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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U-보트의 유령

잠수함 왕국 북한의 실체 - 1부

북한이 제정신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쉽게 찾을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잠수함 '세력'이다. 해군 병력이 6만 명에다, 잠수함 숫자만 70척에 이르니, 이게 어디 제정신을 갖고 하는 짓일까?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제대로 없는 나라가, 어떻게 그 많은 척수를 운영할까?


참고로 경제 대국인 이웃 일본은, 잠수함이 보통 16척 정도다. 인구가 1억 수천만에다, 경제력으로 쳐도 북한의 수 백배이고, 또 사면팔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나라라, 다른 나라보다 잠수함 쪽에 웨이트를 많이 두는데도, 달랑 16척! 


그런데 북한은 70척이다.


물론 이게 다 정규 잠수함이 아닌, 중 50척 정도가, 미지트 서브마린(midget submarine, 잠수정)이거나, 이를 조금 더 키운 코스트 섭마린(coast submarine)이다. 즉 해안가에서 가까운 바다로만 다니며 작전 활동을 하는 작은 녀석이란 뜻인데.. 어쨌든 놀랄만한 척수에 놀랄만한 규모다.


50척은 그렇다 치고, 나머지 20척은 뭘까?


70에서 50척을 뺀 숫자 20. 한참 많을 땐 26척까지 되는데, 이번 글이 바로 이 26척에 대한 이야기다. 북한의 정규 잠수함 숫자. 그것들이 세상에서 말하는 진짜 제대로 된 잠수함이니까.



Ocean Going Attack(대양 진출 공격형) 잠수함



북한의 정규 잠수함. 위스키 급과 로메오 급. 동해나 서해에서 작전할 수 있는 단거리 용 잠수정이 아니라, 뉴스 말미 날씨예보 때 흔히 등장하는 ‘동해 먼 바다’나, 남해를 넘어 중국해나 인근의 태평양까지 진출, 통상 파괴전을 펼치고 대한민국의 해상 교통로를 압박할 수 있는, 오픈 씨(open sea) 형 잠수함이다.



로메오 급 대양 진출 잠수함, 북한도 당연히 이 급을 가지고 있다. 출처: hazegray.org


그럼 이 중대형 잠수함들은 어떤 성능을 가졌을까? 전쟁이 한번 더 일어나면 대한민국에게 어떤 타격을 가할 수 있고, 또 우리는 물속의 잠수함을 찾아내, 잡아 죽인다는 대잠 용어 ‘헌터 킬러(Hunter Killer) 작전에서 충분히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그리고 또 잡아야 할 척수, 즉 북한 해군의 위스키는 몇 척이고 로메오는 몇 척인가?


일단, 척수는 어마어마하다. 이렇게 많은 척수를 가진 나라는 지금 전 세계에 거의 없다. 핵 잠만을 건조하는 미국이나 핵 잠과 디젤 잠을 병용하는 러시아가 밀리는 건 그렇다 쳐도, 위에서 얘기했듯이 꾸준히 디젤 잠 건조에 애를 쓰는 일본보다도 많다. 오직 하나 예외가 있다면, 질보다 양으로 무기를 장비했던 중국 정도나 될까?



일본 잠수함 ‘우수시오’ 급, 우리가 반도인 데 비해 일본은 자기네를 열도라 한다. 섬들이 줄 지어 있는 나라. 그래서 해군이 국방의 추축이고, 잠수함 보유에 신경을 많이 쓴다. 출처: seaforces.org



그러니까 북한은 제정신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남한 인구의 40퍼센트 정도밖에 안 되는 나라가(지금도 북한은 애기 안 낳는다고 난리 치는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대양 진출 중대형 잠수함이 20여 척, 아니 한창 때는 26척이 되기도 했다. 정말 또라이들이 할 만한 짓을 벌인 거다.


허나, 우리는 제정신을 가지고, 북한의 이 거대한 해저 함대에 대해 한 번 제대로 알아나 보자.



타임슬립을 하자.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타임 슬립이 필요하다. 지금으로부터 70여 년 전의 옛날로. 왜냐하면 꽁치 급에서도 언급했듯이, 졸도할 정도의 오래된 옛날로 돌아가야 녀석들의 족보가 나오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참이던 1943년 바로 그 해.



