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말.

아득해지고 외롭게 만드는 그 말

by 와온

진술녹화실, 아크릴판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나를 쳐다보는 그 또는 그녀의 눈빛은 매우 적대적이었다.


그녀 또는 그는 가정폭력 가해자로 현장에서 체포되어 온 참이었다.

가족들이 몸을 피한 사이 사는 집 현관문을 부수고도 화를 주체하지 못해 도어록에 불까지 지른 후에야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들에게 붙들려 온 처지였다.


사건기록을 찬찬히 보니 체포되는 현장에서도 경찰관들을 거칠게 몰아붙이고 욕설을 해대며 행패를 잔뜩 부렸노라 되어 있다.

주민번호는 4번으로 시작하는데 하는 짓과 말투는 남성이었다. 다만, 다소 과장되어 있다는 인상을 순간 받았다.

목소리는 걸걸하고 쉬어 있었다. 호르몬치료 중이고 담배를 많이 피워서 그렇다고 했다.

트랜스 남성이었다.


그에게 해야 하거나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형사절차들이 내 머릿속에 자동장치처럼 펼쳐졌다.

그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신문을 하면서 틈틈이 성별 정체성에 관한 내 생각을 말하고 그가 겪었을 부침이 어떠했을지 묻거나 대답을 들었다.


그의 정체성은 분명했지만, 그를 둘러싼 대부분의 사람과 환경은 그의 정체성과 갈등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의 폭력성은 스스로가 해석한 자기 내면의 남성성을 공인받고 싶어 하는 욕망이 기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나의 판단은 그가 나에게, 처음으로 자신을 남자로 대해줬다는 말로 감사해하는 것에서도 짐작할 수 있었다.


조사를 마치고 수갑을 다시 채워 유치장에 입감 했고, 다음날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이 기각하여 석방되었다.

석방되던 날, 그 친구는 유치장 입구를 등지고 선채 ‘아저씨, 죄송해요. 감사합니다’라며 나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뭐가 죄송한지, 뭐가 감사한지... ... 알 듯 모를 듯했지만 그냥 알겠다고 했다. 다만, 내 경험상 최소한 그 순간만큼은 어느 누구나 어떠한 진심같은 것을 가졌다 건 안다.


그 후로도 그의 아버지와 언니 혹은 누나에 대한 폭력은 한동안 반복되었다. 여전히 그는 가해자로 다른 수사팀에도 번갈아가며 붙잡혀 오거나 서류로 입건되었다.



12월 중순쯤이었나 그날에도 부산에는 눈 대신 비가 조금 내리고 있었다. 야간 당직 근무를 하는데 경찰서 입구 야간 민원실 근무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가 나를 만나고 싶다며 찾아왔고, 민원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노라는 것이다.

시간을 보니 자정이 가까웠다.

문득, 내 교대근무 패턴을 기억하고 있다니, 그 정성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온통 검은색 상하의를 입고, 찢어지기 직전인 크고 구겨진 쇼핑백을 테이블에 올려 둔 채로 앉아 있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웃어 주었고 반가운양 안부 인사를 먼저 건넸다. 이전과 달리 잔뜩 움츠린 그의 어깨와 아무렇게나 담겨 쇼핑백 위로 슬쩍 삐져나온 옷가지들을 보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알될 것 같았다.


갈 곳이 없어서 나를 찾아왔다는 그 짧은 말을 몇 번이나 주저하며 꺼냈다.

가정폭력 가해자인 그는 가족에게 접근금지된 상태이고, 그의 폭력을 감당하지 못한 아버지는 그를 두고 어디론가 이사를 가버렸다.

갈 곳이 없는 게 맞다. 찾아가지도 연락하지도 말 것을 국가가 명령했으니, 자업자득이다.


어떻게 지냈는지 물으니 방금 전까지 아버지와 같이 살던 빌라 옥상 계단에서 며칠을 보냈노라고 한다. 내가 본 그의 몰골은 당연했던 것이다.


“밥은 뭇나.”

“아뇨...”

“아이고 이 자식아...”


나는 곧 그가 임시라도 거처할 곳들을 찾아 이리저리 전화를 걸어봤다.

그러나, 가정폭력의 가해자이고, 트랜스 남성인 그를 받아 주겠다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우리는 함께 난감해졌다.

“여 잠깐 있어봐라.”


사무실로 올라가 행정편지봉투를 챙기고, 내 주머니 속 몇 푼 안 되는 비상금을 거기에 넣었다.

그의 자존심은 지켜 주고 싶었다.

“아무개야. 모텔을 가든 PC방엘 가든 이 돈으로 추위는 피해라. 따시게 잠도 좀 자고, 컵라면 정도는 먹을 수 있을 끼다.”


헤어지기 전 비를 피해 경찰서 서정 구석에서 같이 담배를 피웠던 기억과 자꾸 몸을 떨며 반복하던 감사 인사 외에는 그와 무슨 말을 주고받았는지는 잊어버렸다.

내가 나를 아는데... 아마도 나의 겸연쩍음을 감춘다는 구실로 많은 말을 했을 것은 분명하다.



해가 바뀌고 여름이 되었을 때,

한 통의 편지가 왔다.

사서함 58-0000.

낯익은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얼마 전, 형사과에서 그를 구속시켰다는 소식은 전해 들어 알고 있었다.

편지를 전해주며 그와 나의 사연을 잘 아는 이웃팀 후배가 한마디 한다.


“선배님,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잖아요.”


‘저 말... 참 가혹하고, 아득함과 고립감을 갖게 하는데... 하지 말지...’

나도 어린 시절 ‘저거 사람 구실하겠나’는 말을 들었을 때가 있었다. 참으로 정신이 아득했었고, 진실로 나를 외롭게 했었다.


한 존재를 잔인하게 정의해 버리고, 감금하고, 희망을 앗으려는 그 말.

“00형사... 그 친구를 고치려고 한 게...... 아니다. 됐다... ”


p.s. 후배는 모를 것이다. 무심코 던진 그 말이 그를 향해서는 참으로 중의적이었다는 사실을.

고칠 수 없는 것이 그의 성별 정체성인지, 아니면 반복되는 삶의 궤적이라는 말인지, 아무튼 어느 쪽이든

그러한 단정은 한 존재를 ‘참으로 아득하고, 진실로 외롭게 한다’는 것을.


p.p.s. 나는 그의 내면에서 비명지르는 '아니무스(Animus)'가 해석되고 이해되길 바란다.


다음 회차 예고: 접견조사를 갔던 날 보았던 어떤 할머니로부터 제 어머니와 이어진 환대와 애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 <진주교도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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