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은?”
“먹고 왔어.”
“벌써? 퇴근하고 바로 오는 시간인데?”
“아 오늘 조금 일찍 퇴근하게 돼서 팀원들이랑 그냥 먹고 왔어.”
“오~ 좀 친해졌나 보네. 팀원들이랑?”
광훈은 저녁을 권하는 세현을 뒤로하고 옷을 벗고 화장실로 들어섰다. 바로 침대에 쓰러질 수 있을 정도로 온몸에 힘이 안 들어갔다. 그는 샤워기를 어깨에 걸쳐 놓고 세면대를 보며 한참 멍만 때리다가 나와 침대에 몸을 뉘었다. 아직 8시밖에 안 됐는데도 눈이 스르르 감겼다. 광훈이 눈을 감은지 3시간쯤 지났을 때, 세현이 자는 광훈을 흔들었다. 평범한 장난 같지는 않았다. 자고 있던 광훈이 놀라서 일어날 정도로 격하게 광훈을 깨웠다.
“일어나봐! 일어나보라고!”
“아니 왜 이래. 무슨 일이야.”
“당신 이거 뭐야?”
세현이 상체만 일으킨 광훈의 눈앞에 무언가를 흔들어 댔다. 병원에서 받았던 팸플릿이었다. 팸플릿을 보고 눈을 몇 번을 비볐는지 세현의 눈 주변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거 뭐냐고! 당신 옷 주머니에 이게 왜 있어?”
“아씨 아니야! 지나가다가 누가 찔러 넣은 거야!”
“그걸 내가 어떻게 믿어. 어떤 이상한 사람이 이거를 막 남의 주머니에 쑤셔 넣어?”
“당신 나 못 믿어?”
“어. 나는 당신 못 믿어. 일어나 지금. 당장.”
“무슨 소리야. 지금 12시 다 되어 가.”
“누가 어디 나간데? 일어나보라고.”
광훈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자 세현이 광훈의 손목을 낚아챘다. 거실과 주방은 깜깜했다. 세현은 광훈을 식탁 의자에 앉히고 주방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냉장고를 열었다. 반찬통에 담긴 가지볶음을 꺼낸 세현이 식탁으로 돌아왔다.
“먹어봐. 당신이 좋아하는 거잖아. 가지볶음.”
“당신 진짜 이럴 거야?”
“당신이 아니라면 왜 못 먹어? 나 같으면 그냥 얼른 먹고 오해 풀고 끝내겠다.”
광훈의 혀에 오늘 점심에 먹었던 상추 맛이 맴돌았다. 다시 생각해도 도저히 목구멍 뒤로 넘길 수 없는 맛. 하지만 아직은 가족들이랑 헤어지기 싫었다. 만약에 그가 이식자가 되었다고 밝힌다면 세현과 희지는 두말없이 그를 쫓아낼 것이 분명했다. 짧은 생각을 마친 광훈은 젓가락을 들었다. 시간을 끌수록 오히려 의심만 살 것 같았다. 그는 가지볶음을 한 움큼 집어 입 속으로 욱여넣었다. 입 속에서 다큐멘터리에서나 보던 커다랗고 하얀 굼벵이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입천장에는 굼벵이의 잔털들이 느껴졌고 혀 위로는 수많은 다리가 느껴졌다. 광훈이 씹을 때마다 그 굼벵이가 터져 알 수 없는 액체들이 혀에 닿아 끈적거렸다. 그는 한동안 그 굼벵이를 넘기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문 채 다 터져버린 굼벵이 껍질만 질겅질겅 씹어 댔다. 세현의 눈이 점점 동그래지자 광훈은 결정타를 날리듯 목구멍으로 그것을 넘겨버렸다. 몸 안으로 들어가면 안 될 끔찍한 폐기물을 삼키는 기분이었다.
“됐어? 이왕이면 막 볶은 걸로 주지 그랬어. 아주.”
