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오래된 일기 (2)

by 함완


2020년 1월 1일(금)

코로나 때문에 올해는 생략된 보신각 타종을 그냥 넘기기는 아쉬웠나 보다. 유튜브로 방송되던 작년 타종소리를 듣고 입술을 맞춘다. 왠지 나에게 또 만나자는 말을 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었다. 거실에서 나에게 몸을 비벼대는 고양이를 뒤로하고 집을 나선다.


2020년 1월 4일(월)

일기장에 글을 쓰려고 하지만 너무나 얇고 좁은 줄 사이에 뭉툭한 마음을 담을 수가 없었다.

'엄마는 내일 치매 검사를 받으러 간다. 응원의 전화를 했어야 했는데. 또 이렇게 한 발 늦었다. 아침 일찍 전화해야지. 엄마의 젊음도 기억도 사라진다. 무엇도 남지 않았을 때, 난 무엇으로 엄마의 사랑이 존재했다고 증명할 수 있을까.'


2020년 1월 5일(화)

엄마가 전화를 받았다. 조심스러운 목소리다. 눈치가 목소리로 전해 온다. 엄마는 오늘도 일하러 갔다. 나는 일에 지쳤다. 요즘 같은 때에 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며 살라고 하셨다. 내 욕심은 언제나 현실보다 과하다.


2020년 4월 22일(수)

바람이 차다 못해 시린 밤이다. 도서관에서 저녁에도 도서를 대출하게 되었다길래 빌린 책부터 반납하려고 책을 들고 나왔지만 매서운 바람에 도서관까지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지하철을 탈까, 자전거를 탈까 하다가 자전거를 탄다.

엄마는 대장내시경을 받았다. 건강에 걱정이 많아진 이유는 하루 종일 등이 시리고, 기운이 없고, 식사도 잘 못하시는 데 있기도 했지만 수십 년 전 들었던 점쟁이의 말이 여전히 체증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일흔을 넘기지 못할 거라는 점쟁이의 말은 엄마의 생각뿐 아니라 숨통마저 조르고 있었다.


2020년 4월 30일(목)

본가에 내려가 집에서 눈을 뜨는 건 누군가의 소리를 알람 삼아서다. 엄마의 요리하는 소리, 병원 갈 준비에 분주한 아버지의 움직임. 삶의 소리로 하루를 시작하면 다정함에 흐뭇해진다. 당신들이 나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존재 자체만으로도 다정함을 느끼게 한다. 나를 깨우는 소리, 존재를 깨우는 소리.

아버지와 누나가 병원으로 간다. 엄마와 나는 단 둘이 남아 김밥을 싼다. 소금을 넣은 물에 시금치를 푸르게 삶고 당근을 채 썰어 붉은빛이 노랗게 변할 때까지 볶는다. 연탄불에 살짝 구운 김 위에 밥을 올려 펴고, 재료들을 하나둘 얹는다. 운동회와 소풍처럼 김밥이 빠질 수 없던 날들 설렘도 따라 얹힌다. 김밥을 돌돌 만다. 옆구리가 터지기도 하고 김밥의 두께도 들쭉날쭉하다. 엄마의 김밥은 왜 그래도 맛있는가. 마지막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먹다 보면 목이 멘다. 건강하세요. 엄마. 오래오래 김밥 만들어 먹어요.

저녁에 아버지와 엄마는 계모임에서 당신들만 소고기를 먹었다는 게 못내 마음에 걸렸는지 집에 오시는 길에 소고기 한 근을 끊어오셨다. 그 고기를 안주 삼아 아버지와 아들이 모두 취했다. 아버지는 자식들을 위해 만든 것들을 하나둘 꺼내어 보여주신다. 가져가지 않을 것들. 남기고 가야 할 것들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는 사람.


2020년 5월 1일(금)

산소에 간다. 아침부터 가게에 손님 여럿이 든다. 아버지는 몇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한다며 엄마를 가게에 두고 둘이서 가기로 한다. 엄마는 아쉬워하셨지만 아무 말하지 않으신다. 산소에 가는 길을 눈에 담아둔다. 언젠가는 혼자 찾아와야 할 길. 서툰 운전실력도 키워야 할 터였다. 내가 모시고 와야 할 곳인지 아직도 아버지가 아니면 엄두도 못 낸다. 일흔이 넘은 아버지는 나와의 팔씨름도 가뿐히 이긴다. 아버지는 강하다.


2020년 5월 25일(월)

외할머니는 종종 전화기를 두고 마실을 나가시는데 그게 자식들의 걱정과 근심이 된다. 홀로 두는 것이 걱정이지만 함께 할 수는 없다.

외할머니가 전화를 받지 않는 날이면 삼촌과 이모가 순서대로 가까이 사는 우리 본가에 전화를 한다. 걱정이 된 엄마는 자전거를 타고 할머니를 찾아 나선다. 할머니는 작은할아버지댁에서 빼꼼하고 나오신다. 할머니의 무사함을 확인한 엄마는 자전거를 타고 돌아와 급하게 화장실에 간다.

딸이 밤길에 자전거 타고 무사히 집에 갔는지 걱정되었던 할머니는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 집에서 잠들어 있던 아버지가 잠결에 전화를 대신 받았고 엄마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고 하자 할머니는 놀라 허겁지겁 집을 나선다. 할머니의 숨이 가쁘다. 아흔이 다된 노모는 일흔이 다 되어가는 딸의 안위를 걱정한다. 혼자 둘 수 없는 사람들.

엄마는 여전히 나를 ‘우리 애기’라고 부른다.


2020년 6월 18일(목)

막차를 탔다. 본가에 내려가는 날이면, 모두가 잠들지 못한다. 각자의 이유로 기다림이 시작된다. 멀리서 오는 자식을 일 분이라도 빨리 보고 싶은 엄마, 동생이 오면 치킨이라도 시켜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누나, 혹여나 잠들면 돌아갈 길이 험난하다는 걸 아는 나.

엄마는 역 앞도 아닌 도착하는 기차 옆에 서계셨다. 엄마의 손을 잡고 걸었다. 집에 도착하자 누나는 이미 닭다리 하나를 해치운 상태였고,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계시지 않는 할아버지댁으로 가버리신 지 오래였다. 모두가 제자리에 있다.


2020년 6월 19일(금)

어젯밤 엄마에게 고백했다. 최초의 자살시도에 대해서. 솔직해지기로 한 순간 빗장이 풀리고 모든 이야기가 술술 나왔다. 엄마에게 모두 고하리라. 당신만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유일한 사람이 될 것이리라.

늦잠을 잤다. 정오쯤에 눈을 떴다. 마음의 집은 따로 있나 보다. 아버지와 점심상에서 막걸리를 또 마셨다. 집에 오면 대개는, 혹은 종일 취해 솔직한 내가 좋다. 물론 술을 마셔야만 솔직해지는 건 좋지 않다.

오후에는 아버지와 논으로 밭으로 일을 하러 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곁에서 걸리적거리는 존재로 있는 정도지만 아버지에겐 그게 필요한 건가 보다. 일을 마치고 아버지는 닭장에 들어가 닭 날갯죽지를 잡고 나오셨다. 능숙하게 닭목에 칼을 넣어 피를 빼고 가마솥에서 펄펄 끓는 물에 닭을 넣어 털을 뽑았다. 내장을 꺼내고 기름을 도려냈다. 그리고 끓는 물에 푹 삶았다. 그리고는 먹기 좋게 살을 발라 주셨다. 사랑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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