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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진 Jul 06. 2020

고약한 청국장 냄새에서 느껴지는 따스한 그것

장모님의 청국장, 그리고 아내


서울로 올라가기 전 들른 장모님 가게에서 오늘도 어김없이 실랑이가 오간다.

“저기 반찬 조금 싸놨어. 가져가.”

“봤어. 너무 많아. 우린 다 못 먹어. 조금만 가져갈게.”

“뭐가 많아. 끼니때마다 조금씩 덜어서 먹으면 되지.”
 “아니야. 아니라고. 저렇게 많이 가져가면 다 버린단 말이야. 너무 아까워.”

“그럼 냉동시켜놓고 필요할 때 먹으면 되지. 다 가져가.”

“지난번에 가져간 것도 아직 냉동실에 있어. 됐어. 조금만 덜어갈게.”


 장모님을 힘겹게 뿌리치며 아내는 국자를 들고 검은 비닐봉지 앞에 선다. 경상도 출신 어머님의 손은 역시 크다. 조금이 조금이 아니다. 1년도 먹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엄청난 양의 반찬들을 마주한다.  더덕 무침, 오이 피클, 꽈리고추 등이 한가득 담긴 통을 연다. 원래 담겨 있던 양의 10분의 1 정도 될까. 크린랩 비닐봉지에 2~3인분 정도의 분량만 담아 나에게 건넨다.

“여보 이거 차에 실어줘.”

 장모님과 아내 사이에서 눈치를 보던 나는 아내에게 왜 그러냐고 주시는 대로 다 가져가자고 한마디 한다. 그러다 아내로부터 무언의 눈짓을 받는다. 아내가 비닐봉지를 든 손을 나를 향해 더 높이 치켜들면 그게 결정적 시그널이다. 나는 그제야 마지못해 하며 차에 싣는다. 장모님 무안하실까 봐 아내에게 조금 큰소리로 한마디 덧붙이면서.

“반찬 진짜 맛있는데 왜 그러는 거야....... 오래 두고 먹으면 되지. 으이구.”




 맞벌이를 하는 우리 부부이기에 집에서 먹는 밥은 평일 저녁 정도다. 대개 아침은 먹지 않고 점심은 회사에서 해결한다. 딸내미도 마찬가지다. 종종 어린이집에서 저녁까지 먹고 오기도 한다. 주말에는 보통 외식을 하니 우리는 흔히 말하는 집밥과는 꽤 거리가 있는 집이다.

 결혼 초에 충주에 내려가면 장모님께서 주시는 대로 반찬을 모두 받아왔다. 하지만 집에서 먹을 일이 많지 않으니 그게 거의 대부분 음식물쓰레기 통으로 들어갔다. 어쩔 땐 4리터쯤 되는 큰 김치통 하나에 가득 든 음식을 모조리 버린 적도 있었다. 그럴 땐 누가 볼까 무섭기도 했고 마음도 참 착잡했다. 이래저래 참 못할 짓이었다.

 수제 피클로 꽉 찬 큰 통 하나를 6개월 가까이 방치한 적도 있었다. 아내에게 "여보, 이거 버릴까?"라고 물어보면 그때마다 아내는 버리지 말라고 했다. 피클은 오래 먹을 수 있으니 조금 더 놔두자는 거였다. 피클은 길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긴 하지만 6개월은 과했다. 당연히 진작 버렸어야 하지만 버리고 싶지 않은 아내의 마음이 느껴졌기에 나도 버리는 것만을 고집할 순 없었다.

 그건 그냥 음식이 아니니까. 어디서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자주 느끼고 싶어도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유통 기한 따위는 없는 소중한 엄마의 마음이니까.




 그래서 우리는 매번 집에 내려갈 때마다 전쟁을 벌인다.  물론 주시는 대로 다 받아가는 것이 장모님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할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다 버리더라도 일단 받아가고 그저 잘 먹었다는 말씀만 드리는 것이 서로 속 편한 방법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그 일, 소중한 음식이 버려지는 일은 자주 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하면 할수록 아무 거리낌 없이 할 수 있게 되는 일이 있는 반면, 거듭될수록 두 배, 세 배로 괴로워지는 일이 있다. 어머님의 음식을 버리는 일은 당연히 후자다. 버릴 때마다 마음이 아프고 아리다.

 

 그런 아내가 유일하게 어머니가 주시는 반찬을 그대로 들고 오는 게 있다. 그건 바로 아내가 최고 애정하는 최애 음식, 청국장이다. 장모님의 청국장은 그 맛이 일품이다. 오죽하면 평생 청국장 안 먹던 서울깍쟁이인 나도 마시듯이 먹어대는 음식이니까 말이다.

 어머님께서 일 년에 한두 차례 손수 직접 만드신 청국장을 3.6리터 김치통에 싸주시는데, 그때 아내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돌변한다. 실랑이 따위는 없이 순응과 충성의 얼굴을 하며 어머님이 내주시는 대로 순순히 모든 걸 받아 든다.

 그러고 나서 집에 돌아오면 순간 바빠진다. 서울까지 올라오느라 피곤해서 쉴 법도 한데 곧장 작업에 들어간다. 엄청난 양의 청국장을 둘셋이 먹기에 적당하게 소분, 포장해 냉동실 한가득 채워 넣는다. 얼마 전엔 4살 딸아이도 함께 했다. 뭔지는 몰라도 일단 재밌어 보이나 보다.


 당분간 집에서 먹는 음식은 청국장이다. 이제 며칠 동안은 집안 구석구석 청국장 특유의 냄새가 배어있을 거다. 하지만 그 고약한 냄새는 왠지 아내가 기분을 좋게 해주는 거 같다. 엄마의 맛은 물론이고 엄마의 마음이 집안 구석구석에 배어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어릴 적 먹던 그 맛을 뱃속에 집어넣으면, 이제는 가까이서 느끼기 힘든 엄마의 따뜻함이 뱃속을 가득 채우는 게 아닐까.


 아내의 그런 모습을 보니 '엄마도 엄마가 필요하다'는 그 말이 유독 더 와 닿는 거 같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곳은 분명 집이 아닌데 왠지 청국장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어느새 내 마음도 따뜻해졌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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