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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진 May 02. 2020

시작이라는 이름의 수많은 얼굴들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


며칠 전 엄마가 사주신 생애 첫 양복을 꺼내 입고 학교로 향했다. 이제 학교라는 곳은 걸어서 10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엄마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40분도 넘는 시간이 지나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학교의 모습이 신기하고 낯설었다. 양복을 빼입고 대학교 입학식에 참가하는 건 참 요상한 행위라는 것을 입학식장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 굳이 입학식에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도 그날 알게 되었다. 나를 통제할 사람도 없고 나는 그 무엇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눈앞의 모든 것이 설레고 신기했다. 대학생으로서 바라보는 세상은 온통 새로운 것뿐이었다. 엄마와 함께 학교에 왔다는 게 이상하게 부끄러워졌다.




차창 밖 여자 친구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니 그제야 참았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배웅하던 가족, 애인, 친구들의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자 입영열차 안에는 잠시 동안 침묵이 흘렀다. 열차가 서울을 완전히 빠져나가자 이별의 아픔을 혼자 삭이던 동기들이 하나둘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열차 안의 분위기는 금세 바뀌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고된 28개월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우리는 왁자지껄 떠들며 마지막 자유 시간을 불태우고 있었다. 새로운 생활이 여간 두려운 게 아니었지만 동기들과 함께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됐던 군 생활의 출발점이었다.              

 그냥 ‘김나진’이 아닌 ‘소위 김나진’, 오늘부터 내 이름 석 자 앞에 달리게 된 두 글자, 관등성명이 그렇게 어색할 수 없었다. 떠드는 것도 지쳐 하나둘씩 곤히 잠을 자기 시작하니 열차 안은 다시 고요해졌다. 다들 입대 하루 전 한 숨도 자지 못했을 터, 자연스레 밀려오는 잠에 몸을 맡겼다. 벌써부터 엄마가 무척이나 보고 싶어 졌다.




회사 정문 앞에 출근시간보다 30분도 넘게 일찍 도착했다. 담배를 하나 피우고는 화장실에 가서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너무 긴장이 돼서일까 조금이라도 늦게 올라가고 싶어서였을까, 다시 흡연구역으로 가서 담배를 하나 더 물었다. 첫 출근이 그저 싫고 또 싫었다. 꿈을 포기하고 원했던 직장이 아닌 곳에 마지못해 오게 되니, 나 자신이 마치 도살장에 끌려온 소처럼 느껴졌다. 테헤란로 한가운데 우뚝 서있는 높디높은 회사 건물 위쪽을 한참 바라보며 스스로를 다독거렸다. 꿈이란 건 원래 없었다는 듯 그저 나이 값을 하기 위해 사회라는 곳에 첫 발을 내디뎠다. “안녕하십니까아!” 큰 목소리로 힘차게 인사하며 사무실로 들어갔다. 첫 월급을 타서 어머니 아버지 내복 한 벌 사드릴 생각을 하며 꿈을 포기한 아픈 마음을 추슬렀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니 이건 뭐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매일 밤늦게 나가 친구들과 신나게 한잔하고 돌아와 정오를 넘기도록 늦잠을 자댔다. 폐인처럼 일어나 엄마가 끓여놓은 콩나물국을 들이켜고 다시 방에가 드러누워 밀린 드라마들을 보니 시간이 순식간에 갔다. 놀고먹다 지치면 자면 되었으니 무릉도원이 따로 없었다.

 백수의 시작은 참 달콤했지만 그 달콤함은 오래가지 못했다. 시간이 조금 흐르니 돈이 떨어졌다. 나오라는 친구들의 전화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안 나가기 시작했다. 드라마를 보는 일도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머릿속은 패배감으로 가득했고 삶은 점점 팍팍해져만 갔다. 엄마의 잔소리도 부쩍 늘었다. 아들이 고생만 하다 이제 좀 휴식기를 갖겠다는데 채근하는 엄마가 밉다 못해 정말 싫었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뜨겁게 타오르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다. 여의나루 역에 내려 MBC로 향하던 그 짧은 5분 동안 온갖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믿기지가 않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별 볼일 없는 동네 백수 아저씨였던 내가 아나운서라니. 회사에 도착해 내 이름이 적힌 사원증을 받았을 때는 아예 현실을 부정했다. 아니야. 아니야. 이건 현실이 아닐 거야.

 신입사원 왔다고 아나운서 선배들이 뭉쳐 함께한 점심식사는 현실 부정을 넘어서 일생일대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TV에서나 보던 사람들이 내 앞에서 움직이고 말을 하고, 심지어 웃고 있었다. 아나운서로서 첫 출근하던 날, 온종일 소름 돋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꿈을 이룬 아들을 자랑스러워할 어머니 생각을 하니 나 스스로가 대견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리게 됐다. 인생에서 가장 짜릿한 시작이었다. 그 어떤 수식어나 긴 부연 설명이 필요 없었다. ‘행복’이라는 두 단어를 느끼기 바빴다. 그냥 세상의 모든 것에 감사하면 되었다. 지금껏 키워주신 아버지, 어머니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무서운 순간이 있었을까. 아내 뱃속에 있는 리기의 맥박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수술을  하기로 결정하기 무섭게 아내는 수술실로 떠났다. 기다린 시간은 불과 30분 남짓. 그 짧은 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질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간절히 기도하는 일뿐이었다.

“수술 잘 끝났습니다. 산모와 딸 모두 건강합니다. 축하드려요. 아버님.”

 두려움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아이와의 첫 만남. 설레는 마음으로 9개월을 기다려온 이 만남이 마냥 기쁠 줄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내가 아빠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잠깐의 만남을 뒤로하고 아이를 신생아실로 떠나보내고 나자 알 수 없는 수많은 감정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여태껏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이 복잡한 감정들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다시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해 손녀의 탄생을 알렸다.

 조리원에서 나왔던 따스한 봄날, 활짝 핀 목련을 보며 아이를 안고 걷기 시작했다. 집으로 향하는 그 짧은 5분. 무거운 책임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수없이 되뇌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아이를 내가 지켜주겠다고. 꼭,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한 아이의 아빠로서의 인생이 그렇게 시작됐다.




설레지만 긴장되고 떨리며, 기쁘지만 무섭고 어안이 벙벙하며, 행복하지만 무겁고 걱정되는 이 다양한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어른이 됐다 아이가 되었다를 반복하는 것 같다. 인생에서 ‘시작’이라는 이름을 한 이 다양한 얼굴들은 또 언제, 어떤 모습으로 찾아오게 될까. 또 그때마다 나는 엄마를 ‘엄마’, ‘어머니’ 중 뭐라고 부르며 찾게 될까.






다음 달, 드디어 나의 첫 책이 세상에 나온다. 책 안 팔릴 걱정은 기본이요, 쪽팔림은 덤이다. 이대로 몹쓸 글짓기 실력이 들통나버리면 왠지 내 인생이 쫑날 거 같다. 어머니께 1차 퇴고 본을 건네며 오탈자 확인을 부탁드렸다.

 며칠 뒤 조심스레 여쭈었다. "글 좀 어떤 거 같아요?"

무슨 대답을 하실지 궁금해 미치겠다. 설레고 떨린다. 살짝 두렵기도 하다. 어머니가 입을 떼려는데 웃음이 났다.


 '그래, 이게 사는 맛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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