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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침공 I

#75 독일은 제2차 대전에서 왜 패배했나? (8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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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패배한다. 바다를 건너온 영국 원정군도 같이 패배한다. 정말로 치욕스러운 패배였다.


영광스런 나폴레옹 시대이래 '육군'에서만은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의 프랑스! 그러나 20여 년 전 제1차 대전 때 자기네가 패배시켰던 독일한테, 이번엔 거꾸로 당해버린다. 그것은 선봉에선 독일 기갑부대의 번개 같은 타격과 돌파!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브리츠 크릭! 전격 작전이다.



기갑 사단은 프랑스가 먼저



사실, 탱크만으로 이뤄진 부대, 즉 기갑 사단의 창시자(?)는 프랑스다. 탱크의 어머니라는 영국도, 탱크를 집단으로 가장 화려하게 사용한 독일도 아니고, 가장 많은 대수를 생산해 낸 탱크 왕국 소련도 아닌 프랑스.


그래서 탱크 숫자도 전투력도 괜찮았다. 제2차 대전이 터지고 독일과 해 볼만 했다. 또 바다 건너에서 영국군까지 다량의 기갑부대를 가지고 상륙, 독일보다 수에 있어서 우위에 선 상태였다.



*프랑스의 샤르 BI 탱크, 거의 30톤에 달하는 중량과 75밀리 곡사포를 차체에, 포탑엔 37밀리 포를 장착, 상당히 흥미로운 탱크였다. 그러나 단점은 당시의 모든 프랑스 탱크처럼 1인용 포탑. 그 안의 차장 혼자서 쏘고, 보고, 지휘에 연락까지 해야 했다. 출처: blogspot.com



그런데 프랑스는 허를 찔린다. 아르덴느 숲을 돌파한 독일 기갑부대에 의해. 모든 전선이 붕괴. 벨기에 쪽 전선에 올라가 있던 프랑스 군 일부와 영국 원정군은 뒤 쪽이 가로막혀, 필사의 탈출을 감행한다.


덩케르크 철퇴다.


정말 프랑스와 영국은 참담한 패배를 맞는다. 빠른 시간 내 정신없는 패배이나, 어쨌든 현실은 패배였다. 프랑스 국토의 곳곳엔 독일군 보병의 군가가 울려 퍼지고, 파리의 개선문 앞 넓은 도로에도 그들의 행진 대열이 보인다. 이제 유럽 대륙에선 독일만이 존재하고, 독재자 히틀러의 시대가 온 것이다.



*뒤에는 에펠 탑. 앞은 히틀러. 출처: alamy.com



에펠 탑 앞을 막료들과 같이 걸어오는 히틀러. 그는 분명 서부 유럽의 정복자였다. 당시 대부분의 독일 국민은 그가 하나님 다음 존재였고, 그 군대가 무적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이때 독재자의 가슴엔 또 다른 거대한 야망이 꿈틀대고 있었다. 또 다른 정복 전쟁.


"다음엔 러시아 평원이다. 모스크바를 점령한다!"


프랑스 점령 2달 뒤, 그는 이 가상의 작전을 일찍 ‘발바로사’라 명한다.


발바로사는 라틴어로 ‘붉은 수염’


게르만의 위대한 신성로마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별명이기도 하다.



21호 총통 명령



총통으로부터 정식 명령이 나온다. 명령 21호. ‘발바로사의 경우’라는 연구서를 내놓으라는 것. 소련으로 쳐들어 갈 경우에 대비한 방대한 침공 연구서. 침공 날짜까지 확실하게 나온다. 그 날짜는 1941년 5월 말!


프랑스가 항복한 게 6월 말이니, 겨우 시간으로는 겨우 11달! 그는 38년에 체코를 겁박으로 집어먹고, 39년에는 폴란드로 침공, 그리고 40년에는 마지노 선 사이를 뚫고 프랑스를 굴복시키고, 영국 원정군을 자기네 나라로 꽁지 빠지게 도망하게 한 후, 다시 또 거대 전쟁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소련 정복, 그리고 그것은 꿈이 아닌 ‘발바로사 과정’이라는 연구를 거쳐 구체화시키는 게 아닌가?


