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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진 May 27. 2020

아내의 남자친구 남편의 여자친구

내 아내를 사랑스럽게 쳐다보지 말아 줘


남편의 오피셜


같은 아나운서 일을 하고 있는 우리 부부는 직종의 특성상 이성과 함께 짝을 이뤄 방송 진행을 하는 경우가 많다.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가장 일반적인 프로그램의 형태는 2MC인데, 2MC엔 여자 한 명, 남자 한 명이 투입되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

 그렇게 짝이 정해지면 한 프로그램을 짧게는 6개월부터 길게는 3~4년에 이르기까지 함께하게 되는데 자연스레 친해질 수밖에 없다. 서로 친하지 않으면 말을 섞기도 어렵고, 당연히 방송도 잘 되지 않기 때문에 방송의 퀄리티를 위해서라도 교류를 많이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을 서로 너무나도 잘 알고 있고, 또 이해하고 있는 우리 부부는 서로의 이성 공동 진행자에 대해 특별한 견제라든가 괜한 미움의 시선을 보내지 않는다. 오히려 아내의(혹은 남편의) 파트너를 유심히 관찰해 장점을 모니터링해주고 함께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내주기도 한다.


 나는 프로다. 괜히 아내 옆에 맘에 안 드는 남자가 서있다는 이유로 저 사람이 누군지에 온신경을 쓰다 보면 내 일도 아내의 일도 망가지게 된다.

 일은 일로써 받아들여야 한다. 사소한 감정으로 일에 영향을 주면 안 되기에, 조금 싫을 수 있어도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다.




남편의 속마음


 일반적인 99%의 경우에 그렇다는 얘기다. 사람이 어떻게 완벽히 질투라는 감정을 배제할 수 있겠는가. 나도 사람인지라 약 1%의 경우, 아니 당연히 그보다 많이 흔들릴 때도 있기는 하다. 키스신이나 베드신도 많은 배우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그래도 괜히 신경 쓰이는 순간들이 있기는 한 거다. 아니, 실은 꽤 있는 편이다.


 물론, 그런 불편한 심기를 대놓고 말하지는 않는다. 함께 진행하는 이성 진행자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을 표출했다가는 자칫 방송 진행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렇기에 맘에 안 드는 이성 출연자와 아무리 친해 보여도 최대한 참고, 또 참는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하루쯤은 터지는 날이 찾아온다.


 작년 초였다. 아내가 진행한 프로그램을 보는데 한 남자 출연자가 이상하게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사실 그 이유는 정말 별 것도 아니었다. 뉴 페이스로 등장한 젊은 남성 패널이 아내를 바라보는데, 그 시선이 너무 사랑스러웠던 거다. 딱 그거 하나였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왠지 모르게 거슬려 한번 꽂히게 되면 꽤 오래간다. 사실 다 억측이 불러오는 심기불편함들이다. 방송에서 이상하게 유독 더 친해 보인다거나, 상대의 말에 아내가 평소와는 조금 다른 리액션을 보여준다거나, 뭔가 눈빛이 더 자주 오가는 거 같은 객관적인 어떤 수치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 말이다. 둘의 관계가 이상해 보인다는 합리적 의심의 근거는 하나도 없는데, 이상하게 한번 꽂히면 뒤끝이 남게 되는 거다.

 보고도 못 본 척, 전혀 인식하지 않은 척 행동했지만 사실 그 며칠 동안은 그 녀석이 도대체 누구인지, 누군데 내 아내에게 그런 시선을 보내는지 내내 궁금했다. 왜 내 아내를 그렇게 사랑스럽게 쳐다보는지 괜한 망상까지 이어지게 됐다.


 결국 평온한 평일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나는 던지면 안 되는 터부 같은 그 말, 볼드모트 같은 그 질문을 던지고야 말았다.

“여보 그때 그 친구는 누구야? 꽤 어려 보이던데?”

“응? 누구?”

“아니 왜 같이 방송한 그 남자 출연자 있잖아. 잘생겼던데? 나보다 어리지?”

“아아. 왜? 왜? 왜?”

“아니....... 그냥 여보를 너무 사랑스럽게 쳐다보길래. 쳇”

“하하하하. 신경 쓰였나 보네? 그랬쪄? 우하하하하”


 이런 질문을 던지면 안 되는 이유는 명확하다. 결국 얻을 게 없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대답이야 뻔하고, 만약 뻔한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우리는 헤어져야 하는 거니까.

 결국 질문 던지는 사람만 멋쩍은 사람이 되는 거다. 하지만 사람이란 게 그렇다. 결과를 뻔히 알고 있지만 한번 맘에 안 들어서 삐뚤어져 버리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냥 하고 싶은 말을 해야 하는 거다. 본전도 못 뽑을 걸 알면서, 놀림이나 받고 괜히 질투하는 소심쟁이가 돼버리는데도, 하고 싶어 견딜 수 없는 말은 하고야 말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아내는 아주 가끔만 내보이는 나의 질투를 대환영하는 거 같다. 내가 조금 없어 보이게 돼버려도 은근히 기분 좋아 보이는 아내를 보면 조금 더 자주 속마음을 드러내 볼까 하는 생각도 들긴 한다.




남편의 덧붙임

 

 사실 반대의 경우도 딱 한번 있었다. 아내도 역시 내게 비슷한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나는 대답을 잘못했고, 대판 싸웠다. 역대 손꼽히는 상암 골 대첩으로 이어졌다.

 나는 이런 모습이 우리가 사람이라는 자연스러운 증거라 생각한다. 다 알지만, 머리로는 수백 번도 더 이해하지만, 감정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사람인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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