1943년에 일어 난 일



알다시피 인류사에 가장 치열했던 전쟁의 해를 꼽으라면, 그건 1943년이다. 수 십만 명이 밀고 밀리며 싸우는 정도가 아니라, 수 백만 명의 병사가 4천5백 대 이상의 전차를 동원해, 하나의 전역(戰域)에서 싸운 일도 있었으니까. 쿠르스크 전투다. 


바로 몇 달 전에는 하루코프에서 수십 개의 소련 사단들이 와해됐다. 또 그 전의 연초에는 정예의 독일군 및 추축군 30만 명이 소련의 포위망에 걸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스탈린그라드 전투다.


그런데 바로 이 처절했던 1943년 지상전 와중에, 뒤 쪽으로 한참 밀려있던 소련 해군은 명령 하나를 내린다. 명령을 받는 쪽은 잠수함 설계자들. 명령서 이름은 ‘해군 참모본부 오비엑트 608’이었다. 미, 영 서적에서는 프로젝트라고 하는데, 러시아는 보통 오비엑트라고 쓴다. ‘옵젝트(Object)의 러시아 말.


“오비엑트 608. 신형 잠수함을 설계 건조하라!”


물론 당시의 소련 해군도, 국산 잠수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충분히 자체 설계 실력도 있고 건조 실적도 꽤 있었다. 문제는 다른 나라보다 우월한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는 것. 이것은 독일을 상대로, 바다에서의 통상 파괴 전을 전개할 기회가 없었기도 하거니와, 주 전투 해역인 발트해가, 육지에 둘러싸인 좁은 바다였기 때문이다. 어찌 됐던 설계진은 기존 잠수함 S급보다 더 뛰어난 걸 만들자는 일념 하에, 설계 작업에 들어간다.


더군다나 당시는 소련 전역에서는 처절하기 이를 데 없는 전투가 계속 벌어지던 때, 이들은 성능 좋은 잠수함을 만들어, 마더 러시아(어머니의 조국)를 구하겠다며, 밤을 새워 가며 혼신의 힘을 다 한다. 그런데 설계가 1년 정도 진행됐을까?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완전 돌발 상황. 

레닌그라드 바로 근처 핀란드 만에서, 뭔가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저게 뭐지? 저 바다 속에 있는 거!”


독일의 U-보트였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나 어쨌든 나치의 잠수함이 핀란드 만에 누워 있었던 것이다.


이때가 1944년.



침몰한 나치 잠수함 U-250 호



다행히 바다는 깊지 않아, 서둘러 인양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나온 것들로 인해, 소련은 입이 귀에 걸린다.

엄청난 게,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도저히 입수할 수 없을 것 같던 자운쾨니히(Zaunko"nig) 어뢰 열 발과, 독일 최고 비밀이라 할 수 있는 애니그마 암호 해독 기계,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에서, 연합군이 그토록 해독하기를 갈망하던 게 바로 애니그마 아니었던가?


그 외에 무수한 작전 서류들이 있었으나, 진짜 최고의 노획물은 잠수함 그 자체였다. 대서양 등지에서 연합군 함선들을 무수히 격침시키던 바로 그 울프 팩(늑대 떼거리)중 하나, 타입 VIIC(7C형)!



독일 U-보트의 가장 스탠다드 형인 7C. 출처: hsgalleries.com



설계팀에게 새로운 명령이 떨어진다.


“오비엑트 608은 취소한다. 따라서 기존의 설계 작업은 전면 중단하라!”


인양된 독일 잠수함을 테스트해보니, 

소련의 기존 잠수함은 물론이고,

앞으로 만들어질 오비엑트 608보다 우수했다는 판단 때문이다.


설계팀에게 재차 명령이 하달된다.


"U-250 호를 그대로 베껴라!"


실제 잠수함을 분해해, 종이 위의 설계도로 재탄생시키는 일이 진행된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실제 잠수함을 설계도라는 종이 위에 다시 구현을 해야 하니까.


그런데 이게 또 끝이 아니었다.

또 한 번 뒤집히는 일이 생긴다.

애써 만든 설계도가 아무 짝에도 쓸모없게 되는 일.

