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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진 Aug 24. 2020

아내 아닌 여자친구와 함께한 여행

아내가 여자친구가 되는, 남편이 남자친구가 되는 마법의 시간


2년 전 겨울이었다. 지금은 꿈도 꾸지 못할 여행을, 그것도 3주씩이나 다녀왔다. 한 달 동안의 10년 차 휴가, 그 중 3주 간의 여행. 나는 이것에 모든 것을 쏟아부을 준비가 돼있었다.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2주 동안 유럽축구여행을 다녀왔던 5년 차 휴가 때와 지금은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자유롭던 싱글 남성은 어느덧 한 여자의 남편이 되어 있었고, 철부지 아들내미는 한 아이의 아빠로 변모해 있었다.

 그렇다고 인생에서 한 번 올까 말까 한 한 달 간의 휴가를 놓칠 수는 없었다. 수많은 제약 조건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지만 아빠는 용감했다. 과감히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여행지는 일찌감치 유럽으로 정했다. 가보지 못한 동유럽과 스페인을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꼭 하고 싶었던 일 세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딸아이 없이 아내와 둘이서 여행을 해보는 것, 하나는 유럽 챔피언스리그 축구 경기를 현장에서 보는 것, 마지막 하나는 스페인 가우디 투어였다. 그 세 가지 일을 모두 하기 위해선 여러 가지 준비가 필요했다. 나는 싱글이 아니니까. 나는 아빠니까.


 가장 큰 관문일 것 같았던 딸아이 보육은 어머니와 이모가 우리 집에서 숙식하시며 봐주시기로 하며 의외로 쉽게 풀렸다.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송구하고 또 송구했다. 죄송하고 또 죄송했다. 하지만 넙죽 받았다. 남은 인생에서 이제 다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으니까.

 아내와의 일정 조절이 두 번째 난관이었지만 너무나도 훌륭한 안이 나왔다. 모든 일정을 함께하려다 보니 처음엔 스케줄 잡기가 힘들었지만, 각자 회사에서 얻을 수 있는 휴가 중 겹치는 3박 4일만 함께 보내기로 절충이 되니 오히려 휴가가 더 풍성해졌다.

 이 두 가지가 해결되니 다른 어려움들은 어려움도 아니었다. 방송 일정 조절, 대신 투입될 아나운서 섭외하기, 라디오 프로그램 미리 녹음해두기 등 다른 장애물들은 일사천리로 해결됐다.


 기대했던 것보다 더 환상적인 스케줄이 나왔다. 아내는 나보다 3일 먼저 출발해 홀로 오스트리아 여행을 하고 프라하로 넘어온다. 나는 아내 출발 뒤 3일 후 프라하로 가서 아내를 만난다. 그리고 3박 4일을 프라하에서 함께 보내고 아내는 집으로, 나는 오스트리아 빈을 시작으로 스페인, 돌아오는 길에 일본까지, 총 3주의 시간을 유랑한다. 퍼펙트. 로맨틱. 성공적.




 아내가 먼저 떠났다. 사실 아내가 출발한 날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내가 오스트리아로 떠나고 3일간의 독박 육아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전혀 힘들지 않았기에 기억이 없나 보다. 나도 곧 떠날 것이었으니까. 그것만 생각하면 육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다만 한 가지. 채우지 못한 마지막 퍼즐이 있었다. 그건 바로 딸아이가 아프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건 우리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저 운명이었다. 긴 휴가 동안 딸이 아프기라도 하면 우리 집에서 딸을 돌봐주시는 엄마와 이모께서 힘드신 건 물론이고, 이제 만 두 살도 되지 않은 아픈 딸을 집에 놔두고 여행을 하는 부모의 죄책감은 어떻게 할 것인가. 여행이 여행이 아닐 것이다.

 이렇게 무언가를 간절히 바란 적이 있었던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간절히 바랐고 또 바랐다. 휴가는 대한민국 모든 직장인들의 삶의 이유이자 힘의 원천이 아니던가. 기우제를 지내듯 간절한 마음으로 딸에게 제발 한 번만 효도해달라고 외치며 아내 없는 3일을 보냈다. 그리고 나는 홀가분하게 인천공항으로 향할 수 있었다. 세상 모든 것에 감사했다.


