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엄마손

by 함완

집안일을 할 때면 엄마는 항상 고무장갑을 꼈다. 맨손이 편해 고무장갑 없이 설거지나 손빨래를 하는 나를 볼 때마다 엄마는 옆에 다가와 분홍색 엄마손 고무장갑을 들이밀고 어서 끼라며 성화였다.


얼마 전, 본가에 내려가 며칠 동안 잡다한 집안일을 하느라 손이 건조해지고 까칠해졌는데, 그런 내 손을 잡고는 엄마는 옛 생각이 났는지 말을 꺼냈다.


“내가 애 낳으면 꼭 손은 보드랍게 만들어주겠다고 다짐했어.”


엄마는 왼손으로는 내 손바닥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손등을 부비며 말했다. 20번, 아니 200번은 들은 이야기일 텐데도 매번 처음 하고, 처음 듣는 이야기마냥 둘 다 시치미를 뗀다.


20살의 엄마는 어느 날 갑자기 이유 모를 복통에 시달렸다. 고통이 꽤 심했었는지 논과 밭만 있던 동네에서 멀리 걸어 나와 읍내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정밀한 검사 없이 복통의 증상만 보았던 의사는 아픈 이유를 잘 모르겠다며 진통제만 처방했다.


엄마는 집에 돌아와 약을 먹었지만 몇 시간 지나지 않아 고통이 다시 엄습했다. 그 고통은 일주일 내내 이어졌다. 이러다가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엄마는 할머니에게 말했다고 한다.


“죽을 때 죽더라도 큰 병원에서 진료받고 죽을래.”


아픈 배를 부여잡고 할머니와 함께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울퉁불퉁 도로에 튕길 때마다, 그녀의 고통도 여기저기로 튀어 올랐다. 터미널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려, 다시 택시를 타고 찾아간 병원은 군산에 있는 큰 병원이었다. 고 씨 성을 가진 병원장은 엄마의 배를 가르고 엄마의 뱃속에서 뭔가를 제거했다. 의사는 수술실에서 나와 할머니에게 좀만 더 늦었으면 세상과 작별했을 거라고 말했다고 한다. 급성 맹장염이었다.


그 위험한 순간에도 엄마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시골에서 버스와 택시를 타고 도착한 큰 도시의 큰 병원. ‘그곳의 간호사들은 왜 이리 예쁠까.’ 하얀 얼굴에 분까지 곱게 바른 간호사의 얼굴이 눈에 걸렸다. 주사를 놔주겠다며 엄마의 손을 잡는 간호사의 손에서 엄마는 생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부드러운 여자의 손을 느꼈다.


국민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밭일과 집안일에, 동생들 키우느라 관리라고는 낫을 갈거나 솥을 닦는 것밖에 몰랐을 사람. 엄마는 까끌까끌한 당신의 손이 항상 부끄러웠다.


“수술하려고 누워 있었어. 간호사들이 오잖아. 간호사들 손을 만져 보는데 피부가 비단결 같은 거야. 엄마는 어려서부터 일을 많이 해서 손이 까칠까칠했거든. 그래서 다짐했어. ‘내가 애 낳으면 내 새끼 손은 예쁘게 키울 거야.’ 엄마 손이 못났지만 그래도 애들 손은 예쁘게 해야지. 누군가 그랬어. 애기 손을 깨끗하게 씻겨주라고. 엄마는 너희 낳자마자 정말 깔끔하게 씻겼어. 비누로 얼마나 자주 씻겼는지 몰라.”


엄마는 그녀의 운명과 세월을 거스르는 삶을 자식에게 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현실로 만들었다. 형과 누나, 나는 큰 경제적 어려움 없이 자랐고 모두 대학까지 무사히 졸업했다.


듬성듬성 검버섯이 오른 그녀의 손을 비벼대는 게 요즘 내가 엄마를 만나면 하는 일이다. 나는 한참 동안 엄마 손을 잡고 쓰다듬었다. 검버섯이 핀 거친 손을 부벼주었다.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달래려는 부질없는 마음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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