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을 마치고 9시가 넘어 병원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들, 오는 길에 소주 한 병 사와.”
속상해서 술 한 잔 마시지 않으면 잠이 안 올 것 같다는 엄마의 말에, 병원 앞 편의점에 들러 과일 맛 소주 한 병을 샀다. 병실에 올라가 사람이 오가지 않는 구석 자리에 앉아 가방에 숨겨둔 소주를 꺼내 종이컵에 따랐다.
엄마는 누나와 있으며 받았던 스트레스를 쏟아냈고, 술은 금방 바닥을 드러냈지만 우리의 슬픔은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누나가 수술에서 호전될수록 성격도 호전적으로 바뀌었다. 누나를 돌봐줄 유일한 사람은 엄마였지만 누나가 괴롭힐 수 있는 유일한 사람도 엄마였다. 오늘도 누나는 본인의 역할에 충실했다.
우리는 상처에 소주를 뿌리듯, 한 컵 가득 들이켰다. 단순하고 정직한 방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