긴 여행을 시작하며 쓴 일기


 프라하에 도착해 오후 5시경 아내가 말해준 숙소에 짐을 풀었다. 그리고 7시쯤 도착 예정인 아내를 기다렸다. 오랜 비행 탓에 기름진 몸을 씻고 나서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 아내를 만나기로 한 프라하 중앙역으로 나갔다.


 설레다 못해 긴장되기까지 했다. 6년 전 아내와 단 둘이 처음 만나던 날이 생각났다. 성북동으로 당시 썸녀(현 아내)를 데리러 가던 그 날과 같은 심정이었다.

 썸녀가 알려준 약속 장소의 정확한 위치를 몰라 헤매고 헤매다 겨우겨우 당시 썸녀를 픽업했던 것까지 일치했다. 프라하 중앙역의 수많은 플랫폼에서 우리는 서로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어렵게 어렵게 기차역 와이파이에 기생해 카톡으로 겨우겨우 근접해갔고, 우리 부부는 집이 아닌 프라하 중앙역에서 그렇게 다시 만났다.


만나고 나서 쓴 일기


 아내가 여자친구로 바뀌는 마법의 시간을 마주했다. 6년 전 연애시절로 시간여행을 한 듯했다. '여보' 같은 호칭이 아닌 '혜지'라는 이름도 종종, 저절로 튀어나왔다.


 프라하에서 만난 아내는, 참 예뻤다.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당연히 알고 있지만 매일 까먹고 사는 그것을 다시 확인했다. 매일 집에서 드러누워 뒹굴뒹굴 함께 게으름을 피워대던 그녀가 아니었다.  

 모르긴 몰라도 아내도 똑같지 않을까. 매일 생리현상을 여과 없이 방출해내는 더러운 남편이 아닌, 설레고 가슴 뛰게 하는 남자친구를 마주한 순간이 아니었을까. 더구나 낯선 여행지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남자친구를.


 사실 처음엔 어색했다. 낯선 곳에서 그렇게 마주한 우리 부부는 딸아이 없이 하는 여행이 약 2년 만이었기에

장소의 낯섦보다 단 둘이 있다는 낯섦이 더 컸다.

 하지만 우리의 시간으로 되돌아오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금세 다시 연애시절로 돌아갔고, 우리의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빨리 흘렀다.  


프라하에서 첫 날을 보내고 쓴 일기


 3박 4일간의 짜릿한 프라하를 뒤로하고 우리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여자친구는 딸아이가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떠나 다시 엄마가 되었고, 나는 여자친구가 며칠 전 여행한 오스트리아 빈으로 가 여자친구의 흔적을 거슬러 올라갔다. 혼자만의 여행도 충분히 행복하게 보내고, 다시 아내와 딸아이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 남편, 아빠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부부가 매 순간순간을 연애하는 기분으로 살 수는 없다. 매일 설레 가슴이 뛰어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다면 힘들어서 병이 생기지 않을까?

 하지만 익숙함에 묻혀 잊고 있던 배우자의 모습, 이  사람과 손을 꼭 잡고 있는 이유를 다시 상기시켜주는 이런 며칠은 부부의 삶에 새로운 출발점을 만들어 준다.


 우리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이거였다. 이렇게 부모님의 큰 도움으로 딸아이 보육에 신경 쓰지 않고 단 둘이 긴 시간을 다닐 수 있는 젊은 시절의 여행은 이것이 마지막일 것이라고. 그러니 이 짧지만 긴 3박 4일을 즐기자고 말이다. 그리고 2년이 흐른 지금도 그 생각은 틀리지 않은 것 같다.


 이 세상의 모든 부부에게 꼭 한 번쯤은 해보길 추천한다. 그 어떤 제약 조건이 있더라도, 모든 걸 잠시 내려놓고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기를. 굳이 긴 여행이 아니어도 좋다. 방법은 다양하다. 그저 상대의 장점만 바라보던 그 시절로 돌아가 보는 시간을 한번 가져보자. 당연함이라는 이름에 가려 보이지 않던 한 사람의 찬란한 빛을 다시 발견하게 될 거다. 내가 사랑하는 이유와 살아가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바로, 누구든 사용할 수 있는 이 타임머신의 버튼을 한번 눌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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