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과 오랜 기간 연락을 끊고 지냈던 때가 있었다. 변명하자면 그 당시 내 삶은 감당하기에 너무나 버거웠다. 아니, 삶은 본디 버거운 것이지만 내가 너무 유약했다. 유독 나에게만 생의 큰 짐이 주어졌다고 오해했다.
혼자 생각하고 혼자 서고 혼자 세상을 감내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너무 늦게 배웠다. 모두가 가르쳐줬지만, 모르는 체했다. 그 때문에 나는 혼자 성장하는 방법을 너무나 늦게 익혀야만 했고, 아이에서 벗어나지도 어른이 되지도 못한 채 어정쩡한 삶을 이어 나갔다.
모든 혈연과의 연락이 끊기고 난 뒤, 난 혼자가 되었다. 혼자라는 것의 의미를 모른 채 살다가 혼자가 되니, 혼자여서 너무나 다행이었고 혼자인 것이 고통스러웠다. 혼자 살다가 혼자 죽을 것을 상상했다. 모두에게 죄송했지만, 조용히 알려지지 않은 채 혼자 죽고 싶었다.
혼자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였다. 어렸을 때부터 보통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하며 살았다. 내가 ‘다르다’라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어렴풋이 알고 있었고, ‘다르다’라는 게 무서워 티 내지 않으려 애썼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보통처럼만 살아야 하는 세계에서 나는 나로는 살아갈 수 없으리라는 것을. 내가 나로 살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도 ‘내가 나일 수 없다는 것’은 단순히 슬픔을 넘어 존재 자체가 부정되는 경험이기도 했다.
가족들에게 말할 때는 생각과 마음을 두세 번 체에 쳤다. 정제되어 나온 말들, 혹은 ‘거짓’은 아니지만 ‘사실’만도 아닌 말들이 오갔다. 나는 그들과 평행선을 달리거나, 영영 이렇게 멀어질 것이고, 그리고 혼자 죽을 것이라 믿었다.
가족과 멀어진 뒤로 술에 취하는 날이 더 많아졌다. 회사에 다니다가 그만두고, 다시 또 회사에 다녔다. 자주 나는 취했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집에 왔다. 친구들 앞에서 종종 울기도 했다. 그 눈물은 내가 자초한 이별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나에게는 속죄가 필요했다.
여느 날처럼 거나하게 취한 어느 밤, 집에 돌아왔을 때 취기와 함께 허기가 올라왔다. 김치를 곁들인 라면이 먹고 싶었다. 김치는 냉장고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엄마도 그랬다.
슬리퍼를 끌고 편의점에 가 소주 한 병에 김치 한 뭉텅이를 샀다. 좁은 자취방 안에서 금세 라면이 끓기 시작했고, 김치를 곁들여 소주 몇 잔을 더 들이켰다. 먹고 남은 김치를 락앤락 통에 욱여넣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작은 냉장고 안에 엄마가 웅크리고 앉아 있다.
“엄마, 언제 왔어? 추운데 왜 냉장고에 들어가 있어?”
엄마는 말없이 냉장고에서 나와 김치통부터 열어 맛을 본다.
“왜 김치를 사서 먹어? 엄마한테 말하면 보내줄 텐데. 엄마 김치 아니면 김치에 손도 안 대는 애가. 엄마 안 보고 싶어?”
술에 취해 고향집을 떠올리는 밤이면 신김치로 끓인 김치찌개 생각이 났다. 엄마는 멸치가 몸에 좋다며, 멸치와 김치만 넣고 찌개를 끓였다. 김치찌개 위 모락모락 오르는 김 사이로 엄마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인다. 국물을 한 입 떠먹으면 바로 아는 그 칼칼한 맛.
“엄마만 한 김치가 없지?”
비릿하고 시큰한 냄새에 잠에서 깼다. 가스레인지 위로 끓여놓은 적 없는 김치찌개가 끓고 있었다. 내가 끓인 적 없는 김치찌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