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오늘 가져왔지?”
희성이 고개를 끄덕이자 희지가 희성의 가방을 열고 안쪽을 뒤적거렸다.
“누나도 옷 좀 그만 사. 엄마아빠 몰래 사면서까지 사고 싶냐?”
희성이 가방을 뒤지는 희지의 등에 대고 말했다.
“남이사 내가 내 돈 쓴다는데 네가 뭔 상관… 너… 이거 뭐야?”
희지가 떨리는 목소리로 가방에서 서류 한 장을 꺼냈다.
“어? 아, 이거 지하철에 받았어.”
“그니까 이걸 왜 받냐고 네가.”
“주니까 받았지.”
“이걸 그냥 준다고 받는 사람이 어디 있어! 엄마!”
“아씨…”
“신희성… 너 이거 뭐야…?”
세현이 떨리는 손으로 성명서를 들고 희성의 문 앞까지 걸어왔다. 그 뒤에는 불안함과 혐오의 눈빛이 뒤섞인 표정으로 희지가 있었다.
“지하철 앞에서 받은 거야.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냥 줘.”
“너…아니지?”
“뭐가 아냐!”
“아…아니지 희성아?”
“아니 그니깐 뭐가 아니냐고…”
“엄마 말 못 알아듣냐? 좀비 새끼 된 거냐고 네가!”
답답했던 희지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세현의 뒤에서 소리쳤다.
“아, 아니라고! 뭔 좀비 새끼야! 말이나 똑바로 해. 요즘 누가 좀비라고 그러냐?”
“됐어… 둘 다 그만해… 아니면 됐어. 엄만 그거면 됐어.”
문 앞에 있던 세현이 희성의 대답을 듣고는 안도감에 풀썩 주저앉았다. 희성과 희지가 쓰러진 세현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죽일듯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을 때 도어락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당신. 뭐해 거기서. 어디 아파?”
“아빠! 이거 봐봐 좀. 쟤 미쳤나 봐 진짜!”
희지가 광훈이 신발을 채 벗기도 전에 희성이 들고 온 성명서를 눈앞에 들이밀었다. 광훈은 희지가 들고 있는 성명서를 차근차근 읽어 나갔다. 마지막 서명란에 서명이 안 되어있다는 사실에 짧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 광훈은 그제야 거실로 들어섰다.
“여보 잠깐 들어가서 쉬어. 신희지, 너도 나와봐. 아빠가 얘기할게.”
광훈은 세현을 일으키며 희지에게 고갯짓했다. 희지는 세현을 부축하며 안방으로 갔고 광훈은 희성의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서명은 안 한 거지?”
“어.”
“하긴 할 거야?”
광훈이 희성을 노려보며 말했다.
“몰라 아직.”
“너, 아직 이게 뭘 의미하는지 모르는구나?”
“뭘 몰라. 결국은 이식자들 식당 만든다는 거 아냐. 나도 알아 아빠. 무시하지 마.”
“그것만 의미하는 거 같아 이게? 그냥 단순히 인육 레스토랑을 만든다 아니다? 단순히 허가의 문제면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난리 칠까? 이식자 중에서 정치판에 힘 있는 사람도 한둘도 아닌데? 신희성. 제대로 생각해. 이식자가 아닌 사람이 동의하는 거야. 지금 이 성명서.
네가 알고 있는 사람들. 엄마, 아빠, 희지, 성호 같은 사람들을 먹는 식당을 만든다는 거라고. 정신 똑바로 차려라 너. 동정이랑 지지는 다른 거야. 내가 웬만해선 네가 뭘 하고 싶다고 하든지 막을 생각 없는데, 이건 아니야. 이건 달라. 그냥 네가 하고 싶어서 하는 그런 범주가 아니야 이거는. 갖다 버려 빨리.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찢고 싶은 마음이 진짜 굴뚝같은데 네가 너 손으로 버려.”
“아니 근데 걔네도…”
“신희성! 네가 지금 걔네들 동정할 처지야!”
광훈이 희지와 희성을 키우면서 이 정도로 언성을 높였던 건 처음이었다. 희성도 광훈의 목소리에 놀랐는지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광훈은 순순히 말을 들으라는 듯 희성의 눈을 몇 초 동안 노려본 후에 문을 열었다. 방을 나서려던 광훈은 뒤돌아 희성에게 말했다.
“내일 그거 내 눈에 안 띄게 해라. 아빠는 희성이 너도, 희지도, 하다못해 너희 엄마도 이식자 되면 그 순간 호적에서 파고 집에서 나가라고 그럴 거야. 내가 생각하는 좀비 놈들 위치가 딱 그래. 더 이상 말 안 한다. 같잖은 동정할 시간에 너 인생에 도움되는 생각 하나라도 더 해.”
