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의 동거인

그러나 엄마의 막내 아들

by 와온
나의 납작한 통찰은 이 지독한 고독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등본 속에서 내가 '유령'임을 처음 확인했던 그날로부터의 기록을
먼저 꺼내 놓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는 하시던 사업을 말아 드시고 도망치듯 본처에게로 돌아가셨다. 그곳에는 아버지의 성을 물려받은 나의 배다른 형님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만, 어린 나는 그들의 이름을, 얼굴을 몰랐다.


남겨진 나는 엄마의 등본(지금의 가족관계증명서)에 ‘동거인’이라는 낯선 이름으로 재정의 되었다. 나는 엄마의 ‘자녀’인 각성바지 형제들 틈에 섞인 이물질이었다. 세상은 활자로 나를 추방한 것이다.


중학교 시절, 학교에 제출할 용도로 받아 본 빳빳한 사각형 종이의 모서리는 손이 베일 것도 같았고, 살짝 흔들어 보면 양철판 소리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어린 시선에 비친 등본 속 '동거인'이라는 글자는 도무지 해로워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 단어가 나를 가부장적 질서 밖으로 밀어낸 ‘비가시적 존재’의 낙인임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당시에는 그런 주석을 달 수 없었으나, 존재의 결핍은 주석 없이도 차츰차츰 서늘해졌고, 나를 창피한 존재로 소개하는 추천장을 받아 든 무수한 타인들의 시선이 주는 경계심 또한 나는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생각해 보니 그것은 내 고독의 기원이었다.


성인이 되어 결혼했을 때 나는 아주 재빠르고, 최대한 신속하게 도망쳐 등본 속을 빠져나와 내 가정을 세우고, 세대주가 되어 ‘배우자’와 ‘자녀들’을 채웠다. 그리고 그 무렵 나는 제복 입은 공무원이 되었다.

그 과정에 의식은 관여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를 밀어냈던 냉혹한 상징계의 심부(心部)로 나를 떠민 8할의 추동은 무의식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국가의 강력한 대리인이 됨으로써, 비로소 존재의 공인을 재청구하는 것과 같았다. 제복이라는 갑옷을 입지 않고서는 거친 유배지의 미궁 속에서 유령으로 늙어 죽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엄마가 서생 바다로 돌아가시고 공무원연금공단에 사망조위금을 신청할 수 있다는 공지를 보면서 내 존재의 일부가 여전히 추방지에서 사면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가 나의 엄마라는 사실을 공인받아야만 사망조위금을 받을 자격 있다는 것이다.

공무원이 그 배우자나 부모가 사망했을 때 사망 관련 청구할 수 있는 연금 중에 사망조위금이 있다. 다만, 사망한 부모와 청구인이 친자관계임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하며 보통(?)의 경우 가족관계증명서 한 장이면 족하다.


그러나 엄마의 동거인이었던 나로선 내가 엄마의 자녀라는 사실을
곧바로 입증할 수가 없었다.


속이 울렁거렸다. 나의 비통함과 엄마를 향한 나의 모든 애도가 공인받을 수 없다는 것은 세대주가 되고, 제복 입은 공무원이 되어 재청구한 내 존재의 요구가 여전히 ‘접수 중’이라는 막막함 때문이었다.

그것은 나의 전 생애를 또다시 부정당하는 일종의 ‘사태’와 같았다.


물론 국가의 시스템이 나를 전면 거부하는 것은 아니므로 나의 이 같은 현기증과 멀미는 내 안의 결벽이 일으키는 강박이거나 후유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미 한 가정의 세대주이고 제복 입은 공무원이 되었건만, 여전히 나를 엄마의 동거인으로 호명하는 그 단호함과 그 변함없음이 아찔할 뿐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이 사태 앞에서 나는 나의 모순과 이율배반을 알아버렸다. '정상'이라 규정된 울타리 밖에서 서성이며, 그 견고한 가부장제도와 호적제도, 혈연주의와 같은 벽을 비판하던 나였다. 그러나 동시에, 그 거대한 질서가 공인하는 '자녀'라는 활자 안에 포함되고 싶어 발버둥 치고 있는 것이다.


머리로는 그 제도적 허상을 꾸짖으면서도, 가슴 한쪽에서는 엄마의 완전한 아들로 공인받고 싶어 하는 결핍된 소년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볼품없는 갈등이 나를 부끄럽게 한다.


다음 회차 예고: 현장에서 마주한 인간의 모순에 관하여 ──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말>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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