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엄마를 돌보는 방법에 관하여
엄마는 가죽을 흉내 낸 손바닥 크기 정도의 비닐 지갑에 지폐나 동전을 담아, 장롱 이불 사이에 깊이 찔러 넣어 두곤 하셨다.
나는 가끔 엄마가 없는 틈에 엄마의 지갑을 꺼내 거기에 얼마가 들었는지 확인하곤 했다.
엄마의 돈을 몰래 가져가려는 게 아니었다.
내가, 엄마가,
나와 엄마 둘 뿐인 우리 가족이 처한
위태로움의 크기를 가늠해 보는
가슴 조리는 탐색이었다.
그곳에 천 원짜리 지폐 한 장 없어
동전만 딸랑딸랑거리면
내 가슴은 그 동전소리보다 더 크게
철렁철렁 떨어졌다.
그래도 만 원짜리 한 장 접혀서 들어 있는 날은 내 마음에 엄마의 편안한 얼굴이 가득 차 올라 행복했다.
엄마도 아시는 듯했다. 내가 그 돈을 엄마의 허락이 없거나 엄마의 손을 거치지 않고 꺼내 가지 않는다는 것을.
가끔 이웃 어른들이나 학교 선생님께 ‘우리 아(애)는 거짓말을 안 해요’라고 하시며 마치 그게 나의 유일하고도 큰 자랑거리라도 되는 듯 말씀하시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그때는 아이들이 용돈을 정기적으로 받는 시절이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나만 그랬을 수도 있다.
어느 날 학교 앞 문방구에서 본 1,000원짜리 문고판 마술책이 사고 싶어 졌었다.
그 책을 사서 마술을 배워 친구들 앞에서 자랑이 하고 싶었다.
몇 날 며칠을 모아 봤지만 용돈 없는 나로서는 애를 써 봐도 900원 언저리에서 자꾸 미끄러졌다.
깐돌이 하드가 먹고 싶어서 50원,
뽀빠이랑 별사탕이 먹고 싶어서 100원,
곡간을 드나드는 생쥐처럼 먹고 싶은 게 생길 때마다 내 비상금을 채우고 쓰기를 반복하게 되니 마술책은 멀어졌다가 다가와서는 다시 멀어졌다가 다가왔다가......
결국, 나는 엄마의 지갑을 확인하고 싶어졌다.
장롱문을 열고 차곡차곡 쌓인 이불 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찹찹한 나일론 이불보 사이로 내 자그만 손이 미끄러져 들어갈 때면 늘 가슴 졸였었는데, 그날은 더 떨렸었다.
지갑을 꺼내 조심스레 지퍼를 열어 봤다.
다행이다. 참 다행이다.
나는 안도했다.
그곳에 천 원짜리 몇 장과 오천 원짜리 한 장이 곱게 겹쳐져 두 번 접혀 있었다. 딱 지갑 크기만큼.
나는 그 지갑을 다시 살며시 제자리에 두었다.
그날 저녁 공장에서 퇴근해 오신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 마술책 사야 되는데 아무리 돈을 모아도 100원이 부족해요.”
엄마는 별말씀이 없으셨다.
다음날 등교하기 전, 엄마는 내 앞에서 장롱을 여시고 이불 틈으로 손을 넣어 엄마의 지갑을 꺼내 천 원 한 장을 쑤욱하고 빼서는 내 손에 기분 좋게 쥐어 주셨다.
그랬다. 나는 용돈이 필요할 때면 엄마의 지갑을 먼저 확인하는 버릇이 든 아이였다. 지갑이 비어있는 날은 엄마에게 어떠한 투정도 하지 않았다.
그건... 엄마를 슬프고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던 어린 나의 배려였다.
왜 그런 어설픈 철이 들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돈 없는데 돈을 달라’고 해서 엄마가 난처해하고, 슬퍼했던 그 얼굴을 나의 무의식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엄마의 지갑에 만 원짜리 한 장이 접혀 있던 날의 그 안도감이 아직도 내 손 끝과 마음에 남아있다.
p.s. 다 자라서 공부를 해보니, 돌봄이란 게 부모자식 사이에서도 그렇게 순환하는가 보다 싶다.
"본문의 이미지는 작가의 기억을 바탕으로 AI와 협업하여 시각화한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