지금 하던 일을 중단하라는 명령이 내려왔기 때문이다.


히틀러의 자살과 독일의 항복!


발바로사 작전으로 시작된 피를 피로 씻는 5년여의 전쟁 끝에, 결국 소련군은 나치의 수도 베를린까지 진격, 히틀러를 자살케 하고, 그 거미발 같은 나치 깃발을 내리게 한 것이다. 그리고 이 것은 7C 형보다 훨씬 더 신형인, 독일 잠수함의 최종 결정판을 손에 넣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당시 어떤 잠수함보다, 고성능인 선체를 입수했다는 증거! 그렇다면 전체 설계도도 몽땅 다 압수했을게 뻔하다. 당시 소련군은 발트 해의 여러 조선소는 물론이고, 무기 연구소나 공장 등에 닥치는 대로 들어가, 조금이라도 중요하다고 생각되면, 전량 압수를 해버렸으니까.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고, 압수한 잠수함은 한 차원 다른 21형이었다.


최고, 최신형의 독일 잠수함. 21형.


보통은 로마 숫자를 써 'Type XXI'이라 하는 잠수함(인터넷에 U-21을 치면 독일의 21세 이하 축구 대표 팀만 잔뜩 나온다;;). 어찌 됐던 이 타입. 


잠수함 전문가 데이빗 밀러(David Miller)는 그의 책 SUBMARINES OF THE WORLD. ‘세계의 잠수함들’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이 타입이 나오기 전까지 여타 잠수함들은 잠수 가능함함(Submersible)이었지, 진정한 의미의 잠수함이 아니었다. 물속에 있다가 틈만 나면 해상으로 올라와야 했으니까. 배터리의 충전이 주 이유인데, 이때가 또 잠수함의 최대 위기도 했다. 호시탐탐 이를 노리던 연합군 헌터 킬러에게 발견되면, 그야말로 사냥꾼 앞 앉은뱅이 오리 신세가 되니까. 그런데 이 타입은 달랐다. 물속에 아주 오랫동안 머물 수 있었다. 그래서 21형부터 진짜 잠수함이라 부를 수 있게 된 것이고 그만큼 독일인들의 설계는 눈이 부셨다.”



전쟁 후 미국에서 만든 21형 설계도. 오른쪽으로 단면들 여러 개를 보면 매우 놀라게 된다. 한참 뒤에 나오는 핵 잠 등에서 보이는 티어 드럽형(눈물방울 모양)으로 거의 원형에 가깝기 때문이다. 출처: wikipedia.org



그리고 압수된 이 21형은 전후, 여러 나라에서, 특히 프랑스와 소련에서는 현역 잠수함으로 사용이 되고(특히 소련은 압수한 4척을 현역으로 사용했다.), 미국과 영국, 등에서는 연구용 잠수함 등으로 사용된다. 그리고 신생 독일은 나중 침몰한 21형 중 1척을 건져, 해군과 민간인 엔지니어들이 운용하고 다니며 연구를 하게 했는데, 이게 우리나라 모형점에서도 팔았던 프라모델 빌헬름 바우어다(필자도 앞 베란다 어딘가에 가지고 있다).



레벨의 144분지 1 모형, 상당히 저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출처: scaleplasticandrail.com



그리고 지금은 퇴역해 박물관 용으로 전시 중이다.



독일 브룸스하벤 항구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21형, 빌헬름 바우어, 제2차 대전 때는 U-2540호였다. 출처: wikimedia.org



물론 이 수수한 잠수함을 사용하다가 퇴역시키기만 한건 아니었다. 이후에 만들어지는 각국의 신형 잠수함 설계에 베이스가 된다. 소련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자체 설계나 건조 실력이 부족하기에, 그들의 이 21형의 베끼기는 거의 절대적이었다.



발트해의 유령.



독일이 패망한 지 6년 후인 1951년. 지구 반대쪽 극동 아시아에서는 전쟁이 한창이던 때, 당연히 우리에겐 천추의 한으로 남을 "한국전쟁"이다. 이때 발트해 소련 쪽 도크에, 21형을 빼다 박은 세련된 형태의 잠수함이 나타난다. 나토 명칭으로 위스키 급이라 명명된 디젤 잠수함이었다.



