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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rin Jun 21. 2020

내 남편이 될 사람을 소개하던 날

엄마의 요리



삼 남매 중 둘째인 나는 대부분의 둘째가 그렇듯 스스로 해결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래서 였을까? 매사에 혼자 해결하는 딸이 결혼도 알아서 잘하리라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런데 서른이 훌쩍 넘어서도 남편감은커녕 남자 친구 조차 데려오지 않으니, 말은 안 하셨지만 엄마는 속이 타셨었나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다른 여느 엄마들처럼 결혼해라! 시집가라! 는 잔소리를 하진 않으셨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게도 좋은 남자 친구가 생겼고, 결혼까지 약속하게 됐다. 그리고 그 사람을 부모님께 처음 인사를 시키는 날이었다. 동생이 언니인 나보다 먼저 시집을 간 뒤였기 때문에 엄마는 이미 사위를 보셨는데도 불구하고 어찌나 즐거워하시던지, 나는 엄마가 그렇게 즐겁게 음식을 만드는 모습을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새벽같이 일어나 장을 보고 온갖 나물 요리와 고기반찬, 손이 많이 가는 전과, 국을 만들기 시작하셨다.

평상시에 허리와 무릎이 좋지 않으신데도 큰 사윗감이 될 사람이 온다니 콧노래까지 부르며 음식을 하셨다.

이제 그만 만들라고 얘기해도 엄마는 "괜찮아. 마음이 즐거워서 그런지 하나도 안 힘들어" 하시며 어느새 하나, 둘씩 반찬이 늘어났다.


나 : "이러다 상다리 휘어지겠다."

엄마 : "귀한 손님이 오는데 상다리 정도 휘어져도 되지"

나 : "내가 결혼할 사람 데려오니 이렇게 좋아?"

엄마 : "그래! 부모 마음은 다 그런 거야. 너 시집가면 엄마는 숙제하나 해결했네! "


엄마는 8남매 중 일곱째, 딸 부잣집 딸들 중에서 막둥이로 태어나 그 당시 비교적 늦은 나이에 결혼하셨고 외할아버지께서는 시집가지 않은 막내딸을 보며 미안하다는 말만 남기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때 엄마는 왜 아버지가 미안해하셨는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본인이 자식을 낳고 기르고 결혼할 때가 되어보니 그 심정을 알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몇 년이 더 지난 뒤에 엄마는 아빠를 만나 결혼하셨다. 나이 서른에 결혼을 하셨으니 노처녀도 한참 노처녀였던 시절이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엄마는 요리하는 걸 배우지 못하고 시집을 왔다. 엄마의 언니들인 이모들이 집안 살림과 요리를 했었기에 요리를 배우기보단 돈을 버는 일을 찾는 게 더 중요했다고 한다. 아빠와 결혼을 하면서 김치를 담그는 법도 배우고, 된장, 고추장을 담으셨다.  


어린 시절 우리 가족은 다 같이 된장을 담기 위해 메주를 쑤고, 고추장을 만들어 먹었다. 명절이면 가족이 오손 도손 모여 앉아 만두를 빚어 먹었고, 도토리를 왕창 주워 와 도토리 묵을 만들기도 했다. 어린 나는 요리하는 엄마를 보며 조잘조잘 그날 있었던 일들을 얘기했고, 엄마는 나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셨다.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엄마가 있었기에 나는 별다른 사춘기를 겪지 않았던 것 같다. 엄마는 나의 친구이자, 선생님이었다.

때론 삐져서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일부러 안 가져가 엄마 속을 상하게 한적도 있었는데, 그럴 때면 아빠를 통해 학교까지 도시락을 갖다 주셨다.


사위 될 사람을 데려온다고 하니 기뻐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무수히 많은 옛 일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 사위는 우리의 새로운 가족이 되었고, 장모님이 담아주는 물김치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하는 또 한 명의 팬이 되었다. 


엄마의 음식에는 정성과 사랑이 들어있었다.  

결혼을 하고 내가 요리를 하면서 엄마의 사랑과 정성이 얼마나 소중한가 느끼게 된다.


그라폴리오 : https://grafolio.naver.com/war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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