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나진 Mar 09. 2021

그거 원래 내 거야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사람은 늘 본인이 1순위가 되고 싶어 한다. 내가 속해있는 가장 작은 단위인 가정에서부터 친구들과의 친목 모임이나 직장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든 인정받고 필요한 존재가 되길 원한다. 모임이나 단체의 성격과 관계없이 언제나 나를 먼저 떠올려주길 바라는 것은 인간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욕구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정반대다. 1순위는 언감생심이다. 2순위, 3순위로 나를 찾는 일도 손에 겨우 꼽을 정도다.


특정 기간 동안 1순위인 사람들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영원히 1순위인 사람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일의 분야나 성격에 따라 가장 먼저 떠올려지는 사람들이 달라지는 것이다. 심지어 국민 MC 유재석 씨도 모든 프로그램에 1순위는 아니다. 물론 그가 대중이 가장 많이 원하고 사랑하는 사람임이라는 것은 틀림없지만.


특정 프로그램의 PD가 갑작스레 보자 한 적이 있었다. 당시 나는 그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곧 공석이 될 것이라는 소식은 알고 있었다. 주변의 동료들이 다음 바통을 이어받을 것이라는 소식을 이미 접한 상황이었다. 심지어 친한 동료 A는 내게 자신에게 섭외 제안이 왔는데 사정상 할 수 없다는 아쉬움을 털어놓기도 했기에 누구보다 속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PD가 보자고 했을 때 왜 나를 보고 싶어 하는지 이유를 짐작하고도 남았다. 그리고 또 알 수 없는 자존감 하락을 받아들여야 했다. '나는 또 두 번째, 세 번째로 거론되는구나...', '언제쯤 나를 가장 먼저 찾아줄까. 언제쯤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런 상황 속에서 PD와의 만남이 유쾌할 리 없었다. 그래도 마음을 추스르고 그를 만났는데,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나진 씨, 우리가 OOO라는 프로그램을 론칭하는데 내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진 씨만 한 사람이 없을 것 같아서... 도와줄 수 있겠어?"

그 배려 깊은 한 마디에 낮아진 자존감과 실망하던 마음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위축된 마음이 있던 그 자리에는 그 사람에 대한 감사와 새 프로그램에 대한 의지가 자리 잡게 되었다. 앞뒤 가리지 않고 그 PD의 제안을 덥석 받아 들었고 새롭게 나갈 수 있는 열정도 생겨났다.


완전히 바뀐 멘털로 사무실로 돌아와 긍정적인 생각을 가득 품고 있는데, 또 다른 동료 B 씨와 이야기를 하게 됐다. 나는 신나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조금 전 제작진을 만났고, 내가 이런 프로그램을 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그러자 그는 또다시 모든 기운을 바꾸어버리는 한 마디를 내뱉었다.

"아아아. 그거! 그거 원래 내가 하려던 거였는데 그쪽으로 갔어? 사실 나한테 가장 먼저 섭외 요청이 왔거든..." 기분이 팍 상하는 건 당연한 이치였다. 그냥 아무 말없이 축하해주고 격려해주면 될 것을. 나는 B와의 대화를 서둘러 마무리했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혹시 B는 아닐까?

그동안의 나도 돌아본다.

혹시 내가 모 PD가 아닌 B의 모습이 아닌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