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가 일어섰다. 6개월 만이었다. 걷는 방법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아니면 이제야 처음 서본다는 것처럼 누나는 자신의 두 발을 바라보며 한참을 서 있었다. 푹 눌러쓴 모자 아래, 누나의 얼굴에는 행복도 두려움도 보이지 않았다. 처음 의족을 신고는 누나는 자신에게 벌어진 일이 아니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수술 전, 누나는 다리를 자르지 않겠다고 버텼다. 죽을 수도 있다는 말보다 당장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아야만 했다. 두려움은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죽음이 아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버리겠지만, 다리가 없는 삶은 죽을 때까지 상실을 안고 살아야 한다는 것. 상실한 채 산다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 고통도 곧 익숙해진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영원히 내 것이 될 수 없는 어색한 익숙함.
누나의 삶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만 흘렀고 계속 낯설어졌다. 고통은 익숙해질 수 없었다. 다만 이 고통이 초래하는 낯선 삶만이 익숙했다.
몸이 사라진다. 처음에는 신장이 사라졌고, 발가락이 사라졌다. 합병증이 생기며 시력이 사라지고, 머리가 휑할 정도로 머리카락도 사라졌다. 이제는 다리까지 사라졌다. 누나를 이루는 것은 줄어드는데, 새롭게 생겨나고 늘어나는 것은 상실뿐이었다. 빈자리는 채워질 수 없다.
의사는 진짜 다리가 있던 곳에 가짜 다리를 넣고 빼기를 반복했다. 의족에 거부감이 덜해지자 누나에게도 자신감이 붙었는지 안전바를 잡고 첫걸음을 뗐다. 다시 선다는 일이 가능할 거라고 가족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걷지 못하는 자가 다시 걷게 된다. 기적이란 단순하게도 직립보행이었다.
혼자의 힘으로 서고 걷고 살아간다는 당연하게 생각했던 삶의 원칙이 낯설다. 당연하다 여겼던 것들이 정당성을 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