소련 해군의 위스키 급 디젤 잠. 출처: maritimesales.com



테스트를 해보니, 역시 베리 굿!

해군 당사자들을 몹시 만족케 했다.


“대량 생산에 들어간다.”


소련의 발틱해 연안 4군데의 조선소가 바빠지기 시작했다. 도크 여기저기 보이기 시작하는 잠수함의 선체들. 그러나 발틱해 쪽 조선소뿐 만이 아니었다. 여기에서 만들어진 부품들은 당시 중국으로 옮겨져, 중국의 조선소에서 조립이 된다. 


모두 21척.


그래서 이 21척까지 합쳐 최종 함이 발트해 도크를 나올 때의 총수는 236척! 전쟁이 아닌 평화시 생산된 수로는 대단히 많은 숫자임에 틀림이 없다. 동시에 전후 생산된 디젤 잠 역사로 봤을 때도 1위에 꼽히는 척수. 그리고 이 많은 위스키 급들은 새로이 시작된 차가운 전쟁. 냉전 하의 분위기 속에, 속속 바다로 나간다.


바다 속에서 독일 잠수함 21형의 유령들이 돌아다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유령들은 능력이 있었다. 함수에서는 어뢰관이 4개였고, 함미인 뒤쪽으로도 2발을 발사할 수 있었으니까(현대에 와서 뒤로 쏘는 게 없어졌지, 1970년까지의 잠수함에는 어뢰관이 뒤에 달린 경우가 흔하게 있었다).


뒤이어 이집트, 불가리아, 알바니아 등 소련과 가까운 나라들이 넘겨받게 되고, 군사력 확충에 매진하던 북한도 당연히 이 대열에 빠지지 않는다.



북한도 도입한다. 나치 21형의 유령을...



1960년에 2척,

1962년에 2척씩 도입했으니 합이 4척.


당시는 대한민국이 북한한테 여러 부분에서 뒤떨어지던 때였다. 북한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룩하고 있는데(작가 황석영은 북한의 이 시기에 대해, 놀랄만한 경제 발전의 시대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에 반해, 대한민국은 몹시도 가난하고 몹시도 고된 시기.


이제 겨우, 잘 먹고 잘 살자는 목표를 갖고, 엄청난 부작용을 야기할 그 압축성장을 향해 막 걸음마를 옮기려던 시기였다. 그래서 잠수함이라는 함종에 대해 꿈도 꾸지 못 했었는데, 평양은 이미 먼 바다로 나가 장기간 작전할 수 있는 중/대형 잠수함을 4척이나 갖고, 동해 바다 밑을 돌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바다 위로 부상한 위스키 급, 어느 나라 것인지는 모르겠다. 출처: adrex.com



위스키의 후속함 로메오 급.



당연히 후속함이 만들어진다.


위스키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성능. 소나를 더 좋은 걸로 바꾼 것 외에, 전방 어뢰관도 6개로 늘어나고(위스키는 4개다), 총 14발의 어뢰와(역시 위스키보다 2발 많다) 함께, 기뢰를 28개까지 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외관은 역시 제2차 대전 말기에 나왔던 독일의 21형과 별반 다르지 않음은 숨길 수 없었다.


“리틀 디프런트(little different).”


서방 측에선 이렇게 표현을 하곤 했는데, 소련은 이걸 매우 듣기 싫어했다고 한다. 자기네도 나름대로 열심히 개선을 했는데, 계속 베꼈다는 소리를 하니까.



눈썰미가 없어도 역시 위 쪽에 있는 나치의 U-보트 21형과 비교해 보면 ‘리틀 디프런트’라는 말이 저절도 나오지 않을까? 출처: globalsecurity.org



문제는 베끼건 말건 성능이 괜찮았다는 거다. 서방측 전문가들도, 이 로메오 급에 대해, ‘꽤 능력 있는’ 잠수함이라는 평을 아끼지 않았다. 물론 톱 클래스는 아니라 해도, 당시의 기준으로 볼 때는 충분히 써먹을 수 있는 잠수함. 그래서 이 급이 대량으로 건조돼, 바다로 나오면, 그것은 미국과 영국 등 나토 회원국이 갖고 있는 제해권에 심각한 위협이 되리라는 것이 분명했다.


