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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진 Apr 09. 2020

달고나 커피만 있으면 어디서든 행복해

코로나 19 속 직장인의 흔한, 흔하지 않은 티타임


코로나 19 속 직장인의 흔한, 흔하지 않은 티타임


오래전에 잡아놓은 점심 약속이 있던 날.

출근길 아침부터 단톡방이 요란스러웠다.

멤버는 총 네 명. 여자 둘 남자 둘, 80년생인 나를 포함해 69년생부터 88년생까지, 성비 조화 및 신구 조화가 절묘한 모임으로 마음도 잘 통하는 조합이어서 우리는 이렇게 넷이 밥 먹는 걸 즐겼다. 연일 이어진 구내식당 혼밥도 너무 지겨웠던 터라 모처럼 한껏 기대했던 점심이었다.


하지만 역시나, 이 시국에 어느 식당을 가야 할지부터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그래도 점심을 안 먹고 일할 수는 없다는 핑계로 이 식당 저 식당 알아보기 시작했다.

각자 회사 주변 맛집을 폭풍 검색한 결과가 링크로 올라오기 시작하니 기대감이 한껏 부풀었다.

이게 얼마 만에 나가서 먹는 점심이란 말인가.


하지만 다시 역시나, 그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곧 우리의 단톡방은 "사람 많을 거 같지 않아?'",

"거기 테이블이 워낙 다닥다닥 붙어있어서.......",

"아무래도 안 될 거 같아요." 등의 대화로 채워지게 됐다.


결정만 빨리 내리지 못했을 뿐 어느 정도 예상했던 상황.

우리의 점심 약속은 결국 취소되었다.




지난 주말이었다.

집 콕 일상의 지겨움을 달래보고자 나는 아내와 함께

요즘 SNS 상에서 가장 핫하다는 달고나 커피에 도전했다.

무엇을 하든 난장판을 쳐 놓기에 항상 예외였던 36개월 딸도 이번엔 껴줬다.


사실 우리보다 딸이 가장 걱정이었기에 해본 일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 동안 집, 집 앞 공원 아니면 할머니 집. 이렇게 딱 세 곳만 무한 반복해 다닌 하연이가 짜증이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넘치는 에너지를 소모해야 밤에 잠도 잘 자고, 또 잘 자야 자연스레 기분도 좋아지는데, 어린이집에 가서 친구들을 만나지도 못하고, 좋아하던 키즈 카페에도 갈 수 없으니

스트레스만 쌓여 보채는 일이 잦았다.  


커피와 설탕을 잔뜩 넣고 셋이 교대로 팔이 빠질 때까지 거품기를 돌리자 저절로 활기가 돌았다. 딸아이는 그 어느 때보다 신나게 소리를 질러대며 마구마구 저어댔다. 내용물이 여기저기 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신나게 저어 대니 뭔가 답답했던 응어리가 풀리는 것 같았다.


제대로 된 작품은 하나도 탄생하지 않았지만 그저 한번 만들어 보고 웃으며 스트레스를 날린 것으로 충분했다.

딸아이도 잠시나마 답답함을 벗은 듯 보였다.


코로나 19 속 상황에서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거 같은 행복이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렇게 찾아 헤맸던 그곳이 고작 달고나 커피를 만들어댄 부엌 바닥이었다니.




각자 점심을 어떻게든 해결하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쯤 단톡방에 메시지가 올라왔다.

79년생 선배가 아이디어를 냈다.

사회적 거리두기 속 어렵게 만들어낸 궁여지책,


"밥은 알아서 잘 드셨나요? 오늘 너무 아쉬워서요.......

 달고나 커피 잘하는 데가 있는데 테이크 아웃해서

 회사 앞  벤치에 살짝 떨어져 앉아 마시며

 잠깐이나마 수다 떨까요?"


유레카!

모두의 의견이 아주 쉽게 일치했다.