베르막트(독일 육군) 장군들 중 많은 숫자는 어이가 없었다. 잘 믿지도 않았다.


“진짜 쳐들어가려고?”


“에이~ 설마.”


“소련이 얼마나 방대한 국토와 인구를 가졌는데?”


“더구나 거기로 쳐들어가서 이긴 나라, 이긴 군대가 어디 있어? 전부다 거지 꼴 돼 나왔잖아.”


물론 히틀러도 알고 있었다.



러시아는 넓고 크다. 그래서 어렵다



아시아까지 이어지는 유라시아 대륙의 드넓은 땅과, 추운 겨울. 그렇게 되면 보급선은 길어지고 작전 일수도 많아진다. 거기에다 겨울이 오면 그 유명한 러시아의 강력한 지휘관 동(冬)장군이 출동하지 않나?


그래서 당시로서는 1년 전 폴란드를 점령할 때나, 몇 달 전 프랑스로 진격해 들어갈 때와 많이 다르다. 장군들도 동의한다.


“서방 작전 때와는 너무도 달라집니다. 보급 거리가 늘어나고, 그래서 작전 일수도 몇 배나 많아지게 되고, 또 거기 겨울은?”


역사적 예도 든다.


“전쟁의 천재라는 스웨덴의 북방 왕 칼 구스타프 군대도 패배했고, 나폴레옹의 군대도 완전 궤멸되지 않았습니까? 살아 돌아온 건 아마 동상 환자뿐일 걸요. 들어가면 다 그렇게 된다 말씀입니다.”



*눈 속의 나폴레옹. 출처: iacpublishinglabs.com



히틀러의 말.


“너무 먼데다, 작전 일수가 길어진다?”


“그렇지 않습니까?”


“귀관들은 모르는구먼, 지금이 무슨 시대인가? 말 타고 전쟁하는 시대야? 로마 군단처럼 두 발로 걸어가는 시대냐고?”


다음 말은 히틀러가 진짜 했다고 한다(내연기관 부분 빼고).


“지금은 내연기관의 시대야! 트럭으로! 반 장궤 장갑차로! 거기에 탱크를 몰고 들어 가!”


나폴레옹이 한 달 만에 전진할 거리를 2~3일에 간다는 이야기. 아니 하루에도 갈 수 있다는 일갈.


“그리고 루프트바페(독일 공군)의 융커스 수송기들은 한 시간에 몇 백 킬로를 날아가 보급품을 내려놔! 알겠어?”



*제2차 대전, 독일의 대표적 3발 엔진 수송기 융커스 Ju-52. 출처: welt.de



소련의 동장군에 대한 걱정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히틀러와 그 주변 막료들 생각은 이랬다.


“소련의 겨울이 무섭다? 무섭겠지. 그런데 누가 겨울까지 전쟁을 해? 6개월이면 끝나는데.”



공격 개시일은 1941년 5월!



준비가 착착 진행된다. 5월에 작전 시작. 그때가 이제 풀과 나뭇잎이 파래지는 봄날이니까. 그래서 여름과 가을 동안 한껏 러시아 평원을 달리며 소련군을 두드리고, 겨울 오기 전 모스크바를 점령할 수 있으니까. 그럼 크레믈린 궁의 스탈린과 밥맛 없는 볼셰비키들은 어떻게 되나? 저 먼 동쪽 우랄 산맥 건너 피난처에서, 일생에 있어 가장 추운 겨울을 맞게 된다.


그런데, 세상이라는 게... 3월에 문제가 일어난다. 발바로사 작전 발동을 2달 앞두고.


그곳은 발칸 반도의 유고슬라비아.


루마니아와 불가리아는 독일의 군문(軍門)에 들어와 히틀러의 같은 편이 된다, 나치 독일이 대세였으니. 항상 목이 뻣뻣했던 유고슬라비아도 삼국 동맹이라는데 사인, 히틀러 쪽에 서는 것으로 돼 있었는데, 그만 이 나라에서 군과 민중 봉기가 발생. 친독 정권을 붕괴시키는 게 아닌가?


