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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진 Apr 04. 2020

아나운서 부부의 흔한 티키타카 2 (체중관리 편)

체중계와의 전쟁

여느 날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저녁,
저녁밥을 먹고 나서 내가 먼저 자리에서 잠시 일어난다.
  
“여보 잠깐만.......”
  
나는 옷 방으로 가서 체중계의 눈금을 확인하고
식탁으로 돌아가 다시 말한다.
  
“오예! 난 디저트 먹을 수 있어! 아직 0.5킬로 여유 있어!”
  
아내도 숟가락을 내려놓고 옷 방으로 향한다.
  
“됐어. 난 여기서 그만. 여보도 먹지 마!”
  



TV 화면에 나오는 사람의 얼굴은 직접 대면하는 것보다

2~3kg 정도 더 나가 보인다.


일상생활에서는 보통 체격인 사람들도

화면을 통해 보게 되면 조금 찐 사람이 되고,
조금 찐 사람은 통통한 사람이 되며

통통한 사람은 뚱뚱한 사람이 돼버린다.


<MBC 아이돌 육상 선수권 대회> 추석 특집 녹화에

캐스터로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아이돌 멤버들의 대부분이

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것 같은 깡마른 체구를 가지고

있는 걸 눈 앞에서 직접 보니 너무 안쓰러웠다.


우리 부부는 아이돌이 아닌 직장인이지만

방송에 얼굴이 나오는 직장인이다 보니,

화면 속 내 모습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서로 적당히 견제해주고 일정한 자극을 주며

사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과자나 라면 따위를 슬쩍 들어 올리기라도 하면,


"설마....... 그거 먹으려고? 에이~ 설마...... 아니지?"


"그거 400칼로리도 넘을 걸? 그거 먹으면 저녁 먹지 마!"




체중계의 눈금에 따라 화면 속 얼굴은 확연히 달라진다.

내 키 179cm, 밥 먹기 전 아침, 속옷만 입었을 때를

기준으로 67kg 대의 얼굴이 가장 잘 나온다.
  
2014 소치 올림픽 출장 때 음식이 워낙 입에 맞지 않아

66킬로 대가 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아무리 화면이라도 사람이 좀 없어 보였다.


68에서 69kg 사이가 되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의 사람으로 나오고,
70이 넘어버리면 그냥 사람 좋은 아저씨로 바뀌게 된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 방송 화면, 66킬로 대, 턱선이 살고 목 주위 살들이 아예 없다. 얼굴은 갸름하다. 대신 사람이 좀 힘 없어 보인다.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아침 기준 68kg 대. 확실히 66 킬로 대보다는 턱, 목 쪽이 둔탁하다. 말라 보이지도, 쪄 보이지도 않게 나온다.


12년 전 신입사원 시절, 몸무게는 아침 기준, 71kg이었다. 턱은 사라졌고 66 대와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 헤어스타일의 차이는 있지만 얼굴은 동그랗다.




이래서 우리 집은 매일 체중계와 전쟁을 벌인다.
아내와 나는 교대로 하루에도 최소 4~5번은 꼭 올라가며

점심과 저녁 식사의 양을 조절한다.
  
24시간 내에 식단 조절에 실패했다면
다음날이 정말 고역이다.
탄수화물을 확 줄여하는데 소위 말하는 ‘당 떨어진다.’는 증상이 나타나며 무기력해진다.
  
이틀 동안 실패했다면 더 지옥 같은 일상이 기다리고 있다.
간헐적 단식에 들어가는데 조금 늦은 점심을 먹은 후

다음날 아침까지 물 빼곤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그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정말 지옥을 맛본다.
기운이 없어서 손에도 힘이 잘 안 들어간다.
어떤 날은 머리가 핑핑 돌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게 마지막 선이다.
3일을 넘겨버리면 이후엔 되돌리기 힘들어진다.
그냥 그렇게 정착이 되게 된다.
  
아직까지는 3일을 넘긴 적은 없는 것 같다.
불굴의 의지로.....
  



종종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 이렇게까지 하며 살아야 하는 거야?”
  
그렇다.
우리 부부도 사람인지라 매일 이렇게 살 수는 없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리만 살면 무슨 낙이 있으리.
  
“여보 나 오늘은 좀 먹을게.”
  
누군가 미끼를 던지는 날이 있다.
그럼 덥석 받아 물어버린다.
  
“그래? 그럼 나도 오늘은 달려 볼까.”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이 진짜였구나.

이럴 때만, 모처럼, 대동단결을 이루게 되면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라면을 끓여
라면의 3요소, 면, 국물, 찬밥을 모두 클리어한다.
  
연이어 디저트로 홈런볼 각 1봉 씩을 순식간에 해치우고는
텁텁한 입을 달래기 위해 아이스크림까지 꺼내 먹는다.
  
불과 30분 남짓한 시간인데 세상이 바뀌어 있다.
배를 가득 채운 탄수화물 덩어리들로

황홀감을 느끼는 것도 잠시,
교대로 체중계의 눈금을 확인하고는

우리는 이 한마디와 함께 다시 대동 단결한다.
  


“저녁 안 먹으면 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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