마스크를 하고 회사 로비에서 만난 우리의 발걸음은

어느덧 회사 앞 달고나 커피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88년생 후배가 먼저 카페에 놓여있는 손 소독제로 손을 열심히 비볐다. 그걸 보고는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차례대로 알코올 향을 느끼며 요란스레 손 소독을 했다.


약속이 취소되고 사라졌던 기대감이 다시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SNS를 강타한 집콕 문화의 가장 핫한 산물, 달고나 커피. 지난 주말 죽어라 노력해봤지만 짝퉁 달고나 커피만을 영접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제대로 된 달고나 커피라니!

달달한 그 맛을 상상하니 떨리는 마음마저 들었다.


잠시 후 우리는 따뜻한 달고나 석 잔, 시원한 달고나 한 잔, 총 4잔을 마주했다.

어린 시절 자주 먹었던 달고나가 옅은 갈색의 각설탕 색깔로, 어릴 적 먹었던 마름모꼴의 하얀 박하사탕 크기보다는 조금 작게 커피 맨 위에 토핑으로 올라가 있었다.


자연스레 화제는 '라떼는 말이야~', 옛날이야기로 번졌다.

역시나 69년생 선배가 먼저 얘길 꺼냈다.


"혹시 너희들도 어렸을 때 달고나 먹어봤니?"


88년생 여자 후배가 대답한다.


"그럼요. 학교 앞에서 할머니가 파셨잖아요. 설탕에 소다 넣어서 동그랗게....... 모양 잘 맞추면 하나 더 주셨는데? 그렇죠? 히히히"


80년생인 나도 한마디 거든다.


"난 자꾸 먹고 오니까 어머니가 소다 먹으면 위에 구멍

뚫린다고 겁주셨는데....... 근데 그 말 진짜예요?"


"나도 몰라. 까르르~~"


별 얘기 아닌데도 그냥 막 웃음이 났다.

고작 회사 바로 앞 카페에서 잠깐 나눈 흔해빠진 옛날이야기가 뭐가 그리 즐거웠을까.




초등학생 아들을 키우고 있는 워킹맘, 79년 생 선배는 코로나 19가 유독 더 원망스럽다. 학교에 가야 할 아들이 학교에 가질 못하고 있으니 하루하루가 부탁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침 6시 라디오 생방을 하고 있다 보니 선배가 아이 맡길 곳을 찾는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친정 엄마, 시어머니도 모자라 도련님 집까지 알아보기 일쑤다.


어찌어찌 맡길 사람을 찾고 나서도 새벽 출근길은 전쟁이다. 깜깜한 새벽에 일어나 그날의 먹을거리를 다 준비해 놓고 오늘의 담당자에게 인수인계 사항을 빽빽하게 쓴 톡을 보내고 나서야 일터로 향한다. 회사에 와서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원고 확인할 시간도 빠듯한데 남편은 잘 출근하는지, 아들은 엄마에게 잘 가는지 걱정투성이다.


하루는 매일 이어지는 출근 전투를 치르고 나서 회사에 도착하니 달달한 게 그렇게 당겼다고 했다. 이른 아침 생방을 끝내고 카페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려 찾은 인내의 산물이 바로 달고나 커피. 그 맛이 그렇게 짜릿할 수 없었다고 했다.


시원하게 식도를 타고 내려가 위에 도착해 포만감을 느끼게 해주는 그 맛, 모든 시름을 잊게 해 줄 만큼 파괴적인 그 달디 단 맛을 잊지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때 느꼈던 그 사소한 행복을 함께 느끼면 좋겠다 싶어 톡을 던졌다 했다.




회사 앞 벤치를 물색하던 내가 소리쳤다.


"우와! 저기 벤치 4개 나란히 있어요. 인당 1 벤치 씩 가능합니다. 저기서 드시죠!"


마침 적당한 햇살이 비춰주니 이만한 명당이 없었다.

좋다 좋다 하며 까르르 웃으며 각자 하나씩 자리를 잡고 앉으니 회사의 브랜드 스토어가 정면으로 보였다.