“어딜 감히 이 슬라브 놈들이!”


히틀러는 격노했다. 유고 슬라비아라는 건 남쪽의 슬라브 민족이라는 의미.


“유고 놈들한테 본 때를 보여 줘라!”


침공! 유고슬라비아.


소련 공격전에 갑자기 생긴 일, 유고부터 박살내기 위해 침략전쟁이 시작된다. 수도 베오그라드 상공엔 독일 폭격기들이 쇄도하고.


당시 2차 대전 중 유일하게 메셔슈밋트 Me 109 전투기가, 다른 메셔슈밋트 Me 109와 공중전을 벌이는 벌인 게 이 때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 유고가 전쟁 전 독일로부터 메셔슈밋트를 수입해 전투 비행대를 갖고 있었던 게 이유. 그들이 요격에 나서니까.



*상당한 모순, 유고 공군의 메셔슈밋트들. 출처: bing.com



*유고, 메셔슈미트 전투기의 프라모델. 출처: blogspot.com



그러나 후속 부품이 없는 상태에서 메셔슈밋트가 침략자들한테 큰 타격이 되지 못한 것처럼, 유고 전토는 독일군의 공격에 견디지 못하고 점령당한다. 역시 독일군의 전투력은 그야말로 최정점!


그런데 예정돼 있던 발바로사 작전은?


“4주 연기한다!”


히틀러가 장군들 앞에서 정식으로 한 말이다. 5월 말에 예정돼 있었는데, 6월 말로 미룬 것.


헌데 이것은 엄청난 '결정 1', 나중 어마어마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히틀러와 제3제국, 멸망의 주요 이유 중 하나가 되니까.



제3제국은 거대한 영토를 가질 뻔했다



이때 상황에 대한 일본 전쟁사 연구가의 글.


'4주 연기! 정말 파국적 결정이 된다. 독일 민족이 소련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그들 역사에 있어서 최대의 영토를 가질 기회가 날아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물론 5월에 작전을 개시한다 해도 히틀러의 파국은 연장이 될 뿐이지, 소련 정권을 멸망시키고 거기 눌러앉을 수 없다는게 자명하다. 그래서 과장이 들어 간 글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당시 독일 육군의 폰 브라우비치 총사령관과 할더 참모총장은 이렇게 회고한다.


"그 4주 라는 건 소련을 기습해, 모스크바 정권을 멸망 시키기에 절대 불가결의 시간이었다. 그런데 6월로 넘어가는 바람에, 우리는 모스크바를 눈 앞에 두고, 그 도시의 성당 건물이 보이는 곳에서 올 스톱! 눈과 얼음 속에 덜덜 떨어야 했다."


"탱크와 트럭은 얼어붙고, 장병들은 얇은 여름 복장으로 밤이면 영하 수십도로 내려가는 혹한에서 동상자가 속출한다. 한달 만 일찍 모스크바 근교에 도착했다면... 하늘은 높고 붉은 단풍이 찬연한 가을날 모스크바를 점령하고 소련 방어부대를 쓸어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이때는 그걸 몰랐다. 또 유독 겨울이 일찍 찾아오는게 그해였단 것도 몰랐다.



300만 군대! 소련으로 쳐들어가라!



히틀러는 6월, 발바로사 명령을 발동한다. 유고 침공으로 한 달 늦었으나, 역사상 가장 거대한 병력의 동원이었다.


병력 300만. 탱크 3500대. 60만 대의 트럭 등의 차량. 그리고 75만 마리의 말.


더구나 이들 병사 개개인과 탱크 부대 지휘관, 그리고 그 안의 탱크 병들, 모두 사기가 높고 전투 스킬에 있어서도 뛰어난, 당시로서 세계 톱 클라스! 그것은 서유럽 전선에서 발칸 작전에서도 이미 증명되고도 남음이 있었잖은가?


그 병력이 먼 북쪽 발틱 해로부터 남쪽 흑해까지 1900킬로에 달하는 국경선을 돌파 소련으로 쳐들어 갔다.



