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나진 Jun 29. 2020

프러포즈 받자마자 조폭 떡볶이로 달려간 여자 친구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하며 살아가기


 그날은 아침부터 가슴 뛰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다. 혹여나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걱정을 하며 집을 나섰던 거 같다. 사실 그 며칠 전부터 머릿속은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여자 친구가 감동할 만한 멋진 프러포즈, 평생 주변에게 자랑삼아 할 수 있는 프러포즈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 말이다.


 예전부터 눈여겨봐둔 홍대의 한 카페를 프러포즈 장소로 일찌감치 정했다. 일단 장사가 잘 안되던 곳. 그래야 몇 시간이라도 카페를 통째로 빌릴 수 있으니까. 너무 크지 않고 주변이 번잡스럽지 않을 것, 아담하고 따뜻한 분위기, 집중이 잘 될 것 등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많았다.

 영상도 완벽히 준비했다. 당시만 해도 영상 툴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아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다. 아는 후배 VJ에게 아르바이트 비를 주고 편집실에서 함께 밤을 새웠다. 연애하며 찍었던 수많은 사진들과 상견례 사진, 여행 사진 등 우리의 추억을 완벽하게 버무렸다.

 그리고 완벽한 프러포즈를 위해 필요한 마지막 한 가지, 바로 거짓말이었다. 여자 친구에게는 친한 형이 사업을 시작했는데, 개업식에서 우리 커플이 축사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부탁을 했다고 되지도 않는 뻥을 쳤다. 우리 둘 다 아나운서니까 한마디 해주면 좋겠다고 완곡하게 부탁해서 거절을 못했다고 말이다. 또 개업식인 만큼 우리도 격식에 맞게 조금 차려입고 만나자고 했다. 당시에 우리는 매일 청바지에 후드티를 입고 다녔기에 프러포즈에는 왠지 어울리지 않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결전의 장소. 세팅 완료.

 

 반차 휴가를 내고 약속 시간보다 3시간 정도 일찍 도착했다. 카페에 도착해 사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준비에 들어갔다. 미대 나온 후배에게 도움받아 만든 커플 사진 입간판을 카페 앞에 놓으니 제법 그럴싸했다. 커플 입장권도 만들고 카페 안 모든 벽면을 우리의 사진으로 채웠다. 몇몇 테이블 위에는 영상을 플레이할 노트북과 미니 앨범, 케이크, 꽃 장식 따위 등을 올려두었다.

 곧 여자 친구가 홍대에 도착했고, 떨리는 마음으로 여자 친구를 결전의 장소로 인도했다. 짜릿한 상상이 들었다. 내가 꿈꾼 장면은 이런 거였다.

 영상을 다 보고 나서 내가 무릎을 꿇고 청혼을 한다. 여자 친구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예스라 답한다. 우리는 짜릿한 키스를 나눈다. 그리고 감정의 극한으로 들어간다. 행복의 절정으로.


영상의 마지막 장면. 그리고.......


 준비한 영상을 함께 보고 무릎 꿇고 청혼한 것까지는 내 상상과 일치했다.

"나랑 결혼해줄래?"

 내 눈엔 이미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기대하는 눈빛으로 여자 친구를 바라보니 아무런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심지어 미동조차 없었다.  나는 그게 극한의 기쁨으로 어쩔 줄을 모르는 거라 착각했다. 하지만 그 착각은 금세 이 한마디로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오빠......."

"고생했어......."


 상상과는 너무 다른 한 마디에 허무함이 밀려왔다. '사랑해', '고마워'도 아니고 혹은 폭풍감동과 눈물에 말을 잇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고생했어'라니...... 눈물은커녕 여자 친구는 나를 그저 프러포즈하느라 수고한 남자 친구로 대하고 있었다. 여자 친구의 뜨뜻미지근한 리액션에 섭섭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내가 꾸민 카페를 찬찬히 둘러본 여자 친구는 다시 잊지 못할 한마디를 던졌다.

"오빠, 나 배고파. 우리 저 앞에 조폭 떡볶이 가자.

"으잉? 나 요 옆에 분위기 좋은 음식점 알아둔데 있는데, 거기 가지 왜?"

"아니야. 나 그 떡볶이 너무 오래 못 먹었어. 홍대 오니 생각나네. 조폭 떡볶이 가자."

"그래도...... 에고. 알겠어. 큭큭 조폭 떡볶이 가자, 가!"

 우리는 잔뜩 힘줘서 차려입은 의상 그대로 조폭 떡볶이로 향했고 어묵과 떡볶이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프러포즈고 뭐고....... 배고픔에 달려간 그곳




 그때는 도무지 이해를 못했다. 나만 혼자 감정 이입해서 홀로 대사를 치러낸 거 같아 서럽기까지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아내는 내게 프러포즈는 꼭 해야 한다는 말 한마디조차 한 적이 없었다. 친구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누군가 "프러포즈는 받았어?"라고 짓궂게 물어봐도, 그런 게 뭐 대수냐는 식의 반응을 줄곧 해왔다. 그리고 나는 그게 괜히 나 무안할까 봐 취하는 태도인 줄로만 알았다. 속마음은 그렇지 않을 거라고, 멋진 프러포즈를 꼭 받고 싶을 거라고 내 방식대로 생각해서 머릿속에 주입했고, 결국 내 방식대로 실천에 옮겼다.


 아내와 6년 넘게 살아 보니 알 수 있었다. 아내가 왜 그렇게 덤덤하게 프러포즈를 받았는지 말이다.

 아내는 그냥 성격대로 프러포즈를 받은 거였다. 평소 덤덤하고 감정의 기복이 심하지 않은 아내다. 유난스러운 것을 싫어하고 흔히 하는 커플 사이의 이벤트에 민망해 어쩔 줄 몰라하는 아내다. 나와는 정반대의 성격이었던 아내이기에 굳이 감동의 눈물을 만들어 낼 필요도 없었던 거다. 그리고 아내 기준으로는 '그깟 프러포즈'를 준비하기 위해 내가 했을 고생이 먼저 떠올랐던 거였다.




 지난 주말 아내와 프러포즈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다 한마디를 던졌다.

"결국 남은 건 조폭 떡볶이밖에 없는 거 같아. 큭큭큭"

"아니야. 그때 오빠 진짜 고생했어."


 또다시 "고생했어."였다.......

나는 조폭 떡볶이, 아내는 내가 고생한 것으로 귀결된 우리의 프러포즈.

 각자 다른 기억으로 남은 프러포즈였지만 평생 떠올릴 추억 하나 만든 셈 치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아마 그때로 다시 돌아가도 나는 내 식대로 똑같이 프러포즈를 준비했을 거고 아내는 아내의 방식대로 똑같이 덤덤하게 받아들였을 것 같다.


 지금도 우리는 그렇게 살아간다. 무슨 기념일이라도 가까워지면 나는 열심히 고민하고 부지런히 움직여 그날을 준비한다. 역시 아내는 괜히 고생하지 말라한다. 대수롭지 않게 덤덤히 '그냥' 맞이한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거다. 딱히 바꿀 필요성도, 바뀔 의지도 없다. 각자에게 가장 알맞은 방식으로 사랑하면서 사는 게 행복한 거니까. 서로에게 가장 마음 편한 방법도 다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하며 살아가기


이전 09화 SNS의 힘으로 아내를 만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