세현은 안도의 한숨을 크게 쉬더니 건너편 의자에 쓰러지듯이 앉았다. 희지와 희성의 방에서도 침대에 눕는 인기척이 들렸다.
“아니 왜 이렇게 뜸을 드려! 진짠 줄 알았잖아!”
“내가 무슨 뜸을 드려. 당신이 괜히 불안해서 그렇게 보이는 거지.”
“아니 그리고 남의 주머니에 그런 걸 꽂고 가는 사람은 또 뭐야.”
“요즘 이식자 애들 중에 장난으로 오해받게 하려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래. 걔네들이라고 다 이성적인 애들만 있지도 않고 아직 머리 덜 큰 애들도 있어.”
“하아, 이거 괜히 미안하네. 자는 것까지 깨워서…”
“괜찮아. 나 같아도 당신이 저거 들고 오면 똑같이 했을 거야. 얼른 자자 이제.”
“응… 미안해 여보.”
광훈은 다음 날 아침 새벽같이 일어났다. 보통 세현과 광훈 중 먼저 일어난 사람이 아침을 차리곤 했는데 세현이 차린 아침에는 왠지 채소가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평소보다 1시간은 일찍 일어난 광훈은 토스트와 소시지로 간단하게 아침을 만들고는 가족들을 깨웠다. 다 같이 먹는 아침 속에서 광훈은 앞으로의 아침을 어떻게 견뎌낼지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식사 자리에서의 고민은 비단 집 안에서만이 아니었다. 회사 점심시간에도 김 대리가 못할 말을 하러 다가오는 것처럼 쭈뼛쭈뼛 다가왔다. 광훈은 괜찮다며 법인카드를 내밀었지만 내심 하루 만에 식사자리에서 추방당한 것이 서러웠다. 멀리 보이는 소회의실에서는 성찬이 가끔씩 광훈의 자리를 힐끗거리며 인공육을 물어뜯었다. 이제 성찬과 똑같은 이식자 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반가운 얼굴로 회의실 문을 열고‘점심 같이 할까?’라고 해맑게 말하지는 못할 것 같았다.‘그만큼 증오하고 그만큼 경멸했는데 어떻게 그래’라는 마음이 더 컸다.
광훈은 파티션 위로 고개를 들어 사무실이 어느 정도 비었는지 한 번 확인하고는 가방 속에서 조심스레 어제 받은 인공육을 꺼냈다. 투명한 플라스틱 포장재 안에 언뜻 보면 닭가슴살 같이 생긴 벌건 고깃덩이. 점심시간마다 소회의실을 지나가면서 성찬의 입 안에 든 것을 보고 경멸했던 그 고깃덩이. 순간 성찬이 힐끗거리다가 우연히 내가 이 고깃덩이를 물어뜯는 것을 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헛웃음이 났다. 하지만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손과는 다르게 입은, 혀는 달랐다. 입 안에 레몬을 한 웅큼 머금고 있는 듯이 침이 주체하지 못하고 흘렀고 티슈로 흐르는 침을 닦으면서도 연신 입술을 혀로 적셔 댔다. 12시 반. 10분정도 뒤면 팀원들이 식사를 마치고 손에 커피 하나씩 들고 들어올 시간이었다.