*올 프론트 어택! 완전 전 각도, 전 방위 침공이다. 출처: military-history.org



‘파죽지세’라는 건 이런 것이다



히틀러는 소련의 이른 패망을 확신했다.


“러시아는 덩치만 컸지, 엉성한 나라야. 그들 건물 입구에서 문짝을 한 번 발로 차도, 우루루~ 무너진다고!”


히틀러의 호언은 들어맞는다.


공격은 대성공. 가는 곳마다 소련군은 격파되고 가는 곳마다 대량의 포로를 획득하며 진격을 계속한다. 그야말로 파죽의 진격이다.



*방금 격파한 초기 형 T-34를 뒤에 두고 전진하는 3호 전차와 스탭 카. 3호 전차의 팬더에 G가 보이는 걸로 바 ‘구데리안’ 기갑부대 소속이다. 그런데... 얼마 뒤 이들은 알게 된다. 약간만 숙련된 소련 전차병이 탄다면, 그들의 3호 전차는 게임이 안 되는 게 T-34라는 걸. 출처: pinimg.com



하늘에서의 루프트바페(독일 공군)도 매우 효과적으로 지원한다.


기습 첫날부터, 스트롱 포인트나 특히 소련 비행장을 사정없이 습격, 전투기들이 뜨기도 전에 활주로를 일대 고철 뭉치의 전시장으로 만들어버린다. 전선 상공의 제공권은 완전 독일 손아귀에!



*스투카! 하늘에서의 급강하! 출처: militarystorynow.com



러시아 평원에는 소련 포로들의 줄이 끝을 모르게 이어지고, 먼지를 잔뜩 일으키며 진격하는 독일 기갑부대 원들은 자기네들을 ‘무적의 화신’이라고 생각한다.


히틀러는 속속 전방에서 들어오는 보고를 받으며, 더없이 흡족해 할 수밖에.


“지금 쯤 모스크바 크레믈린에선 짐 싸고 난리일 거야.”


정말이지 가는 곳마다 승리를 꿰차며, 일로 일로 동쪽으로 전진. 드디어 모스크바 근처까지 쾌! 진격!!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가을인데도 갑자기 날씨가 변한 것이다.


더구나 그해 겨울은 꽤 일찍 찾아왔다. 자고 나면 더 쌀쌀해지고 밤이면 더 끔찍한 추위가 찾아왔다. 그런데 독일 군 장병들 옷은 거의 여름 패션?


“6개월이면 끝난다니까.”


가을이 끝날 때쯤 소련은 망할 줄 알았기에, 동계 장비에 대한 준비를 게을리 한 까닭... 그래서 혹한으로 전진이 주춤한 사이, 소련의 일대 반격이 시작된다. 시베리아부터로 지원 병력도 도착한다. 그리고 나중 벌어진 쿠르스크 전투보다 더 크다는 모스크바 인근 대 전투가 벌어진다. 


인명에 대한 존중감이 거의 없을 정도로 병력을 무지막지하게 투입하는 소련과 그 지휘관 주코프(명장이지만 부하들 희생엔 둔감했다)!


결국 주코프는 모스크바를 구하고 독일군은 처음으로 패배한다. 모스크바 점령 불발! 물론 여기엔 소련군의 인명피해가 막대했다 해도 연전연승의 독일군으로선 처음으로 맛 본 패배였다.



*모스크바 전선 때의 리얼 사진. 부상당한 독일 병사가 죽어가는 것 같다. 동료 2명은 먼 전방을 주시하고. 출처: wikimedia.org



그러나 그들의 영광과 좌절, 승리와 패배는 이제 겨우 시작이었다. 투입된 독일 군이 300만이나, 그보다 많은 370만에서 4백만의 소련인이 죽어야 끝나는 전쟁이었기 때문(보충병이 계속 들어왔기에..).


그때까지 소련군은 천 만의 전사자를 내야 했고...


히틀러는 땅에다 역시 자기의 무덤도 판다. 







[#72 독일은 제2차 대전에서 왜 패배했나? (8부) :: 소련 침공 - I 끝, 9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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