'클리어런스 세일 50%'


"저 단어 뭔가 결연한 의지가 느껴지지 않아요?

‘클리어런스 세일’, 우린 꼭 팔아야 한다는 의지."


 "그러니까. 이 시기엔 누구도 지갑 열기가 쉽지 않으니 말이야. 물건은 남아돌 거고 회사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팔아야 하고......."


“회사도 1분기 적자가 벌써 어마어마하던데요. 그래도 월급 받는 우리는 그나마 조금 낫지만 자영업 하는 분들도 그렇고 다들 얼마나 힘들까요....... “


“그러니까.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너무 힘든 시기인 것 같아.......”




88년 생, 싱글인 여자 후배는 평소 우리 부서에서 가장 성실하고 착실하기로 소문나 있다. 회사의 메인 앵커이기도 한 그녀는 일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기도 하고, 그 실력 또한 이제 모두가 인정하는 사람이 되었다.


일에만 온 힘을 쏟다 보니 그녀의 하루 일과는 언제나 집, 회사, 집, 회사였다. 어찌 보면 너무 쉴 틈 없는 빡빡한 일상을 사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지만, 반대로 그래서 그녀에게 사회적 거리두기는 그렇게 힘들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역시,

그녀가 서있는 자리에서 힘겨워하는 일이 있었다.

떨어져 있는 가족들을 한동안 보지 못했다는 것.


주중에는 워낙 치열하게 일하기에 주말엔 부모님을 보러 가는 게 가장 큰 행복이었던 그녀인데, 한 달도 넘게 부모님을 뵙지 못하게 된 거다.


“우리 같은 방송국은 이런 상황에도 이곳저곳 가리지 않고 돌아다니며 고생하시는 분들로 가득하잖아요. 그러니 저는 어떻게 보면 잠재적 감염자인 거고요. 그러니 제가 어디든 안 가는 게 부모님이 가장 안전한 거죠. 다른 사람들에게도 폐 안 끼치는 거고요.”


가족과 떨어질수록 가족을 더 안전하게 할 수 있다는 현실이 씁쓸하게 다가왔다. 또한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후배이기에 더욱더 조심할 수밖에 없는 모습도 참 안쓰러웠다.


그래도 씩씩하게 말한다.


“뭐 그래도 괜찮아요. 전 달달한 거만 마시면 기분이 확 좋아져요. 저 매일 바닐라 라테만 마시잖아요. 그때가 하루 중 제일 행복한 순간이라니까요?”




자리를 잡고 앉은 뒤 드디어 그 님을 모시는 순간이 왔다.

설레는 마음으로 달고나 커피 맨 밑에 마치 꿀처럼 찐득찐득하게 응축돼 깔려있는 액화 설탕 덩어리를 쭉 들이켰다.

나는 놀라움에 저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우와 와와와. 이거 장난 아니에요!"

"이거 당이 바로 흡수되는 느낌이에요. 오늘 하루치 당을 다 먹은 거 같아요. 졸음이 확 달아나네......."


88년생 후배도 외쳤다.


"갑자기 힘나요! “


79년생 선배도 어리둥절해하며 말한다.


"어? 나도 나도. 혼자 먹을 땐 그저 통쾌함만 느꼈는데,

이거 진짜 힘도 좀 나는 거 같네? 같이 먹어서 그런가?"


우리는 드디어 경험해본 리얼 달고나 커피 속 극강의 단맛을 함께 나누며 기뻐했다. 마스크도 했고 서로 어느 정도 떨어져 있으니 오랜만에 마음껏 소리 내며 웃을 수도 있었다.


오늘 멤버 중 가장 연장자인 69년생 선배가 유독 신나 했다.


“우와, 진짜 옛날 달고나 그 맛이네. 옛날 생각난다. 허허허.”




69년 생 선배는 아직 싱글이고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선배는 작년에 부친상을 겪었는데 장례식장에서 구슬프게 들려준 말씀이 아직도 선명하다.