광훈은 떨리는 손으로 플라스틱 포장재를 뜯었다. 피로 적셔져 물기가 있는 고기는 형광등 조명을 받고 번들거렸다. 서랍 속에서 젓가락을 찾아 꺼내든 광훈이 고기를 이리저리 찢었다. 소고기 스테이크를 레어로 주문했을 때처럼 빨간 피가 육즙처럼 흘러나왔다. 한 덩이를 떼어 낸 광훈은 피가 뚝뚝 흐르는 고기를 입속으로 넣었다. 맛있었다. 그렇게 먹고 싶어 했던 어제 먹은 제육볶음보다, 처음 야채가 싫어지고 배가 터질 때까지 먹었던 삼겹살보다 맛있었다. 인공육이 이런 맛이라면 인공육만 먹고라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나도 질기지 않았고 오히려 고기의 결을 느끼면서 씹으면 씹을수록 느껴지는 고기 자체의 질감 하나하나가 만족스러웠다. 첫입을 모두 음미한 광훈은 젓가락을 내려놨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젓가락으로 깨작깨작 먹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양손으로 고기를 들어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고기 육즙이 손가락을 지나 손등을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한 입 베어 물때마다 눈을 감고는 그 맛과 식감을 즐겼다. 식사는 5분도 안 걸려서 끝났다. 1인분이었지만 못내 아쉬웠던 광훈은 물티슈로 대충 손을 닦고서는 쿠팡에 인공육을 검색했다.
인공육은 생각보다 구매하기 쉬웠다. 처음에는 콩고기와 같은 대체육과 인공육을 구분하기 어려웠지만 ‘이식자 전용’이라는 체크란이 따로 있었다. 필터를 걸어 검색하자 수많은 인공육들의 목록이 나열됐다. 이식자가 되기 전까지는 전혀 알지 못하던 것들이다. 인공육을 만드는 수많은 기업들의 자극적인 문구들이 하나씩 눈에 박혔다.
‘우리가 뱀파이어는 아니잖아요. 한국인이라서 우리한테 오히려 딱 맞는 마늘 맛 인공육 출시!’
‘소고기 스테이크 맛을 그대로 구현한 최초의 인공육! 그때 그 맛 그대로 재현해드립니다.’
‘서울시 공식 인공육 유통사 OO, 혈액검사소와 식약처 검증이 완료된 안전한 인공육 드세요.’
“팀장님?”
광훈이 상품목록들을 내리며 입맛을 다시는 와중에 어느새 자리 옆으로 김 대리가 다가와 법인카드를 내밀었다.
“어? 어어. 점심 잘 먹었어?”
“네…”
대답하는 김 대리의 손이 잘게 떨렸다. 광훈은 김 대리가 모니터에 떠 있는 인공육들을 보고 떨고 있다고 생각했다. 광훈이 머쓱하게 웃으며 카드를 받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김 대리는 모니터를 보고 있지 않았다. 광훈이 내미는 손에 묻은 미처 닦지 못한 인공육의 핏물을 보며 떨고 있었다. 광훈의 손이 가까워질수록 떨림이 점차 강해졌다. 순간 무서움에 뒷걸음칠 칠 것 같았던 그는 눈을 꼭 감고 아직 충분히 다가오지 않은 광훈의 손에 억지로 카드를 끼워 넣고는 도망치듯 인사하고 뒤돌아섰다. 광훈은 생각보다 본인이 더 무뎌졌다고 생각했다. 도망치듯 돌아선 김 대리가 밉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쿠팡에서 온 인공육은 아파트 관리실에 맡겨두어 다행히 들키지 않고 집까지 가져왔다. 중요한 건 어떻게 먹느냐였다. 아무리 광훈이 먹고 싶다고 해도 가족 모두가 먹을 식사에 인공육을 넣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 광훈은 먹은 것을 티 나지 않게 토해내고 화장실에서 인공육을 먹는 연습을 했다. 회사와는 다르게 손을 깨끗이 씻고 나가는 것도 꼭 잊지 않았다. 광훈은 아직 가족들에게 버림받을 준비가 안 되어있었다.
-
손을 깨끗이 씻은 후 화장실을 나가려는 찰나, 핸드폰이 울렸다.
“당신 거 아니야?”
멀리서 세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세현이 광훈의 핸드폰을 화장실 앞까지 가져다주며 핸드폰을 살폈다.
“희지네? 얘가 웬일로 당신한테 전화를 먼저 해?”
세현에게 핸드폰을 건네받은 광훈이 전화를 받자 떨리는 희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아빠… 나… 나… 나 좀… 데리러 와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