물론 나토의 우수한 헌터 킬러(대잠수함 작전) 능력으로 결국 제압을 하긴 하겠으나, 제2차 대전 시 독일과의 대서양 전투에서 신물 나게 경험한 게 뭔가? 


이 쪽도 피해가 크다는 것.


역시나 나토 쪽에서 우려하는 대로, 일이 진행된다. 로미오에 대해 매우 만족한 소련은, 대규모 건조 계획을 세운다.


무려 560척! 그야말로 공전절후의 숫자였다.


위스키 급을 2배나 능가해, 지구 상 어느 바다에서나 동시에 여기저기 출몰할 정도의 숫자! 대서양에 먹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먹구름은 폭풍의 전조였다.



로미오 급의 모형, 선체 앞부분의 볼록 튀어나온 건, 소련 잠수함 특유의 라이노 혼(Rhino Horn, 코뿔소 뿔)이라 하는데, 그 안에 해저 통신 시스템이나 소나 등이 들어 있다. 이 부분만 빼고는 거의 21형을 닮았다. 출처: flankers-site.co.uk



"아니 바다가 서방측 너희들 만의 것이냐? 우리 슬라브 족도 얼마든 바다로 진출할 수 있다."


이렇게 소련 해군 지휘관들이 미소를 짓고 있을 때,

맙소사! 그들 귀에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일체의 로메오 급 건조를 중단하라!"



마른하늘에 날벼락, 소련 해군을 강타하다.



이게 뭔 일인가?

560척 죄다?

아니 왜?

후르시초프 때문이었다.


스탈린의 갑작스러운 죽음 뒤에 정권을 잡은 후르시초프. 그는 스탈린의 여러 군사 정책에 대해 못 마땅한 것이 많았다. 시대가 많이 달라졌다고도 생각했고... 그래서 당시 설계도상이나, 만들어지고 있었던 신형 제트기들에 대해 중지를 명령하고(이제부터는 미사일의 시대라고 후르시초프는 생각했다), 로메오 급에게도 철퇴를 내린 것이다.


“원자력으로 움직이는 핵 잠이 있는데, 누가 디젤 잠을 타고 나가나? 따라서 조선소의 디젤 잠 건조 시설들을 즉각 폐쇄하라!”


소련 해군 수뇌부는 펄쩍 뛴다. 핵 잠이 좋은 걸 모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여러 면에서 디젤 잠 보다 월등하다. 그러나 디젤은 디젤 나름대로 장점이 많다. 핵 잠보다 사이즈가 작기에, 해저 운동성이 좋고, 피탐 확률도 떨어진다. 또 매우 경제적이다. 건조비가 싸고, 건조 기간도 짧다. 그래서 대량으로 장비할 수 있으며 원자로가 들어 있지 않아, 안전성도 높다. 그래서 반대를 하는데, 결국 이 결정은 바뀌지 않는다.


당연히 모든 조선소에서 로메오 급의 건조가 중단된다. 을씨년스러운 도크와 일손을 놓고 멍하니 있는 조선소 기술자들... 참담하긴 해군 수뇌부도 마찬가지였다. 560척이 사라졌으니 그렇지 않겠는가? 그래서 필자의 어떤 책엔 이렇게까지 쓰여 있기도 하다.


Russian Naval Staff fought this decision(소련 해군은 이 결정에 격렬히 대항했다). "격렬히 대항했다?" 붉은 공산주의 원조 소련에서 일어난 일로는 이해가 안 가는 대목이기도 하며, 그래서 몹시 흥미가 가는 대목이기도 하다. 소련이라는 체재는 군이 철저하게 당 아래 들어 가, 당에 의해 통제되는 당 우위의 체재다. 정치 장교가 야전 장교보다 위에 있으며, 한꺼번에 수 천 명의 장성들을 사형시키거나, 시베리아로 유형 보낸, 그 유명한 ‘스탈린의 소련군 대 숙청’도 당 우위의 소련 체재만이 할 수 있었던 일. 그런데 타군에 비해 왜소했던 해군이 반대해? 그것도 매우 격렬하게.


그건 이렇게 풀어야 될 것 같다. 당시가 스탈린 사후(死後) 후루시초프 시대라, 크렘린 분위기가 많이 말랑말랑해진 점도 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나치의 독일과 소련의 일인자가 군 지휘관을 대하는 태도다.