사실 건강이 더 좋지 않으신 건 어머니셨는데

건강하시던 아버지께서 갑자기 돌아가셔서 너무나 놀랍고 원통했다는 것이었다.


코로나 19가 젊은 사람들보다 고령자에게 훨씬 더 치명적이라는 건 이제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선배처럼 고령의 어머니와 함께 사는 분들은 더 걱정이 된다.


선배는 우리 부서에서 유일하게 재택근무를 신청했다.

그래서 중요한 업무가 있을 때만 출근하는데, 작년 상가에서 선배의 이야기를 떠올려보니, 선배가 재택근무를 신청한 건 잘은 몰라도 함께 사는 어머니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본인이 걸리기라도 하면 고령의 어머니께는 치명적일 수 있으니까.


그런 선배가 유독 더 신나 보였던 건 나만의 생각일까.

그 장소가 회사일지라도 밖으로 나가 운전대를 잡고 회사에 오는 날은 선배가 답답함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날이 아닐까. 그저 밖으로 어딘가로 향했다는 것 자체로 이미 선배는 행복했던 거 아닐까.


하지만 집 콕 라이프만 해서일까. 연식이 조금 있어서일까. 역시나 유행에는 조금 따라가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79년생 선배의 제안에 유일하게 이렇게 답한 사람이었다.


“달고나 커피? 그게 뭔데?”




짧지만 강렬했던 달고나 타임을 뒤로하고 우리는 회사 로비로 향했다. 요즘 연일 고생이신 청원경찰 분들께 고개 숙이며 입으로 인사하는 대신 목례로 인사를 전하고 이마를 들이밀며 발열 체크를 했다. 회사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한 줄로 서서 검사를 받으니 통과하는데 시간이 제법 걸렸다.


발열 체크 후 옆에 있는 손 소독기에 손을 넣고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항균 필름이 부착된 버튼을 옷소매를 당겨 감싼 손으로 살짝 빠르게 눌렀다 뗐다. 엘리베이터 안에 가깝게 선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그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짧은 침묵의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언제 그리 즐거운 시간이 있었냐는 듯,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부랴부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사무실 내 자리에 앉아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그 짧았던, 참 유쾌했던 만남을 떠올려보니 괜히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 뭔가 이상했다.

계절은 봄이요, 시간은 오후 2시, 한창 졸릴 시간인데 정신이 너무 멀쩡했다.


달고나 커피는 달달함을 넘어 당 과다 섭취의 부작용을

생각나게 할 정도로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해 주었다.


사실 졸음이 달아난 진짜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춘곤증을 날려버릴 수 있었던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조금 떨어져서이기는 했어도

모처럼 동료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흔한 커피 한잔,

그리고 강렬하게 내리쬐던 흔한 봄 햇살.

누군가와 함께, 그게 무엇이든 말 자체를 할 수 있었다는 흔한 일상 때문이었다.


'행복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는 그 흔한 말처럼

아무리 코로나 19 속이라 해도 그 흔함 속에서 찾아내기만 하면 되는 거였는데 그걸 잊고 있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실천하고 있는 사회적 거리두기는 결국

우리와 우리 가족을 위해서라는 그 당연한 사실도 다시

한번 확인하니 힘듦과 답답함이 사르르 녹는 것 같았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 불편함 쯤이야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으니까.


자신의 삶을 잠시 공유한 것만으로 행복할 수 있었던

흔해빠진 직장인의 티타임,

그리고 흔하지 않고 특별했던 달고나 커피.


코로나 19 속 너절한 일상을 잠시나마 바꾸어 준

그 흔함과 흔하지 않음이 우리를 다시금 흔한 일상으로 복귀시켜주지 않을까.


떨어져 있어도 같은 마음을 가지고 하나의 목표로 향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 속에서 코로나 19 극복이라는 이 어려운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생각, 확신이 든다.


달고나 커피만 있으면 어디서든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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