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나진 Mar 31. 2020

아나운서 부부의 흔한 티키타카

표준말 전쟁

아이스크림 좋아하기로 둘째 가면 서러운 나,
냉동고에 가득 찬 아이스크림을 보고

행복한 마음에 아내에게 묻는다.
  
“여보 이거 언제 이렇게 많이 사뒀어?”
  
“응, 그거 내가 장 볼 때마다 사부작사부작 사뒀어.”
  
“응......”
  
“그런데 사부작사부작? 그 말 맞아?

 ‘사브작’이야 ‘사부작’이야?”
  
“엇, 갑자기 헷갈리네? 찾아보자.......”
  

애증의 표준국어대사전




솔직히 조금 피곤하긴 하다.
  
대화하다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단어가 나오면  

그 즉시 서로를 처단한다.
딸이 말을 하기 시작한 이후로는 아이에게

일러바치기 바쁘다.
너의 꼬투리를 내가 드디어 잡아냈다는 작은 희열도

느낀다.
  
조금 버거운 일정이 기다리고 있을 때
잠자리에 들기 전 한숨 섞어가며 이렇게 말하면,
    
“에효~ 이건 또 언제 끝이 [끄시] 나려나.......”
    
“하연아, ‘끄시’가 아니라 ‘끄치’가 맞지?

 아빠 아나운서 맞니? 히히히”
    
“니예~ 니예~ 후배님 니예 니예~~

 알겠고요 잘 알겠고요......”
  
※ 끝이 [끄치] 끝을 [끄틀] 끝에 [끄테] ※
  
 

맥주 한잔하며 치킨을 먹을 때도,
아내가 조금 긴장이 풀어진 상황에 이렇게 말하면,
  
“우와 여긴 닭이 [다기] 엄청 크네!”
  
‘옳다구나! 이놈 잘 걸렸다!’
  
“‘다기’가 뭐야 ‘달기’지!

 하연아 엄마 아나운서 맞나요? 크하하”
  
※ 닭이 [달기] 닭을 [달글] 닭에 [달게] ※

  

돌이켜보니 연애시절

풋풋하게 사랑을 속삭일 때도 그랬다.
눈에 하트 뿅뿅하던 시절 준비한 멘트를 날리고 날리면,
  
“난 혜지를 조금 더 깊숙히 알아가고 싶어.”
  
“.......”
  
부끄러웠는지 그냥 듣고만 있던 아내, 당시 여자 친구.
  
조금 시간이 지난 뒤 말한다.
  
“그런데 오빠, ‘깊숙히’가 아니고 ‘깊숙이’가 맞을 걸?”
  
‘아놔.......’
  
사실 나도 말하고도 아차 싶었다.
우리의 뇌 구조 상 그게 고백이든 뭐든

그 얘기는 꼭 하고 넘어가야 하는 얘기였던 거다.
  
딸이 조금 더 피곤할 거 같긴 하다.
집에서도 말 한마디 한 마디에 표준어, 발음, 외래어 표기 등을 신경 쓰며 살아야 할 테니까.
  
하지만 우리도 사람인지라,
가끔 억눌린 자아를 마음껏 분출할 때가 있다.
  
“와, 국물 쩐다!”
  
“나 참...... 아나운서가 ‘쩐다’가 뭡니까 ‘쩐다’니요......”
  
“아 몰랑~ 이 삼계탕 닭이[다기] 진짜 커!”
  
“에잇, 진짜....... 그래! 그래! 많이 먹어!

 다데기 좀 팍팍 풀어서!”
  
 
한번 고삐가 풀리면 끝이 없다.
그날이 바로 축제의 날. 유휴~~~!


마음껏 쏟아낸다.
집에서 하루쯤은 뭐 어떠리.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 걸 뭐.  
 
 p.s
글을 쓰며 처음으로 표준말 자동완성 기능을 원망했다.
마음 깊숙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