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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진 Apr 27. 2020

아나운서 부부의 흔한 티키타카 3 (부부싸움 편)

아나운서 남편, 아나운서 아내는 피곤해


하루는 아내에게 이렇게 물었다.
  
“여보 남편이 아나운서라서 가장 피곤한 게 뭐야?”
  
“음....... 그거!”
  
“보통 남편들은 말싸움으로는 아내들한테 절대 안 된다고 하는데 오빠는 지질 않아.”
  
“응? 내가 뭐......”
 
“아나운서 아니랄까 봐. 말은 아주 그냥 청산유수예요."
  
“제일 별로인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논리를 그럴듯하게 만들어 적당히 잘 포장해서 얘기하니 반박할 수가 없어. 아나운서 남편은 정말 피곤해.”
  
 나도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말을 속으로만 말한다.


‘아나운서 아내도 어떨 땐 참 피곤해.’
  



우리 부부는 절대 언성을 높이지 않고 싸운다. 감정에 휩싸이고 목소리를 높이게 되면 오히려 그걸로 역공을 받게되며 패배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걸 서로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딸이 태어난 이후로는 딸아이 앞에서는 절대 싸우지 않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싸움 중에 아이가 깨거나 하면, 톤을 확 바꿔버린다. 토론 혹은 상의하는 정도의 말투와 어조로 싸움을 이어간다.
  
언젠가 하루 또 크게 싸웠는데
무언가를 던지거나 소리 한번 안 지르고 조곤조곤 한 자리에 앉아서 5시간도 넘게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방송사, 언론사의 대표적인 문화 중 하나가 특정 주제를 가지고 치열하게 토론하거나 싸우는 일이 잦다는 건데,
아내나 나나 그 문화를 집안으로 가지고 들어온 거다.
  
기억도 나지 않는 사소한 주제로 시작해서 교대로 토론 프로그램 MC라도 보듯이 가족 이야기, 회사 이야기, 가사 이야기 등 집안의 모든 화두를 다 건드려 가며 이야기를 이어갔는데, 점심시간 조금 넘어 시작된 싸움이 끝나갈 때 즈음이 되니 하늘은 어두워지고, 화장실에도 가고 싶고, 배도 출출해지고 있었다.
  
결국 결론이 난 건 없었지만 다행히 감정은 누그러졌다.
아이 밥을 챙겨주고 허겁지겁 주린 배를 채우고 잘 준비를 하고 싸우다 지쳐 그냥 한방에 나란히 누워 잠에 드니 싸움은 끝이 나 있었다.
  
대부분의 부부싸움이 그렇지만 치명적 실수를 하지 않는 한 지나고 나면 무엇 때문에 그리 치열하게 대립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5시간 넘는 끝장토론도 왜 그리 열 올렸는지 생각해보면 아내도 나도 그때 무엇 때문에 싸웠는지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결혼 한 이후로 지금까지 기억나는 부부싸움 주제는
냄비, 청소, 설거지, 서로의 말투 등 정말 입에 담기에도 부끄러운 사소한 일들이었으니 아마 그중의 하나였을 거라 짐작만 할 뿐이다.
  
그런  주제들로 시작된 싸움이 5시간이라니.
그것도 한자리에서 한 번도 안 쉬고 계속 말하면서.

내 야구 중계 최장시간 기록이 연장 혈투를 벌인 5시간 44분 경기였는데, 그에 필적하는 치열한 싸움이었다.
  
한 사람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다다다 다음 사람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스포츠 중계도 아닌데

긴장감 있는 적절한 톤이 자연스레 만들어진다.
예능 프로그램도 아닌데

서로의 말을 자르고 들어가는 타이밍이 기가 막힌다.
토론 프로그램도 아닌데

반박하는 논리가 혀를 내두를 정도다.
교양 프로그램도 아닌데

맞는 말을 만들어 내는 센스 또한 엄지 척!
  
방송을 이렇게 잘했다면 벌써 국민 MC가 됐을 텐데.......
  
이럴 땐 아내의 직업이 아나운서라는 게 조금 많이 피곤하다. 아내도 남편이 말 좀 한다는 직업인 아나운서이니 얼마나 피곤할까.
  



내가 아내로부터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은
내가 무언가 하지 말라고 하는 말에 대해 “~~ 하지 말라고 하지 마.”라고 말하는 것.
  
아내가 제일 싫어하는 건 내가 분위기 안 가리고 자주 잔소리를 하는 거다.
  
특히 서로 바쁜 일상에 찌들어 있을 때 던지는 나의 잔소리에 아내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거 분류 또 엉망으로 해놨네. 그렇게 좀 하지 말라고.”
  
“오빠. 그건 서로 기준이 다른 건데 왜 그래. 하지 말라고 좀 하지 마.”
  
그럼 난 말한다.
  
“하지 말라고 좀 하지 말라고 하지 마. 자꾸 그렇게 얘기하면 대화가 되겠어?”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프로그램 진행자였던 가수 이현우 형님은 이 얘기를 듣고 이렇게 말했다.
  
“나진 씨네 집은 말이 끊어지질 않겠어요? 췌하하하~”
  
“하지 말라고 하지 말라고 하지 마.......라고 하지 마 하면서 말이죠. 췌하하하~”
  
사실 그런 식은 아니지만
말이 끊어지지 않는 건 사실이다. 췌하하하.

아나운서를 배우자로 둔 사람의 숙명이랄까.

이 놈의 말, 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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