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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진 Aug 08. 2020

아픈데 설레, 쓰린데 기대돼. (생애 첫 출간 투고기)

아파도 설레고 쓰려도 기대되는 실패 이야기


 출간에 대한 또 다른 원대한 꿈이 있긴 하지만 가장 먼저 에세이를 내고 싶었다. 학창 시절 고2 때 담임 선생님이 일기 숙제를 내주고 매일 검사했는데, 모두들 싫어하던 그 숙제를 나는 좋아했다. 무엇이든 끼적이는 건 내 일상이었고 그냥 내 삶의 방식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방 어디에서든 무언가 빼곡히 적힌 메모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고, 책상 위에 수북이 쌓인 각종 자료들은 내 삶의 일부였다. 그리고 나 역시 누구나 한 번쯤 해보는 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언젠가 한 번쯤은 내 책을 내보고 싶다.'


 투고를 하며 가장 크게 느꼈던 건 서점의 진열대 위엔 저렇게나 책들이 많은데 왜 내 원고를 마음에 들어하는 출판사는 왜 없는 걸까 하는 생각이었다. 여행을 마치는 순간, 타고 있던 비행기가 김포공항에 내리기 전 수많은 아파트를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서울에 아파트가 저렇게나 많은데 내 아파트 한 채 갖기는 왜 이리 힘든 거냐라고 생각했던 때와 비슷한 감정이었다. 전혀 다른 상황인데 결이 비슷했다. 사실 내 못난 글솜씨를 탓해야 정상인데, 나도 사람인지라 괜히 출판사에 대한 원망부터 샘솟았다.


 언제나 탈락은 쓰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대로 몇 곳의 쟁쟁한 출판사들은 역시 내 원고를 받아주지 않았다. 출간 계획서를 꼼꼼히 작성해 샘플원고와 함께 여러 곳에 보내봤지만 내가 기다리던 그 연락은 쉬이 오지 않았다. 물론 글의 완성도라든가 화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걸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지만, 그래도 참 야속하기 그지없었다.

 사실 다 알고 있었다. 무수한 실패와 거절, 탈락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해리포터>를 쓴 조앤 롤링도 출판사로부터 12번의 거절을 받지 않았던가. 그런 작가도 십 수 번의 거절을 받았는데 나 같은 무명이 한 번에 될 리가 없지 않은가.


 탈락의 아픔을 잊는 최고의 방법은 다음 출판사, 또 다른 출판사에 투고를 하는 것이었다. 탈락을 거듭할수록 나의 투고 방식도 진화했다. 출판사에 대한 분석을 시작했다. 나와 색깔이 맞을 것 같은 출판사를 선별해 우선적으로 내 글을 보내기 시작했다. 해당 출판사에서 발간한 책들의 제목을 모아봤고 내용도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계획서에 넣을 샘플원고는 특히 더 공을 들였다. 내용도 조금씩 수정하고 디테일을 조금 더 잡아가면서 조금씩 발전시켰다.

 마치 13년 전 아나운서 준비생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때와 다른 게 하나 있었다. 떨어지는 과정들이 아프기고 쓰리기는 했지만 괴롭진 않았다. 오히려 더 좋은 자극이 됐다. 탈락은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고 있었다. 같은 일을 13년째 하며 내가 자연스레 잃어버렸던 감정들을 되찾게 되었다. 물론 지금 내 일을 사랑하지만 워낙 익숙해져 그저 관성적으로 이어가는 면도 있다보니, 투고 후에 받아들이는 탈락은 참 설레고 기대되는 실패였다.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더 치열하게 준비하게 됐으니까.


아프지만 설레고, 쓰리지만 기대되는 실패


 투고하고 기다리고, 답이 오면 실망하고 다시 투고하고, 다시 좌절하고 다시 투고하고, 하염없이 기다리고를 반복했다. 답이라도 빨리 주면 좋으련만 아예 답이 없는 곳도 있었다. 그런 곳은 약 2주 정도가 지나면 탈락으로 자연스레 받아들였다. 답답함에 전화를 걸어본 곳도 있었는데 아주 친절히 답해주었다. "하루에도 원고가 수십 통씩 도착해서요. 시간이 조금 걸려요. 죄송합니다. 2주 내로 연락드릴게요." 그곳에서도 물론 거절당했지만 그 친절함이 그냥 위로가 되었다.


 투고를 시작하고 한 달 즈음 됐을까.  2월의 마지막 날로 기억한다. 그날 밤에 스포츠카를 사는 꿈을 꿨다. 일어나서 아내와 그 꿈 이야기를 한참 했다. 노란색 람보르기니로 보이는 슈퍼카를 꿈에서라도 샀으니 소원 성취했다고 말이다.

 꿈 덕분에 기분 좋게 출근해선 이런저런 일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라디오 프로그램 녹음을 한참 하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왔다. 불과 하루 전 투고했던 출판사 편집장으로부터 날아온 낭보였다.

"보내주신 원고 보고 기쁜 마음으로 연락드립니다. 출간 관련하여 논의하고 싶습니다."


설레는 실패 뒤 찾아온 새로운 설렘


 얼마 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을까. 최소 10년은 더 된 거 같다. 아나운서 시험에 극적으로 합격했던 2007년 겨울, 그 이후로 처음이었던 거 같다.

 그 누구도 시키지 않은 일을 오직 내 열정만으로 시작해 죽어라 노력해 결과까지 만들어 내는 그 순간 찾아오는 희열, 아마 겪어본 사람은 모두 알 것이다. 사실 그것 때문에 살아가는 거니까.




 인생에서 몇 번 되지 않을 그 기쁨과 환희의 순간을 뒤로하고 이제 막 1차 원고 작업을 마쳤다. 당초 여름이면 나올 것 같았던 책이 11월로 밀렸다. 내 미천한 글의 잠재력을 알아봐 주고 선택해 준 편집장의 의견을 적극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콘셉트를 대폭 수정해 예순 개의 글을 완성했다.


 이제 다시 기다린다. 편집장이 작업을 마치고 내 소중한 원고가 내게 다시 돌아오는 그 날을 말이다.

 브런치 작가 친구이자 13년 전 독서실 총무와 학생으로 마주친 적이 있는 날아라 돼지 작가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고치고 고치다 보면 토 나오는 지점에 책을 내면 된다던데요..."


 내 원고가 다시 돌아오면 토 나오도록 작업을 이어가야 할 거다. 토 나오도록 힘들겠지만 벌써부터 다시 설렌다.

 연애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기다리던 그 마음처럼, 아내를 수술실로 혼자 떠나보내고 곧 태어날 딸과 건강히 다시 볼 아내를 기다리며 기도하던 그 순간처럼, 동네 바보 형이 갑자기 아나운서가 되겠다고 카메라 테스트를 보고 와서 결과를 기다리던 그때처럼, 투고를 위한 메일 전송 버튼을 클릭하고 안절부절못하며 기다렸던 그 시간들처럼.

 나는 지금 다시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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