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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진 Jun 15. 2020

SNS의 힘으로 아내를 만나다

아내를 처음 본 곳은 다른 곳도 아닌 페이스북


 8년 전이었다. 모든 것이 암울했던 시기였다. 2012년, 언론사 역사상 최장기간 파업이었던 ‘공정방송 사수를 위한 170일 파업’이 있었다. 6개월 가까운 시간 동안 우리는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낙하산 사장과 그의 일당들이 포진해 있던 회사와 치열하게 싸웠다.

 그토록 사랑했던 내 일을 순식간에 잃어버렸다. 내가 누구인지도 잊어버리게 되었다. 사랑하던 동료들이 곁을 떠나게 되었다. 만나고 있던 여자 친구에게 차이고, 6개월 동안 월급 한 푼 받지 못한 건 덤이었다. 사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함께한 모든 이들이 그랬다.

 잠을 못 이루던 날도 비일비재했다. 잠들기도 힘들었거니와, 어쩌다 잠이 와도 일어나 시곗바늘을 보면 새벽 두세 시였다. 한 번은 또 두 시쯤 깬 적이 있었는데, 어차피 뒤척거리다 또 밤을 새울 게 뻔하니 그냥 한번 훌쩍 떠나 보자라는 생각이 들어, 그 새벽 시간 정동진으로 출발해 바닷가에서 슬픈 음악을 들으며 꺼이꺼이 혼자 울어댄 적도 있었다. 사실 그렇게 나만 잠 못 이룬 것이 아니었다. 함께한 모든 이들이 그랬다.      

 결국 파업은 패배로 돌아갔다. 남은 건 상처뿐이었다. 아픈 몸과 마음을 가지고 어쩔 수 없이 업무로 복귀했다. 그리고 참으로 무기력했던 그해 겨울을 맞이했다.




 그날도 다른 날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계적으로 출근해서 하고 싶지도 않은 많은 일들을 어쩔 수없이 해가고 있었다.

 최고의 위안거리는 틈날 때마다 뒤져보던 페이스북이었다. 나는 틈틈이 회사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고, 고통받고 있는 선후배들의 글에 화답했다. 뒤에서 열심히 회사 욕을 하며 키득거렸고 그 시간은 얼마 안 되는 해방구였다. 물론 나중엔 ‘SNS 탄압’이라는 전례 없는 회사의 탄압을 받기도 했지만.      


 그러다 불쑥, 정말 ‘불쑥’이었다. ‘불쑥’이라는 단어가 왜 있는지 그때만큼 와 닿은 적이 없었다.

 한 여인의 페이스북이 불쑥 들어왔다. 처음 든 생각은 '참 예쁘다.'였다. 하지만 곧 이런 생각이 들었다. ‘SNS 상에 못생긴 사람은 없다. SNS는 모든 것이 좋아 보이게만 연출된 허세의 공간일 뿐이다.'

 머릿속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니 그 여인의 프로필을 누르고 타임라인을 내려 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나 왜 이래? 왜 이 사람이 뭐가 특별한 건데? 파업 중에, 네가 가장 힘들 때 널 떠난 그 사람과 다를 바 없어! 여자들은 다 똑같아! 속지 마!'

 머리가 하는 말과 가슴이 하는 말은 계속 따로 놀고 있었다. 소위 ‘신상을 털다’라는 말도 왜 생겼는지 그때 여실히 체감할 수 있었다. 알 수 없는 오묘한 힘에 이끌려 그 여인의 타임라인을 지켜보던 나는 하나의 사진과 글귀에 이르자 더 큰 힘을 느꼈다.

 ‘매일 고생하는 그분들. 제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어요.’라는 글귀, 그리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여러 잔이 담겨 있는 커피 캐리어 사진 한 장.




 2012년 여름, 파업이 한창이었다. 영혼까지 빼앗아가는 듯한 뜨거운 햇살이 내내 내리쬈다. 그 무더운 여름 우리는 광화문, 강남역, 명동, 홍대 등 사람이 많은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거리 선전전을 벌였다. 직접 제작한 전단지를 시민들에게 나누어 주며 우리 싸움의 정당성을 알리려 노력했다.

 어딜 가든 수고한다며 시원한 커피, 각종 비타민 음료 등을 건네주시는 시민들이 꽤 많았다. 그런 응원에 힘을 얻은 우리는 없던 힘까지 짜내어 투쟁을 이어갈 수 있었다. 아마 그분들이 계시지 않았다면 그렇게 긴 싸움을 하지 못했을 거다.


 그 여인은 그 뜨거운 여름 명동 선전전을 하던 당시 우리에게 커피를 건네주던 사람들 중의 한 명이었다. 지나간 시간이 영화 속 회상 씬처럼 재현되며 없던 기억이 만들어졌다. 한 여인이 건네주는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내가 받아 드는, 약간 각색이 된 기억으로 말이다.




 내가 있었던 곳에 그녀도 있었던, 그 SNS를 확인한 나는 그 여인과 내가 운명적으로 강하게 묶여있다는 믿음, 아니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타임라인을 끝까지 본 내가 든 생각은 하나였다. T방송국 아나운서였던 그 여인을 꼭 만나고 싶다고 말이다. '그 회사에 누가 있더라.', '주변에 가까운 사람이 누굴까.' 하던 끝에 생각해냈다. 함께 아나운서 시험을 보러 다녔던 ROTC 1년 후배 녀석을 말이다. 귓가에 '위풍당당 행진곡' 클라이맥스 부분이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망설임 없이 톡을 보냈다.


"W야. 오랜만이다. 잘 지냈지? (중략) 그...... 네 후배 있잖아...... 어떤 사람이야? 같이 밥 한번 먹을 수 있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퍼거슨 감독은 한때 'SNS는 인생의 낭비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정반대였다. 나는 SNS의 힘으로 아내를 만났다.  SNS의 힘은 위대하다.  



아내의 기억

이 글을 보여주자 아내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오빠는 틈만 나면 이 얘기하는데 기억을 바꾼 거 아니야?"

"응? 여보 그게 무슨 얘기야?"

"난 여보가 봤다는 그 커피 사진 SNS에 그거 올린 적 없는 거 같은데......."


내가 대답했다.

"그럼 내가 어떻게 봤어? 여보가 올린 거 분명히 봤는데."

"내가 얘기해줘서 그 사실을 알았고, 그래서 기억을 새롭게 꾸며 넣은 거 아니야?"

"아니야. 그 기억이 얼마나 강렬했는데....... 그럴 리 없어. 물론 글에서 여보가 내게 직접 커피를 건네줬다는 기억을 만들어냈다는 부분은 우리가 연결돼있다는 걸 강조하려고 쓴 거고."

"근데 만약 그렇다면....... 내 기억이 진짜 바뀐 거라면...... 아닌데... 어떡하지....... 아니야. 음......."


아내가 내 말 도중에 끼어들어 말했다.

"뭘 어떡해 이제 와서. 되돌릴 수 없는 걸? 크크크"


아내에게 그때 그 SNS 사진을 최대한 빨리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출근한 지 2시간이 넘었다. 아직 답이 없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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