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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진 Nov 26. 2020

격려가 아니라 감상이야

쓸데없이 쪼그라들 때 날 일깨운 한마디


입사 동기 중 천재가 하나 있다. 드라마 연출도 하고 각본도 직접 쓰는, 이미 세상에 검증된 제작자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그녀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잘했다. 물론 어렸을 적이나 학생 때부터 그렇진 않았을 거다. 수많은 노력 끝에 그리 된 것이겠지만, 내가 그녀를 알고 난 이후로 보는 모습마다 감탄을 자아냈기에 나는 그녀를 천재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신입사원 연수 때 팀별로 하나의 프로그램을 완성하는 과제가 주어졌을 때에도 그녀의 팀은 당장 전파를 타고 나가도 될 만한 드라마 한 편을 만들어냈다. 신입사원들의 미숙한 작품들이 가득했던 터라 그녀의 작품은 놀라움을 넘어 충격적이었다.


처음 책을 내고 그 동기에게 책이 전달되고 나니 많이 초조했다. 초보가 고수에게 처음으로 내 것을 보여줄 때의 떨리고 설레는 마음, 부끄럽고 창피한 마음이랄까. <미드나잇 인 파리>라는 영화에서 1920년대로 타임슬립을 한 주인공이 자신의 소설을 헤밍웨이에게 처음 보여줄 때의 마음이 이렇지 않았을까 싶다.


'과연 내 글을 보고 뭐라 할까.', '아예 읽어볼 가치도 없게 느껴진 게 아닐까.', '으레 하는 인사치레의 격려라도 받고 싶다.' 등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러다 어느 날 아침 일찍, 7시도 안된 시간에 카톡이 울렸다. 그리고 그 동기는 내게 이런 말들을 쏟아냈다.


"오빠가 마음이 좋아서 그런지 결이 참 좋네."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글이야."

"에피소드도 포착이 좋아."


아침부터 찾아온 갑작스러운 칭찬세례에 나는 기쁘기도 했지만 몸 둘 바를 몰랐다. 하지만 이내 냉정을 되찾고 객관적으로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시나리오 작가이자 드라마 PD인 그녀가 진심으로 이렇게 생각할 리 없다 생각했다. 그저 입사 동기인 내게 건네는 위로와 격려쯤으로 받아들였고, 나는 또 쓸데없이 쪼그라들었다. 그래서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 후에 마지막에 한마디를 덧붙였다.


"지현아 네가 사는 세상은 나와 차원이 다른 곳일 텐데 이렇게 격려해줘서 고마워."


내 말에 조금 뜸을 들이던 그녀는 이런 답을 보냈다.


"오빠, 격려가 아니고 내 감상이야."


 



내 첫 책인 <포기할까 망설이는 너에게>에도 인정받는 날에 대한 글을 실었다. 칭찬 세례가 쏟아지는 날이 있다면 하루쯤은 마음껏 느끼고 우쭐대도 좋다는 내용이다. 그런 글을 써놓고도, 아무리 마음먹어도 스스로 쭈그러드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하지만 그녀의 대답이 또 한 번 나를 춤추게 해 주었다. 없는 말을 만들어서, 널 기쁘게 해 주려고 굳이 겨우겨우 꺼낸 격려나 위로가 아니라고... 네 글에 대한 나의 감상이 그러하다고... 그러니 또 쭈구리처럼 쪼그라들지 말라고.


상대가 진심으로 들려주는 감상을 굳이 위로나 격려쯤으로 치환하지 말아야겠다. 상대가 전해오는 느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련다. 그래야 나에 대해 확신이 설 수 있다. 숨겨진 뉘앙스나 읽지 못한 행간이 있을 수 있겠으나, 굳이 그걸 캐서 더 알고자 하는 건 여린 내 마음에 상처를 더 줄 수 있을 거 같다. 그냥 감사히 받아들이며 나아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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