닿지 못했고, 닿을 수 없는...
나의 불편과 곤란은 나를 둘러싼 어른들의 고려사항이 아니어서, 고2 무렵 집이-정확히는 엄마가-이사하게 되었고, 매일 아침과 밤으로 버스를 갈아타며 왕복 세 시간이 넘는 시간을 들여 등하교를 하게 되었다. 딱히 공부로 승부 볼 인생이 아니라서 엄마의 그런 조치가 불만스럽지는 않았다.
밤 늦게 자율학습을 마치고 학교 앞에서 버스를 타면 지금의 거제시장 근처에서 다시 버스를 갈아탔다.
거제시장 버스정류장은 당시에도 그 앞의 도로는 꽤 넓어서 차량 통행량은 많았지만 그와 달리 인도를 오가는 인적은 드물었는데 더욱이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그곳에 있으면 겨우겨우 막차를 탈 수 있는 시간이라 나는 홀로 서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버스를 기다리곤 했다.
가끔은 영원히 그곳에 낙오되어 버릴까봐 겁이 나던 때도 있었다. 나에겐 데리러 올 어른이 없었다. 결국 꾸역 꾸역 제 발로 그곳까지 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휴대전화는 고사하고, 버스 도착 알림판 같은 것도 없으니 내가 탈 버스를 기다리며 할 수 있는 소일거리라고는 주로 지나가는 버스와 승객들을 구경하는 일이었다.
승객이 별로 없는 버스들은 가끔 실내등을 반쯤 꺼 놓기도 했다. 그런 버스가 내 앞을 지날 때면 내 근처를 겨우 비추는 주황색 가로등이 차 창을 너머 실내에 빛을 더해 그곳은 몽환의 공간처럼 보였다.
나는 그 찰나의 순간에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이런 ‘생각이 이상하다는 생각’도 했다.
집에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면서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되고, 심지어 집을 향하는 버스 안에서도, 집 앞 골목 어귀에서 조차 그 생각은 계속되었다.
드문드문 앉은 승객들은 졸음에 빠져, 앉은 의자에서 머리를 반쯤 기울이고 있거나, 차창 밖으로 시선을 두고선 상념 또는 추억에 젖어 있다.
옅은 귤색 불빛이 실내를 따뜻하게 밝히는 그 공간에는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가 흘러나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단단한 외골격의 버스는 이 모든 순간을 지켜낸다.
바깥의 밤으로부터, 인적 사라진 그 쓸쓸함으로부터,
막차를 놓치고 그 길 위에서 영원히 유배되었을지도 모를 운명으로부터.
어른이 되고서 손수 운전을 해 집으로 간다.
지금도 나는 가끔, 내가 지나는 길 위의 수 많은 거제시장 정류장 앞에서 희미한 귤색 불빛 실내등을 켠 버스를 바라보는 소년의 형상을 본다.
그럴 때면 나는
‘집에 가고 싶다.’
닿지 못했고, 닿을 수 없는 집으로...
"본문의 이미지는 작가의 기억을 바탕으로 AI와 협업하여 시각화한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