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에서 끊이지 않는 사전검열
언제 어디서든 어떤 제약도 없이 마음껏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외치곤 했다. 언론사에 근무하며 자신의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행위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도 알게 됐다.
쓸데없는 자기 검열을 가장 경계했다. 그 누구에게도 통제받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표현할 줄 알게 되었다. 내 생각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적용되지 않는 곳이 있었으니 그곳은 다름 아닌, 우리 집이었다.
브런치에 글 하나를 올렸던 어느 날이었다. 글을 발행하자마자 다음 메인에 노출되면서 조회수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4천 정도 되었을 때 카톡이 날아왔다.
"여보, 이번 글은 좀 내려주라. 부담스러워. 아직 이런 걸 이야기할 때가 아닌 거 같아."
"그래? 나는 괜찮을 줄 알고....... 글이 모처럼 재밌게 잘 빠졌는데....... 도저히 안 되겠어?"
"응"
"......."
"알겠어......."
아쉬운 마음이 앞섰다. 글의 완성도도 좋았고, 사진 역시 마음에 들었다. 모처럼 스스로 만족한 글이었다. 자기만족과 외부의 반응이 일치하는 글은 좀처럼 만나기 힘들다. '이런 글은 쉽게 나오지 않는데.......'라는 마음으로 글 내리는 걸 질질 끌었다.
한 시간 정도 지나니 카톡이 왔다.
"안 내려 줄끄가?"
"실험하고 있어유"
실험은 무슨 실험. 그냥 아쉬워서 발행을 취소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뿐이다. 하지만 이제는 진짜로 내려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발행 취소 버튼에 마우스 커서를 갖다 대고 또 시간을 끌었다. 불과 다섯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조회수가 8천을 돌파했다. 하지만 결단을 해야만 했다.
정성껏 완성한 하나의 글은 자식과도 같다 하지 않았던가. 참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하던 순간이었다. 마우스 버튼을 꾸욱. 글을 내렸다.
외부에서 아무리 인정받으면 뭐하나. 가정의 화목이 깨지면 그 어떤 것도 의미가 없다는 걸 이미 지난 상암 대첩, 역대 1위 부부 싸움 때 여실히 느꼈다. 조회수는 조회수일 뿐, 인정과는 결이 많이 다른 수치다. 그런 조회수가 아무리 올라간다고 해도 아내가 싫어하는 걸 하면 안 되는 것이다.
SNS를 할 때마다 각종 논란에 휩싸이는 방송인들을 많이 봐왔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늘 표현에 있어서 예민해지는데 그때마다 서로에게 자문을 하곤 했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올리는 글의 뉘앙스, 행간, 화법, 문체 등을 서로에게 확인받곤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서로 참견과 검열이 들어가는 건 어쩔 수없었다. 성별도 다르고 살아온 환경도 다르고 다른 것 투성이이기 때문에 자신의 표현 방법이 아닌 걸 보게 되면 심사가 뒤틀리거나 바꾸고 싶어 지는 거다.
"이건 조사를 '를'이 아니라 '도'로 해야 좀 더 많은 느낌이 들지 않아?"
"문체에 불편한 심기가 가득하잖아. 뒤틀린 사람의 푸념으로만 보여. 조금 더 부드럽게 써봐."
"이건 완전히 그 사람 저격하는 거 아니야? 이 정도의 행간은 누구나 다 읽을 수 있어."
이렇게 서로 옥신각신 하다 결국 마음만 상하고 이 한마디로 상황은 종결된다.
"됐어. 알았어. 내가 알아서 할게! 참견하지 마!"
언론자유를 부르짖던 2012년의 170일 파업을 했다고 집안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아마도 내 모든 것에 대한 거침없는 조언,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조언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서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자문을 구하는 일의 종착지가 어디인지 뻔히 알면서도 또 묻고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검열은 검열일 뿐일 수도 있겠지만 서로가 불편하지 않은 방향으로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 내에서 서로를 위하는 방향으로의 통제이기 때문에 순순히 받아들이는 방법을 택한다.
오늘도 SNS에 글을 하나 올리고 한 소리를 듣는다.
"과한 거 아니야? 너무 혼자만의 감성 아닌가요?"
그래. 뭐. 이 정도야. 아내가 하는 이야기인데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