광훈이 나가고 희성은 침대에 걸터앉아 성명서를 다시 한번 읽었다. 희성이 보기에는 아빠가 말한 것처럼 거창한 의미를 가진 서류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볼펜을 꺼내 서류 하단에 서명했다. 이식자가 아닌 일반인임을 증명하기 위해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도 함께 적었다. 아빠와 다른 가족들에 대한 반항심리일 수도 있지만 희성은 그동안 아빠가 말했던 인생 신조를 지켰다고 생각했다. 광훈은 희지와 희성이 스트레스로 힘들어할 때 매번 ‘다른 사람 의견에 휘둘리지 말고 너만의 생각이 있으면 굳게 믿어라’라고 말했다. 희성은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 다짐하며 성명서를 접어 가방 안쪽 주머니에 넣어두었다.
-
“신희지, 신희성. 나와서 밥 먹어~”
광훈이 식탁 위에 두부튀김, 시금치 무침을 담은 접시를 내려놓으며 외쳤다.
“엄마는?”
“엄마 오늘 야근. 엄마꺼 밥 따로 해놨어.”
희지가 방에서 나와 수저를 꺼내 오며 말했다.
“신희성, 나와~”
희지가 수저를 내려놓으며 희성을 부르자 곧 방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발을 바닥에 쓸면서 터벅터벅 걸어온 희성은 바로 식탁 앞에 앉았다. 말없이 식사가 계속되던 도중 광훈이 정적을 깼다.
“이거 두부튀김 왜 이렇게 느끼하지?”
“아 그래? 나는 괜찮은데?”
희지가 두부튀김을 집어 코앞에 대고 냄새를 몇 번 맡고는 입안으로 던져 넣었다.
“시금치도 참기름을 너무 많이 넣었나…”
“엥? 시금치 나는 참기름 더 넣었으면 좋겠는데.”
“희성이 너는 안 느끼해?”
“어. 딱히? 시금치는 그냥 적당한데. 두부튀김은 살짝?”
“와 이 새끼. 내 말에는 한마디도 안 하다가 아빠가 물어보니까 바로 대답하는 거 봐. 좀비 새끼라고 한 거 때문에 아직도 삐졌냐?”
“닥쳐라. 진짜.”
“야, 누나한테 ‘닥쳐라’가 뭐야. 너도 그만해 신희지. 밥이나 먹어 밥이나.”
-
다음 날은 광훈의 야근으로 세현이 저녁을 차렸다. 최근 다이어트 중이었던 세현은 샐러드 채소와 버섯으로 저녁 차렸다. 세현이 희지, 희성과 저녁을 먹고 난 이후 집에 들어온 광훈은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먹기 싫어서?”
“아… 아니 오늘 약간 고기 먹고 싶어서…”
“에이 미리 말을 하지… 내일 먹게 장이라도 봐 놓을걸.”
광훈은 식탁 위에 정갈하게 놓인 샐러드 볼을 한참을 쳐다보다가 뭔가 결심한 듯 다시 현관으로 향했다.
“어디 가?”
“고기 사 오게.”
“지금? 지금 10시 넘었어.”
“어… 아냐 아냐. 아직 안 닫은 데 많아. 요 앞에 마트도 아직 안 닫았잖아.”
“뭐야 그 정도로 먹고 싶다고?”
세현의 마지막 말은 듣지도 않은 채 돌아선 광훈은 30분만에 삼겹살을 한 아름 사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거실에서 드라마를 보고 있던 세현과 희지는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광훈은 11시 반이 되도록 삼겹살 4인분을 혼자서 먹고 나서는 침대에 누웠다.
“어우 고기 냄새. 아니 무슨 회식 자리 갔다 온 사람 같아. 정말 옆자리 사람 배려 좀 해줘라.”
“에이 다 씻었어~”
“아니 근데 무슨 일이야? 고기 먹고 싶어도 이 정도까지 먹고 싶어한 적은 없었잖아.”
“그러게… 아니 근데 요즘 너무 채소만 먹긴 했어. 요즘 다이어트 하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아? 팀원들이 뭔 맨날 샐러드만 먹재. 샐러드 아니면 뭐였지? 그 포케! 그거만 먹어 진짜.”
“아…”
세현은 광훈이 옆으로 돌아눕기 전까지 그의 입술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아직 고기 기름에 입술이 번들거리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