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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진 Jun 22. 2020

아나운서 부모님들의 편향된 시선

네에? 제가 유재석 형보다 낫다고요?


딸아이를 돌봐주시는 엄마와 육아 교대를 하던 중 엄마가 한마디를 던지신다.

 “요즘 MBC에서는 그 프로그램이 제일 재밌더라. 유재석 씨가 진행하는 그 뭐더라. <지금 뭐하니?>였던가?”

 “아아. <놀면 뭐하니?> 말씀하시는 거죠? 지금은 그게 제일 잘 나가요.”

 “그거 네가 진행하면 딱 좋을 텐데, 유재석 씨도 좋지만 네가 더 잘할 텐데.......”

 누가 들을까 무서운 얘기다. 누가 듣기라도 하면 그 어이없음에 코웃음 치며 박장대소할 말씀을 서슴지 않고 꺼내신다. 국민 MC를 두고 김나진이라니....... 세상에서 우리 부모님만이 유일하게 하실 말씀이다. 이렇게 텍스트로 써놓고 봐도 참 민망하기 그지없다.

 아내의 코로나 19 뉴스 특보 방송을 보고 아빠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한다.

 “우리 며느리가 제일 잘하는데 왜 다 안 시키지? 다른 것들 전부 다 하면 시청자들도 좋아할 텐데.”

 조직에는 다 정해진 방식이 있는 법이다. 그것들을 한 번에 무너뜨리는 발상을 꺼내놓으시면서 당신의 말씀이 옳다며 허허허 웃으셨다 한다.

 장인어른, 장모님도 다르지 않다.

 “스포츠 중계는 우리 김 서방이 제일 잘하는데 다른 것도 다 해야지 왜 안 해?”

 “우리 딸이 들어가면 프로그램이 확 살아날 텐데....... 회사 참 이상해?”  




 아내나 내가 새로운 프로그램에 투입되면, 그전까지 전혀 관심 없던 프로그램이 부모님의 최고 애정 프로그램으로 둔갑한다. 엄마는 가장 친한 가족인 이모에게 어김없이 전화를 한다.

“복권 추첨 봐야지. 연금복권 500만 원씩 20년 주던 게 700만 원씩 20년으로 대폭 늘었어. 그거 꼭 봐. 나진이가 추첨하잖아. 매주 목요일 12시 15분이야!”

 그렇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을까 싶어도 민망한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어디 다른 데 가서 말씀만 안 하시면 용기도 얻을 수 있고, 부모님의 응원에 듬뿍 힘을 얻게 된다.


 어디 응원과 격려뿐이겠는가. 이런 부모님이 계시기에 디테일도 잡을 수 있다. 그 어떤 시청자보다 예리하게 변화를 감지하시기 때문이다. 일반 시청자들은 화면 전체의 구성을 보지만 부모님들은 딸과 아들의 인물 위주로 보기 때문에 미세한 차이를 읽어내시는 거다.

 “표정이 너무 어두워. 조금 밝게 웃으면서 해봐.”

 “살이 너무 빠지니까 사람이 조금 없어 보이더라. 살을 좀 찌워봐.”

 오디오의 변화에도 민감하다.

 “목소리를 너무 까는 거 같던데. 일부러 그런 거야?”

 “아빠가 지난 중계 보니 목소리가 바뀌었대. 예전에는 맑았는데 이상하다고 하시더라. 목소리가 탁해졌다고.......”

 멘트 하나하나에도 모니터링이 들어온다.

 “이렇게 말해야 맞는 거 아니야?”

 “숫자를 왜 그렇게 읽니?”


 모두 다 맞는 이야기들만 모아서 필터링 없이 해줄 수 있는 지구 상의 유일한 분들이 아닐까 싶다. 너무 편향돼있어서 적당히 걸러서 들어야 하는 순간이 더 많기는 하지만, 그 누구보다 가슴에 와 닿는 말씀을 전해주시기에 언제나 경청하려 애쓴다.


 자식을 바라보는 편향된 시선은 모든 부모들이 다 똑같지 않을까. 나도 자식을 낳아보니 왜 그런지 알겠다. 알 수밖에 없다. 그냥 무조건 내 자식이 최고이기 때문이다.

 '내 딸은 다른 애와 달라.'라는 생각만 가지고 사는 건 꽤나 위험한 일이지만 그걸 떨쳐내기란 또 쉽지 않다.

 그래도 내가 듣기에도 민망한 순간을 잘 떠올려보며, 딸아이에 대한 적당한 객관화를 잘 유지해보려 노력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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