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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진 Mar 28. 2020

엄마의 김치찌개와 함께

부모언어해석기01


오랜 기간 공들인 원고를

한 인기 출판사에 투고한 뒤

완곡한 거절의 이메일을 받은 날 저녁이었다.


딸아이를 봐주시는 엄마가 끓여준 김치찌개를

먹으며 분노의 맥주 한 캔을 들이켜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엄마,
  
“나진아, 수없이 거절당해 봐야 해.”
  


“나이 들수록 글은 더 잘 쓸 수 있단다.”
  




  
엄마의 말은 언제나 흥분한 나를 차분하게 가라앉혀준다.
살면서 어디서든 자주 들을 수 있는 말이지만
톤 업 되어있지 않은 차분한 말 한마디가

나를 진정시켜준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리고 앞으로 나아가게 해 준다.
  
잠시 잊고 있는 삶의 지혜 또한 상기시켜준다.
잔뜩 치솟은 분노 게이지도

어느새 가라앉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나이 들수록 더 잘할 수 있는 일들을

지금 잘하는 일은 쉽지 않다.
아직 젊기에 빠르게 성과를 내고 싶으니까.
조금은 더 속도를 내서 올라가고 싶기에.
  
시간이 더 흐르고 경험이 더 쌓이면

내 실력이 더 빛을 발할 수 있음을 알고 있지만,
오늘도 지금의 내 결과에 일희일비할 수밖에 없다.
사람인지라,

지금의 감정에 휩싸인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것.
  
엄마의 말 한마디로 정신을 되찾으면

판단력도 다시 돌아온다.


이미 지나가서 돌아올 리 없는 젊음을 그리워하기보다는
나이를 먹어야 더 잘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헤매는 편이 낫겠다.
 
물론 현재의 감정에 마음껏 휩싸여도

괜찮은 것들도 있다.


지금까지 먹어온 날보다

앞으로 먹을 수 있는 날이 훨씬 더 적게 남은
엄마의 김치찌개를 마음껏 먹어치우는 일 같은 것 말이다.
  
엄마의 김치찌개를 먹으며 현재를 마음껏 느끼고,

아픈 과거의 일은 떨쳐버리며
무엇이든 다시 시작해 봐야겠다.


앞으로 더 잘할 수 있는 일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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