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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진 May 19. 2020

아내는 오늘도 친정집을 나서며 눈물을 터뜨렸다.

아내의 시간 여행


처갓댁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서울로 향하는 길, 충주 IC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조금 지나서 카시트에 앉아있는 딸아이가 말했다.

“아빠, 엄마 우나 봐.......”

“여보, 뭐야 우는 거야?”


“.......”


첫 번째 휴게소를 지날 무렵 조금 진정이 된 아내는 그제야 참아온 한마디를 던졌다.

“왜 저렇게 일만 하는 거야.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모든 딸, 아들이 부모님께 바라는 건 그저 덜 힘드셨으면 하는 것




처갓댁에 내려가던 중 여주 분기점 근처에서 내가 조심스레 한마디를 건넸다.


“아이고. 지금 가도 집에 아무도 안 계시겠네. 아쉬워서 어째?”

“매번 그런데 뭐. 엄마 가게 가서 잠깐 얼굴 보고, 퇴근하시면 그때 잠깐 봐야지 뭐. 그 한두 시간 때문에 오는 건데 뭐. 우리 밀린 잠이나 실컷 푹 자고 오자”  




 처갓댁에만 가면 아내는 항상 늦잠을 잔다. 평소 예민해 자주 깨는 나도 본가에만 가면 이상하게도 깊은 잠을 잘 수 있는데, 아내도 마찬가지다. 결혼 초기엔 그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방이 세 칸이나 있는 우리 집에선 제대로 못 자면서, 본가 혹은 친정의 그 좁디좁은 방 한 칸에서는 푹 잘 수 있는 이유를 말이다. 하지만 엄마, 아빠가 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듯 우리도 시간이 지나니 그 이유를 자연스레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이미 어른이 됐고 엄마, 아빠가 되었지만 엄마, 아빠가 있는 집에서 자는 건 너무나 익숙하고 편한 일이다. 누군가 감싸주는 것 같은 그 느낌은 대체 불가능한 따뜻함과 포근함, 그 이상이다.

 어느덧 한 아이 부모로서의 책임을 지고 있는 우리 부부도 가끔씩은 누군가의 울타리에 기대 있을 때가 가장 아늑한 것이다. 책임이라는 무게를 벗어던질 수 있는 후련한 하룻밤은 쉽사리 찾아오지 않는 꿈같은 시간이다.


 우리는 친정의 그 작은 방에 누울 때면, 본가의 그 비좁은 방에서 잠시 눈을 붙일 때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엄마, 아빠에서 딸, 아들로 돌아간다.




충주 IC에서 고속도로를 타자마자 아내에게 말을 붙이려 룸미러를 바라봤다. 늘 딸아이 카시트 옆으로 보이던 아내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아내가 운전석 뒤쪽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있는 게 어렴풋이 느껴졌다. 뭔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카시트에 있던 4살 배기 딸이 상황을 먼저 알아차렸다.

“아빠, 엄마 우나 봐.......”

“여보, 뭐야 우는 거야?”


“.......”


첫 번째 휴게소를 지날 무렵 조금 진정이 된 아내는 그제야 참아온 한마디를 던졌다.


“왜 저렇게 일만 하는 거야.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음식점을 운영하시는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하루도 쉬는 날이 없다. 한겨울을 제외하고는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단 하루의 휴일도 없다. 요즘 그 흔한 점심 브레이크 타임도 없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시고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오셔서 사위인 내게 소주 한잔 따라주시는 것이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전개된 처갓집에서의 밤 풍경이다.

 그래도 우리 가족이 내려가면 아무리 늦게 퇴근하셔도,

아무리 피곤하셔도, 꼭 야식과 함께 한잔을 하시고 주무신다. 10시만 조금 넘어도 눈이 풀리고 끔뻑끔뻑 고개가 떨어지는데도 뭐가 그리 좋으신지 재차 눈을 비비며 계속 말씀을 이어가신다. 그 모습을 조금 지켜보다 안 되겠다 싶으면 항상 내가 먼저 일어나 딸을 데리고 잘 준비를 시작한다. 그리고 다음날 눈을 뜨면 이미 새벽같이 출근하셔서 안 계시고 집에는 우리만 남아있게 된다.


 짧은 몇시간의 만남을 뒤로 하고 우리가 떠날 때의 모습도 늘 똑같다.

장모님께서는 검은 비닐봉지에 가득 담은 반찬들을 차에 실어주신다. 바쁜 시간을 쪼개서 사두신, 손녀의 옷가지들이 담긴 종이가방도 내미신다. 그리곤 출발하기 전 손녀를 보며 말씀하신다.

 “하연아, 다음에 오면 꼭 할머니가 온종일 놀아줄게. 자 이걸로 하연이 까까 사 먹으세요.”

 두툼한 수협 봉투 하나를 손녀에게 쥐어주시고 돌아서서는 조금 씁쓸하게 한마디를 하신다.

 “3~4년 뒤엔 진짜 그럴 수 있으려나.......”


장인어른께선 손녀를 한번 꽉 안아보시고는 아예 말씀이 없어진다. 괜히 저 멀리 차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가서 음식점 앞에 보이는 잡초들을 뽑기 시작하신다. 그리고 차가 출발하면 그저 멀리서 손을 흔드신다.


그 모습들을 바라보던 아내는 서서히 말이 없어지기 시작한다.




겨우 한마디를 꺼냈던 아내가 다시 창가에 기대는 게 느껴졌다.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다스리는데 시간이 제법 오래 걸렸다. 여주와 이천을 지나도 미동이 없던 아내는 광주쯤 와서부터 코를 풀고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고향집에서의 짧은 시간을 뒤로하고 이제 다시 딸에서 엄마로 돌아와야 하는 시간이 됐나 보다. 자고 있는 딸의 고개가 90도로 꺾이자 자신의 옷을 뭉쳐 받쳐주었다. 그리곤 말을 건넸다.


“오빠, 우리 하연이 점심에 뭘 먹이지? 집에 뭐 있었지?”

       



충주 IC가 아내에게는 시간 터널이 아닐까.

IC를 빠져나와 친정집으로 향할 때는 한 아이의 엄마에서 한 부모의 딸로 돌아가고, IC에 진입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때는 딸에서 다시 엄마가 되는.

단 한두 시간이라도 그걸 할 수만 있다면, 아무리 먼 거리라도 달려가 꼭 하고 싶은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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