소련 쪽 사고방식.

‘다른 건 몰라도 작전에 대해선 관여 안 한다.’


히틀러는 전혀 달랐다.

알다시피 그는 자기와 생각이 다르면 지휘관들을 무조건 해임시켰다. 기갑전투의 마스터인 구데리안도, 만슈타인 매직이라는 요술을 부려, 스탈린그라드 패배 이후의 절망적 상황을 뒤집은 제2차 대전 최고의 지략가 만슈타인도, 전쟁 후반부터는 자기 집에서 애나 보고 있었다.


왜? 히틀러 자기가 더 똑똑하고, 작전 능력이 더 뛰어나다 생각하니까.


“나는 천재잖아! 세계를 정복한 천재!”

(세계를 정복했다는 얘기는 실제로도 히틀러가 자주 했다.)


반면 초반의 대 패배 이후, 지옥의 문고리를 잡았다가 살아 난 스탈린은, 이후 지휘관들 작전에 되도록 간섭하지 않는 태도를 취했다. 작전은 그들이 더 잘 안다는 걸 알았으니까(물론 이때는 키예프 포위전 등, 이미 수 백만의 소련군이 희생된 뒤였다. 그래도 너무 늦지 않게 정신을 차린 편이니, 이거 하나가 스탈린의 유일한 장점이 되지 않을까?). 이후에도 그는 작전 불간섭 방침을 그런대로 견지, 특히 쿠르스크에서 그는 공세로 나가길 주장했으나, 주코프가 ‘죽으나 사나 수비로 나갑시다. 그래야 이깁니다’라는 의견에 동의, 인류 역사상 최대의 전투에서, 사실상 승리를 거두게 된다.



소련 지휘관 주코프는 달에서도 보인다고 할 만큼, 이중 삼중의 대 전차 방어진을 구축해, 정예 독일 기갑부대의 진격에 막대한 출혈을 강요했다. 그의 수비 위주 작전을 스탈린이 수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히틀러는 공격 개시일을 계속 미뤄, 만슈타인한테 분통을 터뜨리게 했다. 결과는 독일 군의 철수. 출처: military-art.com



그렇다면 디젤 잠수함 운용도, 소련에선 작전이라는 카테고리에 해당하는 것. 따라서 소련 해군 지휘관들은 일당독재에다 종속적 상하 관계의 저들 체재에서도, ‘이건 작전에 관한 거야’라는 본인의 카테고리란 생각으로, 격렬한 반대를 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필자 스스로 한 번 해본다. 그리고 그 일은(소련 해군의 디젤 잠 주장) 나중 무수히 많은 핵 잠이 건조되는 과정 속에서, 폭스 트로트나 탱고 급 같은 후기 디젤 잠 건조로 연결되고, 또 매우 조용하면서 고성능의 디젤 잠 ‘킬로(killo) 급’을 만들 기술 기반이 돼, 전 세계에다 다수 수출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겸사겸사 해 본다(수호이 SU-27 전투기 시리즈와 함께. 킬로도 러시아의 손꼽히는 효자 수출상품이다), 아니 오죽하면 김영삼 정권 시절, 우리 해군에도 킬로 2척이 들어올 뻔하지 않았던가?


얘기가 약간 달라지면서 길어졌는데, 다시 디젤 잠 로메오 쪽으로 돌리면, 어찌 됐던 해군의 반대 속에서도 후루시초프는 완강했고, 핵잠 위주의 방침을 거두지 않는다.


560척에 대한 학살은 이미 결정된 사항. 조선소 내 건조시설 철거가 시작된다. 핵 잠 건조에 대해,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일의 그 눈부신 설계 기술의 승리라는 U-21의 혈통은 끊기게 되고, 로메오는 잃어버린 ‘잠수함 계의 망작(忘作)’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그런데 이때 반전이 일어난다. 구원 투수가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구 반대편의 한반도에도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리의 주적(主敵)이나 마찬가지인 북한이, 전 세계에서 2~3 위를 다투는 잠수함 왕국으로 등장하는 터닝 포인트가 이 일과 연결되어 있으니까.



(2부로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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