장실 타일 붙일 때 자기가 옆에 서서 그 나쁜 놈들이 싸구려 모래를 잔뜩 섞어서 붙이려는 걸 잔소리해가며 거의 시멘트만으로 붙이게 했는데도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겠다고 화를 냈다. 사연을 듣던 나는 그야말로 빵 터지웃었다. 타일을 붙일 때는 시멘트와 모래를 3:7로 넣어야 한다.  시멘트를 많이 넣으면, 붙일 때는 미끄러지고 다 붙이고 나서는 시멘트가 물기를 너무 많이 흡수해서 타일이 갈라진다.  반대로 모래를 7의 비율보다 많이 넣으면, 붙일 때는 벽을 반 면 이상 붙여나가다가도 우르르 무너지는 경우가 있고, 무너지지 않더라도 나중에 타일이 툭~하고 떨어지기 쉽다. 내 전공이 타일인 줄도 모르고, 내 자세한 설명에 사장님은 어쩌면 그렇게 박식하냐면서 감탄했다.

사장님 보시기에야 싼 모래는 비싼 시멘트에 비해 너무도 시시한 것이었겠지만, 싸고 비싸고를 떠나서 타일을 제대로 붙이려면 모래가 70%는 들어가야 한다. 약 한 알을 먹어도 그 몇 십배의 맹물을 먹어줘야 약이 제대로 소화되고, 우리 몸속의 장기들 중 어떤 것들은 탈이 났을 때, 그건 없어도 된다면서 떼어내지만, 실제로 그 장기를 떼어내고 나서는 우리 몸 이곳저곳이 고장 나는 경우도 많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은 주로 멍 때릴 때 나온다고 하고, 몸도 아무 일 없이 뒹구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시시한 것들이 얼마나 안 시시한지 알게 된다면, 시시한 것들의 가치가 보이기 시작한다면, 세상도 조금 더 넉넉하게 살고, 자신에게도 더 너그럽게 대해줄 수 있고, 남들도 더 많이 이해해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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