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아팠던 누나는 자신의 소멸이 소리소문없이 찾아올 수도 있다는 비밀을 눈치챈 듯했다. 누나는 자신이 가지게 된 모든 것들에 대해 버리는 것을 극도로 주저했는데 먹고 남은 음료의 플라스틱컵 하나도 버리지 못하는, 대개의 사람이 쓸모 없다고 생각하는 것들까지 모아두는 사람이 되었다.
집을 정리하면서 발견한 20년도 더 된 잡지를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유통기한이 다 지나 먹지도 못할 음식도 끌어안고 사는 누나는 지독하게 자신의 것을 아꼈다.
일흔을 바라보는 노모는 백 원짜리 동전도 벌벌 떨며 쓰는 여자였다. 버릴 줄도 몰랐다. 남들이 버린 것도 쓸 만하면 다 가져왔다. 낡은 옷을 수십 년 동안 기워 입는 것으로 오래된 슬픔을 가려보지만 가려지지 않는다.
가난 위에 덧댄 그녀의 삶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삶 자체를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닌가 죄스럽기만 했다.
딸이 너무 아끼느라 제대로 못 산다며 가여운 눈빛으로 딸을 바라보는 외할머니도 사실 피할 수 없는 독한 피였다. 사천 원짜리 달랑무가 비싸다며 천 원 깎아달라고 채소가게 주인에게 흥정을 걸었지만 원하는 만큼 값을 못 내린 할머니는 빈 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는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길에 주먹으로 머리를 쥐어 박으며 ‘그 천 원이 뭐길래’라며 자책했다.
"엄마도 참 지독하다. 그거 아깝다고 못 사먹어?"
하지만 구순을 바라보는 외할머니는 자신의 딸을 더 안쓰러워 했다.
"야, 지독해도 좀 지독해야지. 너는 무섭더라."
엄마는 할머니에게서 왔다.
누나는 엄마에게서 왔다.
삶은 대를 이어 지독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