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나진 Jul 03. 2020

난생처음 돈을 받고 글을 쓰다

기분 좋은 청탁


태어나서 처음 내 힘으로 돈을 벌어본 건 대학교 1학년 때였다. 당시 롤러블레이드(지금 인라인 스케이트) 열풍이 불었는데 그로 인해 관련 공장들이 풀가동되고 있었다. 과천에 있는 허름한 공장에서 롤러블레이드의 바퀴를 끼고 몸체를 조립하며 9시간 정도를 일했는데, 약 4만 원의 돈을 거머쥘 수 있었다. 98년 모교의 구내식당 점심값이 2천 원 정도 됐으니 4만 원은 꽤 큰돈이었다. 다른 건 잘 모르겠지만 정말 열심히 했다는 느낌만은 잊히지 않는다. 처음으로 돈을 번다 생각하니 열과 성을 다해 임했던 것 같고, 그 보람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바로 그 잊을 수 없는 그 감정이 모처럼, 20년도 넘게만에 나를 다시 찾아왔다.




 얼마 전 하나의 제안을 받았다. 어렸을 때부터 줄곧 보던 월간 잡지 <좋은 생각>에 글 한편을 실어달라는 감사한 청탁이었다. 청탁이라고 하면 보통 뇌물 수수나 비리 따위의 안 좋은 생각을 먼저 하게 되는데, 원고 청탁이라는 기분 좋은 청탁도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영광스러운 제안도 모자라 더 영광스럽게도 내 원고에 소정의 원고료가 책정되었다. 난생처음 돈을 받고 글을 쓰게 된 것이다.

 사실 처음에는 살짝 고민했다. '과연 내가 글을 쓰고 돈을 받아도 괜찮을 실력인가?' '내 못난 글짓기 실력이 다 들통나 버리면 어떡하지?' 등의 생각이 오갔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이 행복한 제안을 뿌리칠 만큼 크게 다가오지 않았고, 그냥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덜컥 제안을 수락했다.


행복해지는 제안의 순간


 얼마 전 MBC 뉴스투데이에 지코가 출연했다. <코로나 19와 대중 예술, 그리고 지코>라는 주제의 인터뷰였는데, 앵커의 질문 중 이런 게 있었다. "가사가 굉장히 시적이었어요. 어떻게 보면, 모르고 보면 시 아닌가 할 정도였는데 가사는 보통 어디에서 영감을 받으세요?"

 이 질문에 지코는 이렇게 대답했다. "가사는 두 가지 케이스가 있는 거 같아요. 저희 동종업계에서는 흔히들 쓰는 표현으로 ‘그분이 오셨다’는 표현을 많이 쓰거든요. 이를테면 그냥 작업 의자에 앉아 가지고 가만히 멍을 때리고 있다가 어떤 알 수 없는 영감이 찾아오게 되는 거죠. 그걸 일련의 과정 없이 바로 그냥 옮겨 놓는 경우가 있고요. 또 다른 경우는 그냥 정말 짜내는 거죠. (이후 생략)"


 그렇다. 날 지코에 비할 바 못되지만 나도 그렇다. 아마 글을 쓰시는 분들이 다 그렇지 않을까. 그분이 오신 날은 의욕도 샘솟고 영감도 마구마구 떠오른다. 어떤 날엔 하루에 4~5편씩 쭉쭉 써 내려갈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 아무도 오시지 않는 날은 너무 힘들다. 어떤 날은 한 단어, 한 줄도 써 내려가기 힘들 때가 있다.


 하지만 참 다행스럽게도 원고 청탁을 받은 바로 다음 날, 그분이 오셨다. 줄기차게 떠오르는 생각들에 자판을 쉴 새 없이 두드리다 보니 어느덧 글을 3편이나 완성한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처음엔 3편을 다 보내서 마음에 드시는 걸 고르시라고 하려다 참았다. 나머지 2편도 내게, 그리고 어디선가에서 충분히 작품의 가치가 있는 것일 텐데 후보작, 혹은 탈락작으로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

 결국 마감일을 열흘도 넘게 넉넉히 남겨둔 시점에 글을 선정했다. 이미 작성이 끝났기 때문에 언제 보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다음이 문제였다. 이건 일반적인 글과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연히 돈을 받고 쓰는 글이었다. 뭔가 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자리 잡게 됐다.

 A4용지 기준 25줄 정도 되는 짧은 원고를 일주일 내내 퇴고했다. 아내, 엄마, 동생 그리고 평소 좋아하는 동료에게도 보여주며 컨펌 아닌 컨펌을 받았다. 그리고 완성된 뒤 일주일 뒤에야 전송을 할 수 있었다. 그 정도의 노력은 담아줘야 제안을 해주신 분들께도 면이 설 것 같았다.


 투고를 할 때도 느꼈지만 내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준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좋은 생각> 편집장님께 메일을 전송하고 느꼈던 그 조마조마한 마음이 아직까지 생생하다. 떨리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기다려지기도 하는 그 마음 말이다.

 다행히 답장이 호의적으로 왔다. 제안 메일에는 딱딱하게 업무적으로 이모티콘 하나 없는 메일을 받았었는데, 원고를 보내고 나서는 웃음 이모티콘(^^)이 포함된 답장을 받을 수 있었다.


 그것으로 되었다. 어렸을 때 즐겨보던 잡지 편집장님의 웃음을 받았으니 그것으로 목표를 달성한 거다.

 내가 쓴 글이 곧 인쇄되어 세상에 나온다. 월간 <좋은 생각> 8월호에 말이다. 야호! 난생처음으로 글을 써서 돈을 받고, 글을 쓰고 날아갈 것 같은 기분마저 덤으로 받았다. 좋은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아....... 이래서 잡지 이름이 <좋은 생각>인 건가?


매거진의 이전글 시작이라는 이름의 수많은 얼굴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